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하렴

동화 <줄무늬가 생겼어요>, <큰솔부엉이 아폴로의 고민>

by 한들

전국노래자랑의 송해가 별세를 했다. 그의 나이는 95세, 전국노래자랑에서 마이크를 잡은 것이 34년이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서글프지만, 이런 죽음은 왠지 아쉬움보단 후련함을 준다.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놓지 않고, 충분히 생을 살다간 사람이 주는 좋은 여운. 그는 어떻게 그 오랜 시간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정해진 것도 없고 변수도 많은 연예게에서 그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도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몇몇 인터뷰에서 송해는 ‘딴따라는 나의 천직’이었다고 말했다. ‘천직’ 하늘이 내려 준 일. 그는 일찍이 하늘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하늘이 내려 준 일이기에 피할 수도 없고 자신에게 맞지 않을 수도 없어, 그 길을 따라 계속 흘러흘러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늘의 길이었기에 자신이 다 통제할 수 없더라도 운이 따라서 여러 일이 해결되었을 것이다.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켰기에, 그의 마지막은 많은 이들의 축복과 함께할 수 있었다. 이 조차도 조금 지나면 다 지난 일이될 것이고 세상 속에서는 이름이 잊혀질 테지만, 그 자신이 만족스럽게 보냈던 그 시간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영원할 것이다.



하늘이 정해준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천직을 발견해서 그리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어떤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하며 꾸역꾸역 버티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 답은 매우 복잡하고 심오하고 어려운 것처럼 보이나, 진리는 언제나 명쾌하고 간단하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그걸 들춰볼 마음의 여유가 나에게 없을 뿐. 동화는 수없이 반복해서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라고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림책 <줄무늬가 생겼어요(데이빗 셰논 작, 조세현 역/비룡소)>에서는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카밀라라는 아이가 나온다.


등교를 할 때 다른 아이들에게 잘 보이려고 옷을 마흔 두 번이나 갈아 입는다. 카밀라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아욱콩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아욱콩을 매우 싫어해서, 카밀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욱콩을 절대 먹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온 몸에 무지개 색깔의 줄무늬가 생기는 의문의 병을 얻게 된다. 처음에는 숨기려고 했지만, 활동을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여서 그 상태로 학교에 나가야 했다.


학교에 갔더니 카밀라의 몸 색깔은 주변에서 말하는 대로 변해서 얼룩덜룩해졌다. 카밀라의 몸은 아주 끔찍해져서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카밀라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별의별 사람의 처방과 조언을 받아들였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다 반영하다보니, 카밀라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괴물이 되어버린 카밀라


이 괴물이 되어 버린 카밀라의 모습은 뉴스가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가장 예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춰지고 싶었는데, 가장 흉측한 모습으로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몸이 이상하게 변한 것보다, 이 지점이 카밀라에게 가장 괴롭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카밀라의 가장 숨기고 싶은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를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어떤 경험이 많은 할머니는 카밀라의 입 속에 아욱콩을 넣어준다. 그러자 카밀라는 기적처럼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자신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하고도 간단한 메시지.


아욱콩을 좋아하면 아욱콩을 먹으면 된다. 그런데 이걸 현실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이걸 실천하는데 여러 마음의 장벽이 솟아 오른다.


우선 ‘내가 정말 아욱콩을 좋아하나?’하는 질문. ‘다른 아이들은 다 싫어한다고 하는데, 내가 좋아할리가 있는가?’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내가 좋아해서는 안 되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일어난다.


이러한 복잡한 마음을 통과하고 나면, 이것도 저것도 다 하지 말자는 결론이 나고야 만다. 이거저거 다 하지 않고, 어떠한 마음을 꾹꾹 눌러버리면, 그야말로 아무런 개성도 없고 밋밋하고 이상한 괴물이 되어 버리고야 만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색을 가지고 있는지… 너무 오랫동안 잊어, 결국 나 자신 또한 잃어버리지 않도록 매번 나로 돌아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잘 지켜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나’라는 것은 세상의 연결을 통해 찾아지기도 한다.



큰솔부엉이인 아폴로도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민을 한다. 아폴로는 삼시 세 끼 고기만 먹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다. 나무 위에 살면서 먹을 거리를 내려다 보며, 매번 사냥을 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아폴로는 고기를 끊고 풀이나 꽃꿀, 작은 벌레를 먹어보려고 했다.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가 먹을거리를 찾아 먹어보았다.


당연히 먹는 것마다 맛이 없었다. 게다가 등짐승의 공격까지 받아 위험한 지경에 이를 뻔하기도 했다. 아폴로는 이리 살 수도 없고, 저리 살 수도 없는 상황에 빠져 버렸다.

아폴로는 어찌할 지 몰라 고민을 하다가, 지혜로운 할아버지 부엉이를 찾아 간다. 그 할아버지는 아폴로가 새롭게 살고 싶다며 하는 일이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아폴로의 본성은 부엉이이며, 부엉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며, 생태계 전체 흐름 속에서 부엉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러면서 “아폴로, 가서 큰솔부엉이가 해야 할 일을 하렴.”이라고 말해 준다.


어찌보면, 이러한 처방이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냥 살던대로 살어~’라는 답을 얻게 된 것이니까 말이다. 이 부엉이라는 틀을 온전히 벗어버리고 새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현명한 할아버지 부엉이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렇다면, 큰솔부엉이로서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라는 존재는 여러 겹의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커다란 우주의 섭리 속에서 어쩌다 만들어진 ‘나’라는 존재는 자신의 몸, 주위 환경과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운명이 정해진다.




주변에 휩쓸려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로 뒤섞여버린 카밀라, 거대한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하사(?) 받은 아폴로. 둘 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개체는 주변과 구별되면서도 섞여서 흘러가야 한다는 것.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 자기 길을 잘 찾아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밀당의 고수가 아닐런지.


줄타기에 능숙한 사람은 그 위에서 재주도 넘고, 밥도 먹는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넘어지고 떨어지고 다친다.


하-!

이 놈의 줄타기.


살아있는 이상, 이 줄에서 내려오긴 글렀다. 그렇다면, 잘 타는 수 밖에 없다. 주변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제대로 찾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 온 인생을 바치는 수밖에 없다.


그 줄타기가 부담스럽기는 하다. 그런데 어찌보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깨알같은 재미 속에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될 수도 있겠다. 게임도 쉬운 건 흥미가 뚝 떨어지지 않는가.


부담이 되느냐, 재미가 되느냐.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자신의 만족감을 어디서 찾으냐에 있다. 타인의 기준에 의한 가치 평가에 두면 끝없는 괴로움이 될 것이다.


내면의 충족에 두면, 남이사 뭐라고 하든 전혀 흔들릴 일이 없다.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온통 신경 쓰느라 바빠, 미처 주변의 평가나 시선에 까지 에너지를 쓸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카밀라의 경우,

어떤 아욱콩을 먹을까, 아욱콩을 어디에서 먹을까, 어떤 접시에 먹을까, 어디에서 사는 아욱콩이 젤 맛있을까, 아욱콩은 왜 맛있는 걸까, 아욱콩을 요리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아욱콩 하나만 생각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아폴로의 경우, 자신의 존재에서 물러나지 않고, 큰솔부엉이로 잘 사는 법은 무엇일까, 가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내가 잡아야 할 작은 동물은 어떤 놈들인가… 이런 것에 몰두하며 지내도 한참 시간이 지날 것이다.



또 하나의 비결은, 자신의 생을 온전히 바치는 것에 있다. MC송해는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 하나를 하기 위해, 다른 가능성 모두를 버렸다.


그 시간에 편안히 잠을 잘 수도 있고, 등산을 할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애완견을 키웠을 수도 있다. 뭐가됐든… 그 모든 가능성을 버리고 매주 먼 곳도 마다않고 차량으로 이동하며 무대에 섰다. 직업이라 익숙하다 하지만, 매번 새롭고 많은 사람 앞에 자신을 드러냈다. 다른 사람들 앞에 선 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인지 아마 다들 알 것이다. 그는 그의 인생을 그곳에 갈아 넣은 것이다.


‘갈아 넣다.’ 아마도 인생 꿀재미의 비결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천직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라고 하지 않아도 혼자 알아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은 후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여러 일에 신경이 뻗쳐 힘들 때,

이렇게 사는 게 괜찮을까 허망해 질 때,

좋아하는 것에 신경을 집중하고, 가서 내가 해야 할 일이나 차분히 해야겠다.

그러면 곧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난 이 브런치 글을 쓰는 데 내 오전 시간을 갈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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