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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03. 2018

씨씨가 사랑한 카페

헝가리,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의 겨울은 추웠다. 어깨를 웅크리고 숙소를 나섰다. 뵈뢰슈머르치 광장 한쪽, 하얀 건물로 향했다. 묵직한 문 안으로 들어섰다. 황금빛의 천장과 샹들리에. 검갈색의 묵직한 벨벳 커튼과 붉은색의 의자들. 중세 시대를 옮겨 놓은 듯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1858년에 세워진 유서깊은 카페. 왕족들의 사랑을 받은 카페. 부다페스트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카페. 제르보 카페에 대해 붙는 수식어들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다섯 겹의 오리지널 버전, 도보스 토르테를 파는 카페다. 

  도보스 토르테(Dobos Torte). 헝가리의 명물 케이크다. 얇은 시트를 한 장 한 장, 따로 구워내서 층마다 버터크림을 바르고, 마지막에는 캐러멜 아이싱을 입힌다. 요제프 C. 도보스 (József C. Dobos) 가 1887년 만들어냈다. 요제프는 1906년 은퇴하면서, 부다페스트의 패스트리 조합에 레시피를 기증했다. 그로써 파티시에들은 자유롭게 도보스 토르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백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도보스 토르테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금갈색의 케이크는 아름다웠다. 포크로 한가운데를 조심스럽게 잘랐다. 그 푹신함이라니. 입 안에 한 조각 넣는 순간, 달달한 폭죽이 입 안에서 터졌다.

  달달함에 취한 내 눈에, 카페 한쪽에 놓인 조각품이 보였다. 촛불 아래, 긴 머리를 드리우고 있는 여자의 흉상을 보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씨씨(Sisi)란 애칭으로 불렸던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스 아멜리에 유진(Elisabeth Amalie Eugenie) 이었다.

  1992년, 빈에서 뮤지컬 ‘엘리자벳 Elisabeth’ 초연이 막을 올렸다. 그때부터 ‘엘리자벳’은 전 세계 10여 개국에서 공연되며 900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였다. 이 뮤지컬에서 ‘내 주인은 나야’라고 노래하는 극 속의 황후가 씨씨(Sisi)이다. 자유를 갈망하는 씨씨의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씨씨는 여행을 통해 자유를 꿈꿨다. 그중에서도 헝가리를 좋아해, 부다페스트의 별장 궁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 씨씨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들 중 유일하게 헝가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쩌면 헝가리 사람들은 오스트리아를 휘어잡고 있던 대황후, 소피의 미움을 받는 씨씨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겹쳐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헝가리와 합스부르크 왕가는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억압적인 지배에 대항한 독립 운동이 헝가리 전역에서 일어났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867년, 헝가리와 화해 협정을 시도했다. 씨씨의 존재는 이 협정이 순탄하게 이루어지도록 해 주었다.

  씨씨에 대한 헝가리 사람들의 사랑은 ‘엘리자베스 다리’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부다페스트의 다리들 중, 합스부르크 왕가 일원의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는 다리는 이것이 유일하다. 합스부르크의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Franz Joseph 의 이름이 붙어 있던 다리는 헝가리 독립과 동시에 ‘자유의 다리 Liberty Bridge’로 이름이 바뀌었다. 반면 ‘엘리자베스 다리’는 전쟁 중 파괴되어 한 번 리뉴얼 되었다. 이때 이름을 바꾸자는 논의가 잠깐 일어났지만, 헝가리 사람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도보스 토르테도, 씨씨도 긴 세월 동안 헝가리의 사랑을 받았다. 케이크와 달리 씨씨는 완벽한 자유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이야기는 운명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만큼의 위로는 노래 안에도 새겨져 있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씨씨는 말한다. 죽음도 자신을 정복하지 못한다고. 

  나는 케이크의 마지막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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