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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26. 2018

중세마을 골목길 간식

체코. 체스키크롬로프
















  하나동글동글원통 모양으로 말려 있는 빵. Trdlo(뜨레들로)

  손끝으로 집어 주욱 찢어낸다. 튀어 오를 용수철처럼 구불구불 말린 빵은 달달하고 고소하다. 체코 전통 빵인 굴뚝 빵이다. 체코만의 빵은 아니고, 중앙 유럽 이곳저곳에서 많이 먹는다. 18세기 끝 무렵, 헝가리의 은퇴한 장군을 위해 만들었던 것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설이 가장 일반적이다. 동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체코와 헝가리, 오스트리아의 문화가 서로 뒤섞여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역사적인 밀접함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녹아들어 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 나라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른 것이 신기하다.

  굴뚝처럼 생겨서 굴뚝 빵. 굴뚝에 숨어서 혼자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고 해서 굴뚝 빵. 혹은 빵을 만들 때의 모습이 굴뚝을 닮아서 굴뚝빵. 둥그런 스틱 주변에 반죽을 돌려가며 붙인 후 굽는다. 설탕이나 시나몬을 뿌려 굽는 경우가 많다. 

  이 빵은 2007년에 PGI (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에 등록되었다. 특정 지역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생산되는 음식을 지정해 그 가치를 보존해 나가자는 것이 PGI의 취지이다. EU 국가들 사이에 체결된 일종의 인증 제도인 셈이다.

  이런 인증과는 무관하게, 이 빵은 맛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둘스보르노스티 중앙 광장의 아이스크림

  체코의 오솔길. 체스키 크룸로프. 

  고딕 양식부터 르네상스 양식까지 다양한 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곳.

  그래서일까.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골목과 골목의 분위기가 달랐다. 색색의 생동감으로 넘쳐흐르는 골목을 빠져나가면 고즈넉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조용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맞잡은 연인들의 손만큼이나 달달한 골목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다리를 건너고 언덕길을 오르고 성과 성 사이를 기웃거리다 보면 원래 가려했던 길에서 벗어나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면 중앙광장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었다. 어느 골목이든 열에 일곱쯤은 중앙광장으로 연결되었다. 낯선 곳을 헤매다 눈에 익은 곳으로 돌아오는 안정감. 그 안정감은 여행자에게 착각할 자유를 주었다. 당신은 이곳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착각. 그 착각은 착각이기에 유쾌한 것이었다.

중앙광장 한쪽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간이 상점이 있었다. 체스키를 떠나기 직전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과일을 즉석에서 갈아 만든 아이스크림은 금세 녹았다. 콘을 적시고, 내 손등까지 흘러내렸다. 끈적끈적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체스키 크룸로프를 떠나는 시간도 그렇게나 순간이었다. 아쉬운 달콤함. 자꾸만 다시 생각나는 포근함.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마다, 나는 그곳이 그립다.



  셋성 맞은편생강 빵.

  체스키 크룸로프 성 맞은편, 가게가 예뻐서 들어갔었다. 꽃을 팔 것만 같은 가게에서 팔고 있던 것은 생강 빵이었다. 16세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체코 전통의 방법으로 만든다고 했다. 제법 규모가 있는 가게에 속하는지,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까지 다양한 언어로 만들어진 팸플릿도 놓여 있었다. 틀 자체에 그림이 새겨져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나는 넓적한 판 하나를 덥석 베어 물었다. 이 생강 빵에 그림을 새겨 넣은 사람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는 음식에서는, 이야기의 맛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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