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꼭 드는 선물>,글뿌리
어려워하는 질문 몇 가지가 있다. 대체로 질문을 받으면 당황해하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유독 어려운 질문이 있다.
그 질문은,
‘사고 싶은 거 뭐 없어?’
이런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이라…
아주 예전에, 어렸을 때 아빠가 옷을 사주시겠다고 해서 따라 간 적이 있었다. 별 날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맛있는 것도 먹여주고, 옷도 사준다고 했다. 뛸 듯이 기뻤지만, 문제가 있었다. 가게에 들어섰는데, 도대체 뭘 골라야 할지 몰라 아득했다. 이것도 들춰보고 저것도 들춰보고,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였다.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결국 저렴하고 평범한 티셔츠와 헐렁한 바지를 골랐다. 실용성은 뛰어났지만, 기분이 내켜서 한턱 쏘시는 아버지가 더 비싸고 좋은 거 사도 된다고 하셨는데 그러질 못했다.
한 번은 친구가 생일 선물로 문구점에서 갖고 싶은 거 하나를 사준다고 했다. 기쁜 마음에 고르고 골랐는데, 벽면 저 밑에 달려있는 주황색 머리핀 하나를 골랐다.
친구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 저렴한 걸 골랐는데, 디자인도 촌스럽고 별로였다. 그걸 한참만에 고심 고심해서 골랐더니, 그 친구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정말 그거 갖고 싶어?’라고 물었던 것 같다. 나는 불분명하게 ‘그렇다’고 대답했고, 친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핀을 계산대로 가져갔었다.
지금까지도 쇼핑을 즐겨하지 않는다. 무언가 가지고 싶긴 하지만, 이상한 것을 고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샀다는 기쁨보다는 잘못된 선택을 후회할 것 같아 물건 사길 회피 한다. 딱 마음에 들어서 산 것이 있는가… 이렇게 쇼핑 경험이 적다 보니 물건 보는 눈은 더 없어져 버렸다.
생일이 다가오면 조금 공포스럽다. 무언가 받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무얼 받으면 좋을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뭔가를 줘도 실망스럽기만 하다. 줘도 문제, 안 줘도 문제… 이러니 그냥 생일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어리바리함은 내 물건 살 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물건을 준비해야 할 때도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게 된다.
그래서 부모님께는 ‘현금’을 선물한다. 남편 생일에도 그냥 현금을 준다. 아가씨 생일 때는 상품권. 이런 식… 친구에게는 커피나 케이크 기프티콘을 준다. 조카한테는 좋아하는 걸 물어봐서 사 준다. 그다지 나쁜 전략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하니 주고받는 기쁨이 반감된다.
그림책 <내 마음에 쏙 드는 선물>에서 주인공은 나완 달리 생일을 맞이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빠와 생일 선물을 사러 갈 기대에 차서 말이다.
그런데 장난감 가게에 갔더니 문을 닫았다. 그만 돌아가자는 아빠의 말에 아이는 유일하게 문을 연 ‘페퍼의 동물 가게’에 들어서게 된다.
야릇한 분위기의 동물 가게에는 신기한 동물이 많았다. 가게 주인 페퍼 아저씨는 아이에게 이 동물, 저 동물을 보여주었다.
뿔 달린 쥐, 구불구불 뱀, 배를 타는 쥐, 북치는 아기 공룡, 뿔 달린 얼룩말, 빨간 아기 용, 쌍둥이 개미, 재주넘는 개구리, 재잘재잘 펭귄, 잠꾸러기 박쥐… 셀 수 없이 많은 동물을 보여주었다.
아이는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그건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았다. 페퍼 아저씨는 지치지도 않고 끝까지 선물을 내놓았다.
만약 내가 아빠나 페퍼 아저씨의 입장이 되었다면,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고르라고 재촉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얘는 왜 이렇게 까탈스러워? 대충 고르지!”라고 속으로-겉으로는 심하게 못하고- 뇌까렸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기다려주는 어른들 사이에서 이것저것 고르다 결국 ‘마음에 꼭 드는 선물’을 발견하고야 만다. 아주 예쁘고 귀여운 강아지와 만나게 되었다.
이 강아지를 안고서 아이는 얼마나 큰 기쁨과 충만함을 느꼈을까. 이 강아지는 그냥 강아지가 아니라, 기대했던 생일에 여러 고심 끝에 얻게 된 ‘마음에 꼭 드는 선물’이었다.
딸이 어렸을 때, 이 동화책을 자꾸자꾸 읽어달라고 했다. 지금은 책등이 다 헤져서 너덜너덜하다. 그래서인지 이 놈은 쇼핑의 천재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 마음에 꼭 드는 걸 발견하고 얻어내고야 만다. 그러곤 한껏 기분이 좋아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어낸다. 기분이 날아가는 것이 옆에 있는 나에게까지 전달된다.
내 마음에 드는 선물은 어떻게 고를 수 있는 것일까?
우선 대상을 눈앞에 두고 좋은 마음이 드는지, 나쁜 마음이 드는지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잘 알아차릴 수 있는 강력한 신호는 감정이다. 자기에게 좋은 걸 접하면 좋은 감정이, 나쁘고 해로운 걸 접하면 나쁜 감정이 들게 마련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좋고 나쁜 것을 잘 구분하고 거기에 반응하고 자기가 원하는 걸 골라낼 줄 안다.
생각이 많은 사람, 아니 걱정이 많은 사람은 주변의 조건이나 다른 사람의 반응 등에 많이 신경을 쓴다. 과연 ‘내가 좋게 여기는 것이 맞는가’ 스스로를 의심하고 주변에서 확인해 주길 바란다.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주변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고르기도 한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멋지다고 하는 것, 적당하다고 하는 것을 내가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 선택한다. 그러곤 무언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버거워하곤 한다. 정말로 원하는 것을 얻었다면, 환한 웃음과 만족감이 들어차야 하는데, 후회와 좌절의 감정이 찾아든다면 무언가 이상한 것이 아닌가.
선택을 하고 나머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선물을 '고른다'는 것은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최선의 것을 택하는 것이다. 다른 것도 좋아 보일 수 있고 더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런 마음을 걷어내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 하나를 추려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저것 사고 싶은 걸 다 사는 것은 선물을 고르는 것이 아니고 쇼핑을 하는 것과 같을 테니 말이다.
선물에 있어선 다다익선이 아닌, 다른 것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는 것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기에, 선물 '고르기'의 달인은 선택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의 절묘함은 바로, '나머지는 다 버린다'는 것에 있고 말이다.
이런 대범함이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그건 이번이 끝이 아니고 ‘다음’이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데서 온다. 선물을 받을 기회가 더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세상은 안전하고 친절한 곳이고 필요한 것을 언제나 내어주는 곳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내가 선물을 고르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던 것은 버리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어느 정도 흡족한 선물을 고르고 만족하기에는, 이번 기회가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최대한 '뽕을 뽑고 싶다'는 욕심이 올라오곤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욕심을 채우려면 더 비싸고 좋은 걸 골라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더 왜소하고 지질한 걸 고르는데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최대한 확보하고 싶다는 욕심은 나지만, 욕심부린다는 오명은 얻고 싶지 않으니 주저주저하며 선택을 못하고 있다가 악수를 놓고야 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원했었는지' 잊어버리고 길을 잃고 만다. '선물을 고르고 기뻐한다'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이 사건을 받아들이면 좋겠다만, 이상하게 여러 경로가 끼어들어 복잡해지고 뇌 회로가 꼬이며 김이 나다 급기야 다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번 상황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르고 나머지는 아쉽지만 마음속에서 떨쳐 내 버리면, 또 다른 상황에서 무언가를 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주는 건 그런대로 하면서, 받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은 무언가를 받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좋은 것을 눈앞에 두고도 '이건 내 것이 아니야', '나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다.
받으면 빚을 지는 느낌이 들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한 번 받으면 언젠가 갚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의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니고, 빚을 떠안는 느낌이 드니까 흔쾌히 받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받을 때 왠지 비굴한 느낌이 든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은 무언가를 주면서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을 통제의 일환으로 생각하면 받는 것이 쉽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잘 주는 것만이 아닌, 잘 받는 것도 마음을 크게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받는 사람이 잘 받아주지 않는다면, 주는 사람의 의미도 기쁨도 사라질 것이기에. 아이가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이 아니라, 그 저렇게 마음에 드는 선물을 골라 샀다면, 아빠의 마음도 미적지근하지 않았을까.
세상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많다. 아니, 세상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그저 나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생겨난 것이 태반이다. 하지만 이 세상이 의미가 있는 건 내가 세상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같이 하고 싶거나 멀리하고 싶은 것, 추구하고 싶거나 포기하고 싶은 것 등등..... 끊임없는 가치 평가와 의미부여를 통해서 세상의 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하고, 세상이라는 좌표 속에 나는 어디에 위치해있나 견주어 보며 살아간다. 이런 과정이 아름다운 색채를 만들어 세상을 빛나게 한다. 인생이 재미있다는 건 이런 다양한 관계의 줄타기를 잘하고 있다는 것이고 말이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 선물 또한 없다. 지극히 내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이 좋은 선물이다.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으면 세상이 회색빛으로 그저 그렇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무얼 하더라도, 무얼 얻더라도 '기쁨'이 가슴속에 스며들지 않는다. 우울하고 침체되어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작은 선택지 속에서도 가장 마음에 쏙 드는 나만의 선물을 고를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빛나고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