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세 가지 소원, 어부와 물고기

by 한들

https://youtu.be/qRs9H5b_vj8

이승환...

오랜만에 소환해 본다.

1999년에 발매된 이승환의 정규 6집 앨범에는 '세 가지 소원'이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다. 달달한 멜로디와 가사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 곡에는 제목에서 보여주듯, 세 가지 소원이 담겨 있다.


1. 나 없는 곳에서 아프지 말기

2. 힘들어도 속이지 말기

3. 지금 잡은 두 손 놓치지 말기


이 내용은 작사가 이규호 본인의 소원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시럽을 한 사발 들이킨듯한 아찔한 달콤함이 노래에 한 가득하다. 누군가에게 평생을 함께하자고 할 때의 그 마음만 하겠냐만은…



이 노래가 나올 즈음, 나는 고 3이었다. 이 해만 지나면, 학생 신분에서 해방~ 성년이 되어, 많은 것이 허용이 될 터였다.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답답한 수험생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런 기대와는 달리,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과연 대학에 갈 수 있을까?’ 걱정과 불안감에 휩싸인 채, 주어진 자리에서 시험공부를 하자니, 엄청 답답했다. 그럴 때 한줄기 바람과 같은 역할을 하던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위시리스트’였다. 공부하기 힘들 때, ‘수능 시험이 끝나고 난 후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채워 넣었다.


귀 뚫기, 운전면허 따기, 맛있는 거 먹기… 등등 여러 가지 썼던 것 같다. 지금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심각하게 적었을지…


소원은 힘든 현재를 지탱하는 힘을 주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소원에 관한 유쾌한 그림책 하나가 있다.

그림책 <세 가지 소원>, 글뿌리

이 책의 제목도 <세 가지 소원>이다. 여기에는 가난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어느 날, 지붕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아닌가 내심 기대를 하고, 두 사람은 어떤 소원을 빌 지 공상에 빠진다.


맨 처음에는 ‘튼튼한 이’를 갖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점차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궁전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의 쪽지를 받게 된다. 단, 세 가지의 소원만 빌 수 있었다.

횟수 제한이 있으니, 소원을 아주, 잘 빌어야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현재의 본능에 충실해 ‘너무 배고파 생각이 나지 않는다. 따뜻한 소시지 하나만 먹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소원을 빌어 버렸다.


노발대발한 할아버지는 ‘그 소시지가 할머니 코에 붙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악담을 퍼부었고 그대로 소원이 이루어졌다.


마지막 소원 하나가 남은 상태. 할아버지는 고민에 빠졌다. 이 소원 하나로 궁전을 가진 왕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할아버지는 결국 그 꿈을 접고, 할멈 코에서 소시지가 떨어지길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다. 긴장했던 할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둘은 소원으로 얻게 된 소시지 하나를 반으로 나눠 먹으면서, 행복해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천국과 지옥을 왔다리갔다리 하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 책을 읽는 독자인 나도 이 두 사람과 함께 짧게나마 꿈에 부풀었다가 사그라졌다.



이런 행운을 얻게 된 것은 이 노 부부뿐이 아니었다. 동화 <어부와 물고기>에서 어부 부부 또한 신령한 물고기를 구해 준 덕분에 원하는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푸시킨이 쓴 러시아 동화 <어부와 물고기>, 웅진다책,

이 어부는 딱히 소원이 없었는데, 어부의 아내는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았다. 우선 깨진 빨래통 대신 새 빨래통이 갖고 싶었다. 그러다가 새 집이, 작은 집 대신 대궐이 갖고 싶었다. 그러다가 스스로 왕이 되고 싶었고, 심지어 용왕이 되고 싶어 했다.


물고기는 최선을 다해 소원을 들어주다가, 마지막 소원을 듣고는 모든 것을 처음으로 돌려놓고야 말았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으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왜,

아내가 바란 소원의 스케일에 끌리는 것일까.


끝없이 더 좋은 것을 추구하다가,

결국 깨진 빨래통과 함께 허름한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낮은 곳에 거했던 그들의 삶과, 왕이라는 삶의 최정점을 찍고 다시 낮은 곳으로 돌아온 이후의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허탈감과 허무를 안고 살아가며 고통에 잠겨 살아갈지 모르겠다.


혹은,

왕의 자리라는 것이 대단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개척하며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언가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본 것과 아는 것 안에서 바라게 된다.


가난한 할머니가 자신의 소원이 막상 이루어질 수 있는 순간에 ‘소시지 하나’를 바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할머니에게는 아주 구체적이고 확실한 소원이었던 것이다.


옷 백 벌이나 화려한 궁전은 원할 순 있는데, 막상 얻으려고 하자니 손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시쳇말로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한 번도 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것을 갖고 싶다고 바란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걸 현실 버전으로 바꿔서,

‘재벌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했을 때, 소원을 들어주는 입장에서 ‘어떤 재벌? 재벌도 여러 종륜데 뭘 원해?’라고 물어보지 않을까?


소원을 빌려고 하더라도, 보고 들은 것의 범위가 넓어야 한다.


예전에 초중등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본 적이 있다.


만약 여러분에게 100억이 생긴다면, 무얼 하고 싶나요?


우선 아이들은 집과 차를 산다고 했다. 일부는 저축을 한다고 했다. 조금 더 어린아이들은 ‘게임기’나 ‘게임 아이템’을 사겠다고 했고, ‘강아지’를 살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남편에게도 물어보았다.

집과 차를 사겠다고 했다.


아… 이래서 우리나라 부동산은 무사하겠구나. 현재 중년은 물론이고, 미래 세대도 우선은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집값이 떨어질 일은 없겠다.


만약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 역시 땅이랑 아파트를 살 것이다.

역시 부동산…


동시에 느껴지는 자괴감.

이 상상력의 빈곤이란… 무엇이냔 말인가.


우리는 다른 삶에 대한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 어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느새 우리는 비슷비슷하게 주어진 것을 꿈꾸고 바라고 있다.


심지어는 ‘집과 차’를 원한다고 말하고도 그것을 그리 바라고 있지 않기도 하다. 자신이 원하는 게 그것이 아닌데도, 그냥 ‘그런 걸 바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 아예 생각이란 과정 없이 자동적으로 말을 내뱉기도 한다.


이건 소원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소원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그것에 의해 현재의 행동이 선택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주어진 조건에 의해 살아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가능성 앞에 놓여있기도 하다. 오늘 아침 눈을 떴고, 그 이후에 무얼 할지는 수없이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밀한 소원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소원을 이루려고 온갖 시도를 하게 된다.


다만, 그 ‘퀄리티’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세상에 대해 잘 모르고 수완이 없는 사람은 어처구니없는 방법을 택해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고 한다.


<아들러 심리학 입문>이라는 책에 ‘야뇨증’을 가진 아이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 아이는 신체적인 결함이 없었는데도 야뇨증을 앓고 있었다.


이 아이는 마음속에 어머니의 관심과 배려를 끊임없이 얻고 싶었다. 그런데 밤에 오줌을 쌀 때마다 어머니가 그에게 (부정적인 방식이었을지라도) 관심을 갖고 주목해주었기 때문에 그 방식을 계속 고집했던 것이다.


어린아이의 수준에서 생각해 낸 사랑받는 방법이 ‘밤에 오줌을 싸서 이불을 적시는 것’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아이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었으니 효과 만점이었다.


어처구니없지만, 이런 일은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하게 일어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괜히 화를 내서 싸움을 거는 사람도 있고, 이런저런 사고를 치기도 한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아마도 이런 방법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더 세련되고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구하려는 소원 자체를 없애고, 다른 소원을 가질 수도 있는 법이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얻으려고 사고 치기보다,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헌신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 인류 자체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이렇든 저렇든,

사람은 소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나는 과연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소원이란 게 있나?

무슨 소원을 비는 것이 좋을까?

아주 좋은 소원을 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원에 관한 여러 질문이 솟아난다. 소원을 갖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어서, 조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 소원으로 인해서 내 삶 전체가 달라질 수 있으니.




오늘 아침부터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가 한 행동을 차례로 떠올려보니,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결과인 것 같아 전율이 느껴진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이보다 못했던 거주 환경에서 살았던 누군가의 소원이었을 것이다. 또는 대한민국 건설사의 5개년 계획 프레젠테이션 파일에 담겨 있던 그림이었을 것이다.


옛날엔 학교나 어린이집이란 것도 없었다. 무언가 배워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원이, 부자든 가난하든 누구든 기본 교육은 시켰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바람이 의무교육 시스템을 만들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 먹었던 식재료들은 어떤가. 그 안에는 수많은 업체들의 성공 기원이 담겨있을 테다. 맛있는 걸 간편하게 먹고 싶다는 많은 사람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남편은 회사에 다니고, 아내인 나는 살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고, 휴일에는 적절히 여가를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이 생활은 누구의 그림이었던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만 부모님들은 우리가 결혼하길 원했고, 아이를 낳길 바랐다.


나는 다름 아닌, 다른 사람의 소원으로 이루어진 현실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거대한 소원의 집합체, 소원 덩어리?


아차차,

이 안에서 내 소원의 지분은 얼마나 되지?


갑자기 본전 생각이 난다.

다른 사람들의 거대한 소원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어 감사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의 소원의 행방을 찾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나도 세 가지 소원을 빌어보고자 한다.


1. 항상 나만의 소원을 갖고, 그 소원으로 이루어진 일상을 살아내길 바란다.

2. 소원을 이루는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갖길 바란다.

3.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길 바란다.


이승환 노래에서 나온 것과 같은 달콤 아찔한 소원은 아닐지라도, 점점 내 소원의 지분이 늘어나는 삶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소원은 단순한 망상이나 상상이 아니기에, 예술작품처럼 세세히 조각하여 마음속에 간직해야겠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과 같은 멋진 조각을 새길 때, ‘필요 없는 부분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말했다지.


마음속에서 필요 없는 것을 들어내고 들어내면 내가 정말로 바라고 원하는 것만이 오롯이 남아 내 삶의 방향을 밝혀주지 않을까. 그 소원을 등불 삼아 가다 보면, 내가 가야 할 바로 그 지점에 서 있게 될 것이다.


그 지점에서 나는 ‘참 잘 살았다’ 만족하고 충만한 느낌으로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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