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화니의 꿈>, 프뢰벨.
자려고 누웠을 때였다. 장마가 시작되어, 공기는 텁텁하고, 온 하늘에 물기가 가득했다. 베란다 창을 쳐다보니, 가로등 불, 다른 집에서 발하는 전기 불빛이 물방울에 번져 뿌옇게 흩어졌다.
에어컨을 틀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데, 편한 느낌이 달콤했다. 옆에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누워있었지만, 자리에 눕자마자 까무룩 잠에 들어버린 참이었다.
밖은 후텁지근하고 축축할 터였다. 방은 끈적함 없이 시원하고 산뜻하였다. 이 순간, 이 공간에 내가 거하고 있었다.
이렇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다니…
매일 자는 잠이건만, 어제는 새삼스레 편안한 잠자리를 느껴 보았다.
나는 늘 행복을 얻고 싶었다. 우리 집은 가난해서, 우리 부모님은 잘 나지 못해서, 나의 능력은 모자라서 삶은 만족스럽지 않고 힘이 들기만 했다.
우리 집과 부모님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나 스스로 더 높고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조바심을 냈다.
남자를 만날 때도, 나에게 맞고 편안한 사람보다는 긴장감을 선사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끌렸다. 사랑을 나눌 사람이 아니라, 나를 조금 더 잘 나게 만들어 줄 누군가를 바랐던 것이다.
사회에서 능력도 인정받고, 돈도 많이 벌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자들의 성공 스토리를 읽는 것이 좋았다. 나도 언젠가는 한 분야를 섭렵하여 거들먹거릴 날이 오리라는 기대로 가득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스펙을 쌓고, 사람을 만났다.
그림책 <화니의 꿈>에서 화니는 왕자님과 결혼하는 꿈을 꾸었다. 화려한 무도회에 멋지게 드레스를 차려입고, 잘생긴 왕자님과 춤을 추게 해 달라고 요정에게 빌었다.
요정은 나타나지 않고, 애먼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허버는 왕자도 아니고 키도 작았다. 그런 그가 화니에게 청혼을 했다. 화니는 밤이 깊도록 고민을 했다. 평범한 농부인 그와의 삶은 이전에 자신이 살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여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깊은 고민 끝에 청혼을 받아들이고,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기로 했다.
오두막집에서 두 아들을 낳아 기르고, 밭을 갈면서 하루하루를 살아 나갔다. 그러는 사이, 화니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꿈을 잊고 말았다.
마흔이 넘은 지금의 나…
성공적인 삶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나의 이름은 세상 속에서 거의 사라져 자취를 감추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모습은 십 년 전에 이미 결정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능력 있는 남자가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선택했다. 키 크고 잘 생기고 나한테 칭찬만 해주는 달달한 사람.
그때 그 남자는 직업도 없었고,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프로젝트를 해서 받는 월급이 80만 원이었다. 2,000만 원에 20만 원 하는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창이 넓어서 해가 잘 들었는데, 그 창 밖에는 술집이 줄지어 서 있었다. 벌새, 타임, 땡벌… 쇼윈도가 까맣거나 핫핑크색으로 도배되어 있는 그런 술집은 과연 어떤 곳일까.
지극히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는 지적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능력이 꽤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잘 생기고 착한 사람. 나를 보면 계속 예쁘다고 해주고, 유치하고 느끼한 농담을 잘하고, 내가 하는 건 다 잘했다고 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도 그도, 아무것도 없이 결혼이란 걸 했고, 원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한동안 남편은 자리를 못 잡았다. 계약직으로 연구원에 들어갔는데, 일 년도 안 돼서 그만두었다. 임시 연구직으로 일하면서, 대학 교수가 되겠다고 여러 군데에 원서를 썼다. 다 떨어졌다.
그러다가 회사에 들어갔다. 그나마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회사 생활을 하게 되어서 다소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그 마저도 그만두고 벤처기업으로 들어갔다, 다시 이직해서 비교적 안정적인 회사의 정규직으로 안착한 지 두 달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이 둘을 낳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체력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차츰 나는 직업전선에서 멀어졌고, 집안으로 집안으로 들어앉게 되었다.
다행히 허버는 결혼 후에도 화니가 꾸었던 꿈을 잊지 않았다.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은 화니를 공주처럼 대접해 주었다. 화니가 하기 싫다고 했던 유리창 청소도 잊지 않고 해 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
집에 큰 불이 나서 홀라당 다 타버렸다.
두 부부의 꿈이 한순간에 재로 불타 주저앉아 버렸다.
그 둘은 이전보다 더 튼튼한 집을 지었다.
가끔 살다가 억울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
‘나는 집안에 갇혀서 방바닥이나 닦고 있을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걸레를 집어던지고 싶은 울분을 가라앉히기가 힘들다.
그리하여 밖으로 뛰쳐나갈 태세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어떤 결정의 순간이 오면, 나는 남편의 곁으로 돌아오곤 했다.
현실이 불안하고 힘들 때에도, 같이 드라이브를 하거나 장을 보러 가거나 이야기 몇 마디를 나누면 불안이 가라앉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냥 이 순간이 충만하고 그럭저럭 괜찮아졌다.
밖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희한한 걸 먹고,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것보다, 간단히 식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고, 아이들의 달큼한 살 냄새를 맡고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다는 걸 몸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보면,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고 축축하게 느껴졌던 것은, 가난하고 못 배운 그 조건 자체보다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서였다.
‘무언가 더 많이 해야 해, 더 멋진 곳으로 가야 해…’라는 생각이 들끓을 때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삶을 진득이 느끼지 못하고 동떨어져 있을 때였다.
화니에게 요정이 진짜로 나타났다.
"가엾은 화니,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지? 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어. 오늘 밤 시장님 댁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멋진 대령님이 오실 거야. 모든 걸 내게 맡겨. 내가 다 알아서 해 줄게!"
요정은 화니에게 뭐든지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화니는 그토록 원했던 화려한 삶을 손에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코 앞에 두고 있었다.
"안 갈래요."
화니는 자신의 남편과 아이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남편과 함께 했던 소소한 추억과 자신의 삶이 녹아 있으므로…
그동안 남편과 했던 여러 일이 떠 오른다.
처음으로 운전을 배울 때, 시속 30킬로만 밟아도 너무 빠르다며 소란을 피웠었다. 인터체인지에서 잘못 빠져서, 수원에서 서울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임신을 해서 입덧을 할 때, 남편이 국수도 끓여주고 탕수육도 해 줬다. 물 끓는 냄새가 역겨워서, 문 닫고 방에 들어와 있었는데, 남편이 주방에서 뚝딱뚝딱 먹을거리를 해주었다.
붉은 낙조를 보러 서해 바다에 간 적도 있었고, 라면 끓여 먹겠다고 낚싯대 들고나간 적도 있었다. 물고기는 한 마리도 못 건졌으면서, 회센터에서 회 떠서 들큼한 초장에 찍어 먹었었다.
첫째 아이, 둘째 아이 낳을 때 나를 등 뒤에서 안아 주었다. 자연 분만해서 아이를 낳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이를 낳을 때 질렀던 짐승 같은 울부짖음도 듣고, 아이들의 새빨간 탯줄도 직접 끊었다.
처음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을 때, 동시에 가슴 두근두근 했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집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 그런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에 기뻤다. 물론 대출을 가득 받았었지만.
지도 교수님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화장장에 같이 갔고, 어머님 아프셨을 때 병원에 들락날락하며 같이 가슴 졸였고, 마지막 가실 때 같이 울었다. 마지막 보내는 길까지 함께 였다.
첫째 아이 초등학교 예비소집일, 휴가 내고 같이 학교에 갔다. 막상 갔더니 행사도 없고 서류만 들고 오면 되는 거여서 황당했지만, 학교 복도에 있는 게시판 앞에서 사진도 찍고 했다.
내가 우울증에 걸려서 집안에만 눌어붙어 있을 때, 나를 집 안에서 꺼내어 벚꽃이 환하게 핀 길가를 같이 걸었다.
시골에 가자고 했을 때, 주말마다 차 끌고 집 알아보러 다녔다. 집을 구하고 나서는, 화덕 만들어서 같이 고기 구워 먹고 시골길을 걷고 커피를 마셨다.
점점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더욱 편안해지고 두렵거나 부끄러울 것이 없어지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해도, 이상한 상태가 돼도, 이 사람은 나한테 뭐라고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다른 데 가선 화도 내고 날카롭게도 하면서, 나한테는 찍소리를 안 한다. 그냥 우야둥둥 내가 하는 거 다 좋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바깥에서 구할 것이 많이 없어진다. 외부에서 얻는 충족감이 시시해지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한편으론 불안이 솟구친다.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좋을까.
남편의 품 속에 폭 싸여서, 그저 편하게 살아도 좋을까… 이렇게 살다가 한없이 약해지고 무능력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나 자신을 찾지 못하고 미로 속에서 허우적 댈까 두렵기도 하다.
점점 나의 꿈은 무뎌지고,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조급하게 사는 것이 익숙하고,
누군가 만들어놓은 진도에 맞추는 것이 익숙한 나머지
편안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는 능력이 상실되었는지도 모른다.
읽는 책의 글귀를 마음에 담고,
어제 본 영화의 영상에 가슴 설레고,
아침에 마시는 카페라테의 부드럽게 쓴 맛과 대중적인 음악의 선율을 들이마셔 본다.
달달 구리 한 이런 글을 쓰면서,
제 기분에 한껏 퐁당 빠져, 나머지의 일은 모두 나몰라라 하고, 이 순간에 둥둥 떠다닌다.
이렇게 머무는 순간이 나의 인생이고,
이것은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의 것이기에
나의 권리를 주장하며 이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 본다.
나는 어쩌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과 같은 이 순간을 꿈꾸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느 날, 요정이 나타나 말을 걸면 어떻게 할까?
“은정아, 잠에서 깨어나야지. 단꿈에서 깨어 네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어서, 세상으로 나가야지. 네가 세상을 위해서 성취해야 할 일을 해야지! 화려한 무대로 나가야지! 내가 옷을 입혀 줄게, 거기까지 갈 수 있는 마차를 대령할게.”
“글쎄,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집에 있을래요. 여기가 제 집이고, 저의 인생이 여기에 몽땅 있어요. 나는 나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머물래요.”
이쯤 되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꿈이 아닌 것인지 조차도 헛갈린다. 화려한 무도회장에 나가는 것이 꿈 속일까, 농장 속 오두막집이 꿈 속인 걸까…
화니의 꿈은
사라진 것인가, 아닌가.
이루어진 것인가, 아닌가.
나는 꿈을 이룬 것인가, 아닌가.
나의 꿈은 어디에 놓여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