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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17. 2018

블레드 호수와 맥주

슬로베니아, 블레드















  블레드 호수를 보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늘이 그대로 호수가 된 듯한 색과, 한가운데 떠 있는 자그마한 섬까지. 

  언제가 한 번쯤 보았으면 했던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Plitvice Lakes National Park 이 목표였다. 그래서 블레드 호수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폴리트비체에서 블레드 호수까지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말에, 굳이 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니깐 나는, 슬로베니아에 대해서도 블레드 호수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아직 발칸 반도에 대해 관심이 없던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블레드 호수 Blejsko jezero를 보고 말았다.

  블레드 호수는 빙하호다. 알프스 산맥의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이 모여 호수를 만든 것이다. 블레드 호수 한가운데에는 블레드 섬이 있는데, 섬의 종탑을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나룻배를 타고 블레드 섬으로 들어가는 동안, 뱃사공은 콧노래를 불렀다. 슬로베니아의 전통 나룻배인 플레트나(Pletna)를 젓는 이 일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져 내려가는데, 뱃사공들은 그 전통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젊은 뱃사공들 중에는 조정 선수 생활을 하다 가업을 물려받은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기 전까지, 최대한 블레드 호수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블레드 성도 문을 닫은 시간이었다. 아쉬움에 호수가를 서성이다, 레스토랑의 간판을 봤다. 노랑과 하양이 어우러진 케이크 하나만 떡하니 새겨진 광고 간판이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간판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레스토랑 겸 카페, Kavarna Park가 나왔다.

  카페 입구에 레스토랑과 크림 케이크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그곳에 쓰인 말들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랬다. ‘Kavarna Park는 슬로베니아의 명물인 크렘슈니테를 처음 내놓은 레스토랑이다.’ 그에 대한 자부심이 꼬불꼬불한 필기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명물 케이크의 원조집이라니. 들어가 볼 수밖에 없었다. 야외 테이블 좌석이 몇 개 안 남았다는 말에 냉큼 그쪽에 앉겠다고 했다. 그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자리 아래로 블레드 호수가 한눈에 펼쳐져 보였다. 배를 타고 건너가 봤던 종탑이 바로 건너편에 보였다. 

  주문한 크렘 슈니테 Kremsnite 가 앞에 놓였다.

  크렘 슈니테는 두툼한 커스터드 크림 위에 달콤한 크림을 얹고, 맨 위에 슈거 파우더를 눈처럼 뿌린 것이다. 보기에는 무척이나 달 것 같았는데, 이외로 산뜻한 맛이었다. 다른 종류의 두 가지 크림이 무척 어울리는 데다, 중간층을 나누어주는 바삭한 파이지가 심심할 수 있는 식감을 채워주었다. 

  크렘 슈니테와 이외로 궁합이 맞았던 것은 함께 주문한 맥주, 라스코 Laško 였다. 라스코는 슬로베니아 맥주로, 온천수로 만든다. 맛이 순하고 목 넘김이 좋아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은밀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했다. 원래는 햄버거와 함께 마시려고 주문한 것이었는데, 케이크를 먹다 단번에 한 병을 비우고 말았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 해는 거의 다 졌다. 호숫가를 물들인 노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카페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블레드 호수 위에는 크렘 슈니테의 색을 닮은 달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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