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경희의 봉회장 봉건우
24년 첫 인터뷰네요. 새해의 시작과 함께 다시 한번 새로운 목표와 희망을 세웁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거 같은 가운데,
한 순간을 고를 수 있다면 삶의 언제로 떠나고 싶으신가요?
돌이켜보니, 삶은 늘 같은 단편들이 아녔어요. 때로는 도전에 직면하고, 때로는 기쁨을 맛보며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요. 마치 연속극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거 같아요.
오늘은 학교 게시판에 유난히 많이 오른 한 친구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경희대학교 전 총학생회장이자 도전을 돕는 봉건우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이야기를 통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경험이 삶에 어떤 방향성을 전달하는지에 대해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돌이켜보니 늘 되게 빠르게 갔던 거 같아요. 군복무 때 제외하면요.
학교 신문사 인터뷰가 11시 있어서 나갔다 회의하고, 운동하고 저녁 먹고 지금 왔어요.
23년엔 캠퍼스타운에 있는 제품을 ppl 하는 영상도 찍었고, "잇다 마켓"운영을 했어요. 마무리한 지 3일이 되었네요. 동대문구에는 팝업스토어, 편집샵이 없어요. 그래서 생활체험형 쇼룸을 목표로, 여러 제품들을 디피하고 무인마켓운영도 했었죠.
다섯 편 정도 올라갔네요 첫 영상은 천 뷰를 찍었는데, 쉽지 않아요. 대학시절부터 동대문에 줄곧 있었어요. 지역에 대한 애착이 있었고, 그래서 동대문구를 소개하는 영상을 찍으며, 지역 언론의 역할을 해보려고 했죠.
대학생 상권하면 신촌이 먼저 떠오르잖아요. 사실 신촌/연남/망원이랑 동대문구랑 2030의 수가 비등하거든요. 동대문구의 잠재력과 아직 발현되지 않은 거 같아요.
대학시절, 그중에서도 2022년과 일 학년 때요. 제 인생에 자양분이 된 때는 2022년 때고, 가장 돌아가고 싶은 때 일 학년시절이거든요. 일 학년 때의 허물없는 모습이 참 소중해요. 총학생회시절은 행동이 달라야 했죠.
가장 많은 말은 '고맙다'와 '멋있다'였어요. 일 학년 때와 22년도의 이유는 달랐죠. 처음에는 오티 때 열정적으로 놀며 '진짜 멋있다'는 칭찬을 받았어요, 조금은 한심한 멋짐이었죠. (웃음)
22년도에 멋있다는 뉘앙스가 확실히 달라졌죠.
그 사이에 총학생회장이 되면서, '봉회장'이라 불렸고 집행부원에게 진정한 멋있음을 인정받았습니다.
고마움을 표현받는 일들이 많았어요. 요즘 힘들 때, 그때의 응원이 큰 힘이 되고 있어요.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변화들이 있었죠. 예를 들어, 2년간 중단되었던 축제를 다시 시작했고, 기업들과 제휴를 맺어 학생 복지도 향상했거든요.
학생사회 몸을 담으면서, ‘학교라는 공간이 평생 남는데, 학생들에 우리 학교를 자랑스럽게 하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경뽕을 채워주자'는 목표를 세웠죠. 동문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일도 했고요. 동문께서 운영하는 한라산소주를 축제에 도입하고, 캠퍼스타운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행사와 교류를 진행했어요.
사실 학생분들이 가장 좋아한 업적은 학점 환산식의 개선이었어요. 학교마다 3.5, 4.1 다른 기준의 학점을 쓰고, 이걸 100점 만점의 점수로 환산하는데, 경희대는 타 대학에 비해 낮은 GPA 환산 기준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이로 인해 우리 학생들이 취업이나 대학원 입시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하고 있었거든요.
처음 대학 본부에 문의했을 때, 이 문제가 교수님들의 권한이라는 답변을 받았어요. 저는 '학점 벨트에 묶이는 것 자체가 교수권의 침해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며, 더 자유롭게 학점을 줄 수 있는 방향의 개선을 제안했죠.
논리적인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보다 더 아시는 교수님들이시니까요. 한 회의에서 교수님이 "GPA 환산식을 올리면 학점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 있다"라고 우려하셨을 때, "학생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말씀드렸죠. 부총장님과의 회식자리에서도 논리와 감성을 적절히 섞어 강조했고요.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죠. 성적과 상관없이 잘나게 사는 사람도 많고요. 사회 나온 이후 각자 자신의 가치와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요. 결국 각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정확한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전 대체로 이성과 감성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고 해요. 그 지점을 따라갈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느끼는 편이에요. 누군가의 도전을 도와 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좋아요. 그 과정에서 느끼는 뿌듯함과 감사의 말들에서 큰 기쁨도 받고요.
19년도에 의무소방으로 갔거든요. 이유는 두 가진데, 그 당시 제복공무원을 흠모했고요.
군대에 있으면, 흘러가지 않는 시간과 싸워요.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맞아요. 꼼꼼하게 뽑아요. 서류심사, 체력검정, 그걸 통과하면 필기시험을 봤어요.
국어, 역사, 상식 시험이 있죠. 그리고 적성검사, 면접. 그렇게 5단계를 거치며 가요.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의 CPR이 기억에 남아요. 전기장판에서 시작된 불로 인해 환자 분 심장이 멈춘 상태였어요. 다행히 그분의 숨과 맥박은 돌아왔지만, 결국은 화상으로 인해 생존하지 못하셨어요. 골든 타임 내 CPR을 실시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명확한 징후가 나타나요. 얼굴에 열꽃이 피는 것처럼요. 그렇지만 또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리 힘들더라도,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렇죠. 힘든 기억도 많았지만, 모든 것이 영예로웠어요. 화재현장에 직접 출돌해보기도 했고,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분들을 목격하기도 했고요. 제 군 생활에 대해 글로 정리한 적이 있는데, 그 책의 제 챕터 제목은 <'영웅과 소년 사이에서'> 예요. 당시 저는 소방보조인력이잖아요. 군복무를 하러 간 23살의 소년과 소방관의 영웅 같은 사명감 사이 어딘가 서서,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찾고 있었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 미국에 일 년 유학을 갔다 왔죠. 아버지 따라간 거라, 평범한 지역에 있는 국립고등학교를 갔어요. 하이틴과 같았고,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요. 그런 뒤 한국에 가서, 전 고3이 스무 살이었어요.
학교에 중국, 인도인이 많아 전 몇 천명 중 한 명인 영어 못하는 애였어요. 그때 제가 외국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를 고민을 할 때 이 책을 읽었어요. 사금파리 한 조각, 린다 수박.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이었고요.
우리가 도전하고 싶은 건 있는데, 쭈뼛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전 외국인 사이에서 처음엔 쭈뼛쭈뼛했거든요.
때때로 “나는 안될 거야” 생각하는 일은 자기 객관적인 평가일 수도 있지만, '억지 자존심'일 수도 있어요.
닥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절당할 것에 대한 걱정일 수도 있어요. 이 문장을 접한 이후부턴 망설임이 실제로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떠올렸어요. 그리고 적어도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 했죠.
2014년, 미국 유학 중이었을 때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었어요. CNN 헤드라인에 'Sewol ferry falls down'이 보도되고, 미국 도서관에도 노란 리본이 걸려 있었죠. 타지에서 보면서 더 아팠어요.
동시에 그해에는 브라질 월드컵과 인천 아시안게임도 있었기에 뜨거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느꼈어요. 그때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거 같아요. 내가 속한 공동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강한 동기부여요.
작은 점 하나를 찍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죠. 어떤 일이든 가능성을 봤다면, 도전해 왔던 거 같아요. 이건 내가 하기 그렇지, 하고 재는 거 있잖아요. 전 해야 하면 하는 편이에요.
명확한 로드맵은 없었지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괜찮은 기회들은 줄곧 잡아 왔던 거 같아요. 군 복무 후 자율전공 학생회장을 맡았고, 이어 총학생회장이 목표에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 하면 된다는 건 없었어요. 작은 성공들이 모여 큰 성취가 되는 거 같고요. 될 것 같은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려고 했어요.
총학생회장으로서, 제 이름으로 기억되는 성과는 동료들의 노력 덕분이에요. 일부 장학금을 받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거거든요. 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성과를 줄 수 있을까 와,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요즘은 아나운서 학원도 다니는데, 다양한 영역을 열어뒀어요. 근데 제 노력으로 인해 누군가가 도움을 받았을 때 정말 쾌감을 느꼈던 경험을 잊지 못해요. 또 바꿔내는 원동력이 된다면,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정승제선생님이 그러잖아요. 강남에 30평 아파트 사면 행복할 거 같니? 라구요. 단순한 사익 추구는 한계가 있다는 거 같아요. 저도 제 삶이 먼저지만, 함께 행복하려면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하는 가도 고민해요.
타산지석, 즉 '다른 산의 돌'을 의미하는 이 말처럼, 다른 사람의 지혜에서 배우는 것은 중요해요. 특히 윗 세대와의 협업을 통해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들을 해온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보는 일이죠.
조언을 받을 때 우리는 무언가 얻어가는 거잖아요. 또, 저에게 기회를 주신 분들은 윗분들이시거든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거 같아요. 듣는 사람에게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을 남겨놓으면 조언이고, 또 이야기 속 알맹이가 있으면 조언이죠, 그런데 뭐든 과하면 잔소리가 되고요.
건우님은 총학생회장으로서의 리더십, 의무소방 복무를 통한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 긍정적인 영향력이 많은 동기였어요. 그의 책임감을 인정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처럼, 목표를 향한 확고한 의식과 열정을 볼 수 있었는데요. 책임을 지되, "자존심을 부리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그의 겸손함과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또 타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이 과정 속 얻는 지지가 우리 자신에게도 다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 힘은 우리 자신의 목표를 향한 여정에 또 용기를 실어주는 거 아닐까요?
새해라는 시작은 늘 긍정적인 변화들을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 함께 성장함과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지금 이 길을 걸어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