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 <혹부리 영감>
지난 2년 동안 주식장은 폭발적이었다. 아무거에나 돈을 넣어놔도 막 불어나는 시기였다. 여기저기서 다 주식을 했다. 비트코인은 어떻고… 하루아침에 떼부자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흐르고 흘렀다.
내 핸드폰에도 주식과 비트코인 거래 앱이 아주 잘 깔려 있다. 전업 주부가 시간 날 때 반찬값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수시로 변동되는 차트를 들여다보곤 했었다.
현재 스코어 -40%. 있는 현금을 쓸어 넣었는데, 점차 그 존재가 녹아 없어지고 있다. 생활비를 운용하면서 언제 어떻게 돈이 필요할지 몰라, 항상 예비비를 준비해 두었었는데, 주식한다고 다 밀어 넣었다. 요즘엔 남편 월급으로 한 달, 할 달을 땡처리하며 살고 있다. 왠지 더 쪼들리는 느낌이 든다.
주식이 오를 때는 주식 계좌가 안전한 예금통장 같이 여겨져, ‘필요할 때 빼쓰면 되지…’라고 생각되었으나, 마이너스 수익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쉽게 빼서 쓸 수 없는 그림의 떡이 되어 버렸다. 잃은 돈은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남은 돈이라도 지켜야 하건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 망한 것일까?
주식 이외에도 망한 일이 많다. 지금 생각하면 가만있다가도 ‘꺅’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한 부끄러운 일들이 여럿이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은 계속해서 어리석은 선택을 많이도 했다.
그 덕에 채권자도 되어 보고, 집주인도 되어 보고, 사장도 되어 보았다. 문제는 어떤 사람은 이런 과정을 통해 더 큰 부를 일구는데, 나는 있던 돈 마저 다 잃어버렸다는 뼈 아픈 사실.
인생에 대해 배우는 기간이었고 수업료라고 생각하면 된다지만, 인간이란 게 본전 생각이 난다.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돈들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몰려오는 것이 사실이다. 한두 푼이 아니니까…
전래동화에서 보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대비되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그렇다면 망한 것은 내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닌가…
<혹부리 영감>에서 마음씨 착한 영감은 우연히 비를 피해 들어간 낡은 집에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이 집에 모이는 도깨비들은 이 노래를 좋아했다.
그리고 이 노래가 영감의 혹에서 나온다고 생각해 혹을 떼어가고, 그 값으로 도깨비방망이를 준다. 착한 혹부리 영감은 그걸로 좋은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헌데 이웃에 살던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이 이 이야기를 듣고 착한 혹부리 영감을 찾아와 갑자기 부자가 된 비결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고선 착한 혹부리 영감이 한 것과 똑같이 해 본다.
비 오는 날 외딴 빈 집에 가서 노래를 부른다. 거기에는 여전히 도깨비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 도깨비들은 지난번에 노래가 나온다고 해서 떼어 온 혹이 잘못되었다며,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에게 ‘이 혹도 가져가라며’ 덧붙여 준다. 화가 난 도깨비들은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에게 방망이질도 해준다.
혹 떼고 부자도 되려고 했던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은 혹도 추가로 얻고, 맞아서 골병만 들었다.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착한 사람이 상을 받고 욕심부린 사람이 벌을 받을 때 통쾌하고 시원했다. 이 두 대비가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었다.
지금 와서 읽는 이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찜찜하다. 어렸을 때는 확실히 착한 혹부리 영감에게 동일시하고, 욕심쟁이 영감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여겼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착한 영감보다 욕심쟁이 영감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자각은 나에게만 오는 것일까.
또 하나의 의문. 착한 혹부리 영감이 혹도 떼고 부자가 된 것은 착했기 때문일까? 이건 확실히 아니다. 도깨비들은 영감이 착하다는 이유로 상을 준 것이 아니다.
도깨비들은 노래를 갖고 싶어 했는데, 그것의 원인을 혹 주머니로 오판했던 것이다. 그 사람의 착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도깨비들의 탐하는 마음과 무지가 착한 혹부리 영감에겐 의외의 행운으로 작용하였다.
‘행운’
이 말이 착한 혹부리 영감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무언가 노력해서 얻은 것은 확실히 아니지 않은가.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은 이 점을 확실히 간과했다. 노력하지 않고 거저 우연히 얻은 것을, 치밀하게 노력해서 얻으려고 했다. 고급 정보를 얻겠다고 착한 혹부리 영감을 찾아가서 배우고, 그가 일러준 방법을 그대로 벤치마킹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착한 혹부리 영감이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은 온 마을에 알려졌을 텐데, 그 비법을 알고자 하고 그대로 따라한 사람은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 밖에 없었다. 그는 꽤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악인들 중에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참 많다.
이렇게 보면, 착함과 부, 악함과 실패는 그리 깊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어떤 사람이 혹도 떼고 부도 얻었는데, 그냥 원래 착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혹도 얻고 매도 맞았는데, 그냥 평소에 성격이 더럽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다만,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이 망하게 된 중요한 요인은 하나 짚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지’다.
재테크와 관련된 방송 같은 것을 보면, 무엇을 하든지 공부를 먼저 하라고 한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부를 축적하고 싶으면 무턱대고 시도하지 말고, 일이 년 정도 여러 군데서 수업을 듣고 책을 읽는데 투자를 하라고 한다.
요식업계에서 엄청난 성공을 한 백종원도 식당을 먼저 차리지 말고, 먼저 다른 식당에 일 이년 정도는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권한다.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공부하지 않고, 남의 밑에 들어가 관찰하지 않고 바로 일을 저질러 버린다. 바로 나처럼… (왠지 씁쓸한데…)
그렇게 공부하고 경험해서 뛰어들어도 모두가 다 성공한다고 볼 수도 없다.
어느 정도의 성공은 성실한 노력을 통해 성취할 수 있지만, 눈에 띌 정도의 드라마틱한 성공은 꼭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런 종류의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도 안다. 그건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는 걸…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에게서 비법을 듣고 싶어 하고, 그 비법대로 하면 자기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해한다. 막상 그대로 따라 해도 별다른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 하다.
주식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주식을 하는 것. 옆 집 아들이 일등을 했다고 해서, 같은 학원과 학습지를 끊는 일. 미용실에 가서 어떤 연예인의 머리처럼 해 달라고 하거나, 그 연예인이 했다던 다이어트법을 따라 하는 것…
이게 다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이 했던 일의 변주다.
어리석음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겉으로 드러난 수단이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을 관통하는 것이 중요하건만… 범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추종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을 응원하고 싶다. 지금 실패해서 혹도 두 개 얻고 고통스러운 상태를 겪게 되었지만, 이 모습이 너무도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그래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럴 수 있어요… 평소 아프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던 혹을 떼고 싶어 하는 건 너무 당연해요. 더 부자가 돼서 잘 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고요.
그래서 잘해보려고 도깨비를 만나는 무서움도 감수한 것이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군요.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없었고, 상황은 더 나빠졌군요. 너무 실망되고 힘들겠네요.
그래도 저는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험을 하고 기꺼이 노력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어리석음을 오랫동안 탓하며 살질 않길 바란다’고 덧붙여 주고 싶다.
주식해서 돈 잃고, 투자했다 사기당하고, 사업하다 문 닫고, 돈 빌려주고 못 받는 경우… 이 세상에 수두룩 하다.
성공한 얘기보다 망한 이야기가 훨씬 많을 것이다. 성공한 이야기가 희귀한 거다. 심지어는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 스토리에도 망한 이야기가 꼭 끼어 있다.
망한 상황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망한 상황을 붙잡고 계속 그 괴로움에 시달리며 살 것인가, 망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들에게 당한 상황에 붙들려서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로 이후 삶을 살아간다면 구제가 불능이다. 그는 계속 욕심쟁이 실패자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난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이 계속 자신을 자책하며 과거에 붙들려 살 것 같진 않다. 또 어떤 사람이 갑자기 혹도 떼고 부자도 되었다고 하면, 당장 달려가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뭐라도 시도해 볼 것 같다.
지난번엔 실패를 했으니, 이번엔 제대로 해보겠다고 다짐하고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볼지도 모를 일이다.
우선 도깨비 소굴의 위치, 도깨비들이 원하는 바를 알아냈으니, 다른 방식으로 협상이나 거래를 제안할지도 모를 일이다. 도깨비들은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고 싶어 했으므로, 마을에 내로라하는 소리꾼을 데려가 노래를 들려주고 혹을 떼자고 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진짜 똑똑한 사람들은 모든 것에 통달한 채 무언가를 제대로 시도해보고 성공으로 향해 갈지 모르겠다.
나 같이 무식한 사람은 우선 뛰어들어보고 쓴 맛을 본 후에야 배울 수 있게 된다.
무턱대고 주식을 사고 나니 경제에 관심이 생기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주시하게 된다. 주식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경제 요인에 연동되어 있다. 우리나라 주식은 미국 주식의 영향을 받고, 미국의 금리 변동이 우리나라의 금리에, 주식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금리는 부동산 가격과도 연관되어 있고, 부동산 가격은 원자재 가격과도 관련이 있다. 원자재 가격은 다른 나라의 전쟁이나 기후와 관련이 있다. 이래서 주식가에 가장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가 모여드는구나 싶다.
창업을 해보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보이는 사업 아이템 이외에 챙겨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한 가지 요인으로 사업이 잘 되는 것도 아니었고, 아주 특별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굴러가게 되는 것도 있었다.
창업을 해서 작은 장사를 하는 것조차도 쉽게 볼 일이 아니었지만, 아예 접근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다시 창업을 하게 되면, 예전에 한 달 동안 고민했던 것을 며칠이면 다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또 다른 문제들이 줄줄이 따라 나오겠지만…
시골에 가서 살아보지 않았더라면, 단독주택에서 사는데 얼마나 많은 육체적 노력이 들어가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그리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사계절의 날씨가 사람에게 주는 불편함, 벌레에 피부가 뜯기기도 하고, 뱀이나 지네, 벌에 물리 까 봐 몸을 잔뜩 움츠리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그렇게 많이 보고 들었어도, 직접 살아보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이렇게 저질러 보고 망했지만, 그래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으니 그리 억울해할 것만은 없다. 여기에 멈추어 있지 말고, 그다음 스테이지를 모색해 보면 될 일이다.
그나저나 착한 혹부리 영감은 부를 지킬 수 있을까? 아마도 오래가지 못할지 모른다. 착한 혹부리 영감도 무지하긴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자신의 특별한 능력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부를 창출하거나 부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힘들 것이다.
특별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있는 것을 야금야금 쓰면서 조용히 살아갈 수는 있겠다. 하지만 또 다른 욕심쟁이 영감들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만 같다.
어쩌면 착한 혹부리 영감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행운은 재앙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그저 아무것도 없이 착하게만 살았을 때 만나지 않았을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 같은 인연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돈을 다 잃게 된다고 하더라도 착한 혹부리 영감은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사심도 욕심도 없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무지해서 모든 걸 잃어도 아예 욕심조차 없었으니 괜찮다 여기지 않을까.
어쨌든 욕심 많은 것보단 착하게 사는 사람이 인생에 있어서는 한 수 위다. 세상에 딱히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을 당할자가 누구인가?
세상 아쉬울 것이 없이 사는 사람이 갑 중의 갑.
나는 여전히 ‘을’이다. 돈도 더 벌어보고 싶고, 사랑도 더 받고 싶고, 세상의 인정도 받아 보고 싶고, 자식도 잘 길러보고 싶고,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보고 싶기도 하다. 재미있는 일을 더 해보고 싶고, 맛있는 것도 더 먹어 보고 싶고,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아서, 세상사에 집착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착한 혹부리 영감의 길보다는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의 길 위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아무래도 앞으로도 계속 망할 것만 같다. 무언가를 더 얻겠다고 부지런히 움직여 열중하다 좌우 분간을 못해 의외의 복병을 만나고, 잔뜩 혼쭐이 난 후 상처받아 울먹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이번 생은 끝날 것이니, 한바탕 욕심내서 재미있게 살다가 가는 것도 흥미롭지 않겠는가!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브런치 메인에서 아래의 글을 읽게 되었다. 사업을 하는 과정을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데, 사업 성과 위주로 내용을 올리려다 보니 연재를 하기 힘들었다고…
좋은 사업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으므로 연재도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생각의 전환을 하는데, 어떤 책에서 사업을 성과가 아니라 프로세스로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를 과정으로 상정하고, 그 과정 자체를 고스란히 적으면 되겠다고 생각하셨다고…
독자로서 그 과정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더할나위 없이 소중하다. 계약이 어그러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고, 결국에는 가고자 했던 바로 그곳에 가게 될 것이라는 것에 동감,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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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으로 향해 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욕심쟁이 혹부리 할아버지도 참다운 삶의 길을 찾아가는 길 안에 놓여져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