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가 그리는 윤곽선
정수민의 음악에 대한 사적인 기록
그날은 시위 장소에 도착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출동 차량을 타고 접근하는데 저 멀리서 이미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할 것 같은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도착해서 내린 곳은 천호동 동서울 시장. 건물 여기저기에는 철거 집행을 알리는 ‘X’표시와 ‘철거 예정’ 문구가 래커로 거칠게 적혀 있었다. 철거 용역과 전국철거민연합(이하 전철연)의 대치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의무경찰로 복무 중이었다. 주로 경찰서 보초를 서거나 군경 합동훈련에 나가고, 관내(구내)에 시위가 있을 때 출동하는 역할이었다. 다소 급하게 출동을 지시받고 나간 현장이었는데, 시위 규모는 출동 인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우리가 알만한 브랜드의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운동화와 셔츠, 맨투맨을 입고 전철연과 욕설을 주고받는 ‘용역 알바’들이었다. 이들은 스무 살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혹은 넘기지 못한 것처럼 보였고, 마치 친구들과 약속을 나온 것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알바’들의 관리자로 보이는 남성은 여자들을 앞에 내세웠다. 이들이 일하는 방식은 잔혹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거울을 깨뜨려 스스로를 위협하고 용역과 철거 펜스를 치는 인부들에게 오물을 뿌리며 생존을 울부짖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때 장소에 매몰되는 느낌과 함께 가치판단조차 무의미해지는 시간을 경험했다. 당시 일기에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일상에 감당하기 부끄러운 파편이 박힌다’. 뒤집어쓴 오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악취는 씻을 수 있지만 광경은 결코 쉽게 휘발되지 않았다. 나는 누구를 위해 방패를 든 것일까.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다. 내게 떠오르는 건 두 가지였다. 아빠, 그리고 정수민의 음악.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갈 무렵까지 아빠는 신문사에서 일했다. 그곳에 1988년에 입사하여 2006년 말에 나왔다. 20년 가까이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게 된 건 선택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구조조정과 연봉 삭감의 여파로 명예퇴직을 선택 ‘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당시 신문사의 하반기 인력 감축 구조 조정안에 대한 철회를 요구하며 노조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당시 야간 근무가 끝나고 ‘데모’까지 마치고 집에 들어온 아빠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 데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 건 시간이 지난 후였다.) 게다가 아빠는 임원이 (당연히) 아니었고, 기자도 아니었고, 기계로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부였기에 이 노동의 밀려남이 가시화되기란 묘연한 일이었다.
이후 2015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빠는 비정규직과 계약직의 시간을 무수하게 통과해야만 했다. 이 시간에 대해 당시의 나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아빠, 즉 가정의 상황을 다만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유예된 기억들을 한 기록에서 마주하게 됐는데, 바로 ‘건강보험 자격득실 내역’이었다. 아빠는 신문사 퇴직 이후 2007년 8월부터 2015년 3월까지 7년 6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6번의 첫 출근을 했다. 대부분의 근무기간은 일했는지도 모르게 짧았고 유일하게 한 곳만 ‘아빠 이제 일 계속 다니나?’ 생각했을 만큼 길게 느껴졌다. 그곳이 아빠의 마지막 직장이었다.
시장과 자본의 비대함이 한 사람의 노동력을 간편하게 대체 가능한 대상으로 지시하는 과정에서 가장 연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중 하나는 역시 아빠와 같은 노동자일 것이다. 그들은 더 건강하고 생산력 있는 몸으로, 기계로, 더 낮은 인건비의 다른 노동자로 대체될 가능성을 언제나 예비하고 있다. 또한 시장의 입장에서 꼭 필요하지만 가장 거슬리는 ‘인건비’의 대상으로써 감축되고 조정된다. 이렇듯 아빠 역시 시장과 자본 논리에 의해 대상화된 무수한 존재 중 하나였을 테다.
사라지고 밀려나는 사람들을 보며 그것이 타인의 일이 아님을, 간편하게 타인의 사연이 될 수 없음을 느끼는 건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몸에 새겨진 감각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자주 고민했던 건 이처럼 사라지는 사람과 장소들을 잊지 말자고, 최대한 기억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는지였다. 그들이 가치가 없기 때문에, 효용을 다했기 때문에 사라져도 무방하다고 얘기하는 사회의 논리를 멈춰 세우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길 바랐다. 이런 나에게 방지턱 같은 음악이 있었고, 그 덕분에 숨을 고를 수 있었다.
[Neoliberalism]은 베이스 연주자 정수민이 2018년 발매한 첫 번째 앨범이다. 제목처럼 이 앨범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여러 고찰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선언하지 않는다. 단지 연주될 뿐이다. ‘Neoliberalism 1’, ‘Neoliberalism 2’에서 이선지의 피아노와 정수민의 베이스는 서로에게 반응하며 쉽게 끊어지지 않는 긴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긴장과 순간적인 불협화음은 정수민이 건네는 베이스의 언어에 더 집중하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피아노의 선율과 만난다.
서정의 어법처럼 들리지만 쉽게 정의되지 않는 이들의 소리는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어떤 질문을 부여잡은 채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듯하다. ‘강남 478’은 더욱 그렇다. 서울의 판자촌인 구룡 마을의 번지수를 뜻하는 이 곡은 오히려 서정적인 멜로디를 취한다. 그러면서 잊지 말라고 얘기한다. 귀를 타고 어렵지 않게 들어오는 선율인 만큼 이 곡을 종종 찾아주기를, 그러면서 사람들이 사는 ‘강남 478’을 잊지 말아 주길 넌지시 바라본다.
이처럼 재즈에는 사회적인 목소리를 연주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정수민과 같은 베이스 연주자였던 찰스 밍거스는 ‘재즈 아티스트 길드 Jazz Artist Guild’를 만들어 흑인 재즈 뮤지션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일선에 서기도 했다. 이들이 빚는 목소리는 베이스 연주자가 하는 일과 묘하게 일치한다. 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동시에 윤곽선을 만드는 일. 근음을 연주하며 다른 악기의 길을 터주듯 음악이 그리는 아름다움의 시작점인 동시에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기록의 첫마디. 그것이 윤곽선이 된다.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두 권의 책에서도 윤곽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18~19세기 화가인 장 밥티스트 르노와 조제프 브누아 쉬베가 그린 ‘회화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다(이름은 각각 <The Origin of Painting>(1786), <The Invention of the Art of Drawing>(1791)). 책에 언급된 신화를 인용하면 이렇다.
“고대 그리스에 살던 여성 디부타데스 Dibutades는 양치기 청년과 깊이 사랑하는 사이였다. 어느 날 청년이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고, 이별하기 전날 밤 디부타데스는 벽에 비친 청년의 그림자를 따라 윤곽선을 그린다. 애절하고 애틋한 순간이다.”_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 터틀넥 프레스, 2023, 185쪽.
이렇게 그림자를 따라 그린 윤곽선은 회화의 기원이 되고, 잊히지 않는 파동을 만든다. 정수민의 베이스가 베이스의 낮은 진동을 통해 우리가 자주 잊고 지내는 사회의 테두리를 따라 그리는 것처럼.
또 다른 윤곽선에 대한 이야기. 『읽을, 거리: 김민정의 1월』(난다, 2024)에서 김민정 시인이 김화영 선생을 인터뷰하는 중에 나온 얘기였다. 김화영 선생이 군 복무 시절 글을 읽지 못하는 병사들의 편지를 읽어주곤 했는데, 편지에 삐뚤빼뚤한 선이 그려져있는 것이었다. 그 선은 병사의 아내가 “종이 위에 손바닥을 펴서 짚고는 각 손가락의 윤곽을 따라 연필로 손을 그린 그림”이었다.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고 한다. ‘저의 손이어요. 만져주어요.’ 이 흔적은 그 어떤 정밀한 사진이나 그림보다도 잊을 수 없는 마음을 전해주는 윤곽선 아닐까.
베이스가 그리는 윤곽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나의 ‘부끄러운 파편’들은 언제까지고 이 윤곽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 같다. 선의 끝이 다다르는 곳에는 잊히기 쉬운 이름들이 적혀있을 테고, 베이스는 이 이름들이 계속 남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감싸줄 것이다. 나도 그 위에 내 품을 얹고 싶다.
* 본문에 보라색으로 표기한 부분은 과거 본인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