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스낵과자가 넘친다. 볼 때마다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산처럼 쌓인 과자의 주인은 우리집 아이들이 아니다. 바로 '나'다.
남편이 쓱배송으로 시켜준 짭짤한 과자와 달콤한 과자♡
남편이 오로지 날 위해 쓱배송으로 시켜준 과자다. 그저 며칠 전 지나가는 말로 "나는 애들 다 재우고 육퇴하고 나면 이상하게 오징어집 같은 짭짤한 과자 먹으면서 티비보거나 핸드폰을 하고 싶더라. 그리고 낮에 큰애 어린이집 가고, 둘째 낮잠 잘 때는 꼭 초코맛 쿠키가 먹고 싶고"라고 말했는데 그걸 기억했다가 정말 쓱~하고 쓱배송을 시켰다.
우리 남편이 나에게 해주는 사랑법은 이런 것들이다. 그저 지나가는 말을 했을 뿐인데 기억했다가 어느 순간 '뿅'하고 알라딘과 요술램프 속 지니처럼 해주는.
연애 때부터 남편은 그랬다. 어느 더운 여름날. 별다방의 아이스바닐라라떼를 좋아하는 날 위해 데이트를 할 때면 미리 시켜두고서는 내가 오면 아무렇지 않게 손에 쥐어주고 "마셔"라고 하던 그였다.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말투와 표정이었지만 더위가 싹 가시고 기분이 확 좋아지는 마법 같은 아바라였다.
언젠가는 루꼴라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집으로, 루꼴라 모종과 화분을 보내 놓고는 "루꼴라 좋아하지나. 키워서 제일 싱싱할 때 먹어"라고 하기도 했다.
설거지나 빨래 개기, 재활용 하기 등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안 시켰는데도 어느새 보면 해둘 때가 있다. 하고 나서 했다고 말하는 법도 없다. 그저 이렇게 해두는 게 남편이 지친 나를 위해 집안일을 함께 하는 모습이다.
며칠 전엔 둘째를 안아주다가 허리를 크게 삐끗했다. 너무 아파서 주사를 맞고 진통제로 연명하고 있는데 집에 애들이 있으니 맘대로 쉴 수도 없었다. 토요일 아침이 됐고 애들 밥 해 먹이느라 어쩔 수 없이 주방에서 일을 했고 애들 밥 먹이자마자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거실에 있던 남편과 애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서 뭐 하는 거지 했더니 남편이 시어머니께 전화를 한다. "엄마, 나 애들 데리고 엄마네로 갈게. 애들 엄마가 허리를 삐끗해서 아프고 좀 쉬어야 할 거 같아"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애 둘 옷을 대충 입히고 큰애 손 잡고 둘째 아기띠로 들쳐 매고 서울 시댁으로 출발했다. "나 애들 데리고 엄마네 가서 자고 내일 저녁 먹고 늦게 올게. 그때까지 푹 쉬어"라는 말을 남기고 휘리릭 나갔다.
덕분에 나는 주말 내내 푹 쉴 수 있었고 허리 통증도 어느 정도 나아졌다.
속 깊은 남편. 이효리가 서울 체크인에서 이상순을 두고 엄마 같다고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좀 알 거 같다. 엄마만큼 사랑한다는 의미. 엄마만큼 의지되고 따뜻하다는 느낌. 그저 존재로서 사랑한다는 의미 아닐까.
나도 남편을 점점 더 사랑한다. 엄마 같지는 않지만. 왜냐면 엄마처럼 집안일을 해준다거나, 밥을 해주는 건 아니기에.
그저 날이 갈수록 남편이란 존재에 감사하고 든든하고 고맙다. 오늘 밤엔 애들 재워놓고 남편이 사준 오징어집 먹으며 남편이 좋아하는 피부 관리(라고 해봤자 토너로 얼굴 닦고 로션 발라주는) 좀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