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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부름 지나 Jan 14. 2024

을지로 25살 청년은 어떻게 망했나

#11편. 벌레 나오던 곳에서 공사만 두 달?



안녕하세요 독자님, 식부름 지나입니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는 1월에는 도전 앞에 선 사람들이 궁금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담대한 마음은 타고나는 것인지, 뒤돌아보면 한뼘 커진 자신을 발견하는지 같은 것이요. 그 질문에 류제국이 떠올랐습니다. 제국은 지난여름부터 건물 공사를 통해 갤러리 사업을 준비하던 친구였는데요, 그 후 갤러리로의 이용은 그만 두기로 했다 소식을 전해와 자세히 나눠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에피소드는 두 편으로 구성됩니다.  


11편. 을지로 25살 청년은 어떻게 망해갔나

12편. 실패 아닌 성공, 류제국은 왜 일어섰나





(b-인터뷰어)

그동안 소식만 듣고, 오는 건 처음이네요.

을지로 건물 리모델링, 얼마나 걸렸나요?

 

(a)

꼬박 두 달 동안 먼지 구덩이에 있었죠.  

처음엔 공사 착수할 여건이 안 됐어요. 여름에 옷을 싸매고 일했어요. 마스크, 긴팔 긴바지, 군화 신고 건물 안의 쓰레기들, 유리, 조명, 박스, 바퀴벌레들을 처리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어요. 무서웠어요. 괜히 가져온건 아닌가 했죠.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학교 선후배, 울산에서 올라온 친구들까지 10명 정도가 붙었어요.


그래서 더 어떻게든 살린다. 앞으로 을지로 올 때, 한 번씩 들리게 해 주자.

그렇게 다짐했지만 실패했죠.




(b)

아아.. 갑자기 실패라뇨. 이야기의 시작으로 돌아가봐요.





을지로에서의 시작은 어땠나



(b) 을지로 건물은 왜 고쳤나요?

친구와 온라인 미술유통 플랫폼 사업을 하던 중에,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시작했어요.

근데 저흰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2-3년 뒤에 철거해야하고, 투자가 안되는 건물을 찾았죠.

시행사 대표님이랑 법인을 세워 지분을 나누고, 월세없는 조건으로 쓰고 있어요.


(b) 그래서 처음부터 잘 되었나요?

아뇨. 노는 건물은 아니었어요. 약간의 임대가 이뤄지고 있었죠. 기획안만 50페이지써서 보여드린거 같아요.

그렇게 해서 허락을 받았는데, 또 건물이 쓰레기장이었어요. 완전 바퀴벌레나오는. 2,3,4층 전부다요. 1960년대 건물에 유지보수가 안되고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해보는 거 해보자. 해서 폐기물 처리부터 시작했죠.


 

(b) 공사 과정은 어땠어요.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모든 걸 저비용으로 처리해야 했죠. 공사도 직접했구요. 재료 공수도 직접 했어요. 한번 갔을땐 욕먹고, 두번째는 아는척하고, 세번째는 싸게 흥정을 하고, 이렇게 페인트, 전기 설치를 했죠. 목수도 제가 했어요, 근처에 있는 합판사서, 재단해서 자르고. 근데 그 모든 과정보다 빡빡한 일정이 정말 힘들었어요.

또 처음에는 화장실도 없었거든요. 페트병을 모아뒀어요.



(b) 그래도 지나보고 나니, 순탄했나요?

텃세가 있었어요. 저희에게 을지로 터줏대감이라면서 건물에 그냥 들어오신 분이 있었어요, 항상 술에 취한 채 와서, 담배심부름도 시키셨죠. 제 돈으로 사드리고, 몇 번 다녀왔어요. 그것쯤은 당연히 감수하는 거였어요.


근데 한번은 저희 건물 4층 루프탑에 와서 술 마시고 노상방뇨를 하시더라고요. 그리곤 본인이 소개해준 인테리어 사장님에게 진행하라고 하시면서 영문 없이 저희를 한 시간 동안 혼내셨던 거 같아요. 그때 더 이상 안 되겠다 생각했고, 지인분의 도움을 통해 다신 안 오시게 해결을 했죠.



(b) 들어야 하는 꾸지람도 아니었잖아요.

그렇지만 저 혼자만 엮인 게 아니에요. 같이 하는 분들을 생각해야죠. 어느 순간에도 피해가 가면 안 되는 거예요.

두가지 생각을 했어요. 첫 번째는, 이것도 못 이기면, 내가 뭘 하겠냐는 생각이 있었어요. 두 번째는 해결책이 당장에 주어지지 않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만 집중을 하는 거였죠.



(b) 그 후 애틋한 순간이라고 한다면...

완공 후 첫 오픈일이요. 전기 화장실은 외부에 맡기고, 8월 1일에 시작해 꼬박 세 달만인, 10월 28일 목요일에 첫 오픈을 했어요.

그 날 4층 옥상에 사십명 정도 모여 축하 파티를 하는데 공간이 단순히 이뻐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와야 사는구나 생각했어요. 공간은 사람과 어우러질 때 진짜라는 걸 느꼈죠



또 공사 과정 중 기억나는 일이라 하면.

저희가 천장에 레일을 달아서, 콘크리트를 뚤었어요. 그런데 뚫을 때마다 재가 떨어지는 거예요. 공사가 고되다는 걸 자주 느꼈고, 그 후로 <'더 이상 힘든 일이 와도 버틸 수 있겠다. 웬만한 일들을 다 쳐낼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고대한 갤러리 오픈 D-1,


(b) 그래도 오픈하고 나서는 괜찮나요?

시작이 반인 거 같아요. 이 말은 시작을 한 순간, 그 이후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시작을 하기 전에 준비를 많이 하잖아요, 근데 시작 뒤에 또다른 반절이 기다리고 있어요.



(b) 그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죠.

오픈하기 전날 설치한 레일이 뚝 떨어졌어요. 그림이 깨졌죠. 새로 단 레일에 달 작품의 무게를 고려하지 못한 거예요.



(b) 아... 헐.

또 전시하면서는 어땠나요,

2, 3층이다 보니 동시에 관리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수익을 내기 힘들다는 것도 느꼈죠, 그때 큰일 났다. 생각이 들더군요. 겹쳐서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는데 운영하는 건물은, 1960년대 방한이 전혀 안 되는 건물이었고, 냉난방기를 설치할 돈도 없었죠.



(B-인터뷰어) 네에... 근데 왜 이렇게 까지 한 거예요?

(A) 아무 생각 없이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넘기자하고 출근했거든요. 긴 이야기예요.

(B) ㅋㅋ. 그건 부록 한 편 빼놓죠.

(A) 그게 좋겠네요. 그때 힘들었지만, 잘살았구나. 생각이 들어요. 아직 해야할 이야기가 있어요.



무사히

버텨보자는 소망으로 출근


그러다 다가온 23년 겨울,


그날은 작가 두 명의 전시가 끝나고 세명의 전시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b) 그럼 이때가 마지막 시련이었나요?

지금까지는 그렇죠. 동파 정말 무섭더라고요. 추위 속에서 애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b) 마지막이길 바라요..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셔터를 열자마자 물이 첨벙 하더라고요. 다리를 끌면서 올라가야 했죠. 건물의 2, 3층 다 발목까지 물이 찼어요. 퇴근한 밤 10시부터 새벽 7시까지 물이 샌 거예요.


그날 2층에는 신진작가 개인전, 3층에는 15명 단체전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개인전 작품은 손상이 안 갔지만, 단체전 몇 분은 펜화들이었거든요. 물에 취약했죠. 액자 안 습기가 찬 것도 있었어요. 한편, 전부 2주 무료전시로 섭외한 거였지만 그림 값은 다 배상했거든요. 보험도 없었어요.




(b) 벌써 걱정이 드는데, 괜찮았나요? ㅜㅜ.

그림 봐야 하니까 물 샌거 보고 바로 뛰어 들어갔어요. 그리고 이층 계단에서부터 그대로 미끄러졌어요. 그 길 겉이 얼었던 거예요.


그래도 일어나서 물 다 빼고, 얼음 깨고, 라디에이터 다 틀고 젖은 것들을 말렸죠. 그러고 나서 시계를 보니 다섯 시예요. 그 날 아침 여덟 시에 출근했거든요. 혼자 다 처리하고 있았죠. 다 끝내교 병원 가니까 다리에 금이 갔다고, 어쩌다 넘어졌냐 물으시는 말에 정말 울고 싶은데, 눈물도 안 나왔어요.


하는 내내 정말 상상 못한 변수가 터지니까, 오히려 재밌게 느껴질 정도더라고요.






그래도 그 이후 실질적인 좋은 점도 있는 데요.


웬만한 공구를 다 다룰 수 있게 됐어요.  길이만 80센티 되는 드릴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려 공사를 해요. 전 처음에는 드라이버도 못썼고요. 근데 그냥 눈 떠보니 다하고 있어요.


그 이후로 뭐든 할 수 있다. 웬만한 일들을 쳐낼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4층 옥상의 디자인
동파된 날


(b) 아고 이야기만 들어도 고통스러운 걸요..


그래도 을지로 때 도움 받은 분들도 많을텐데

그 중 특별히 뿌듯했던 순간들도 이야기해봐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현성환 작가님이세요. 실이랑 은으로 작품을 그리세요. 전시장 내내 사람이 없어도 자리를 지키셨어요. 동파가 있던 날에 같이 힘내자 한 게 생각나요.  



(b) 그때 나를 힘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이고,

반대로 내가 동료들에 힘을 준 경험은 무엇인가요?

경험에 포커스를 맞춘 동료들이 많았어요. 제게 “이런 경험 언제 해보겠냐.”는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위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힘들어도, 항상 감사했던 거 같아요.



(b) 그렇게 경험에 포커스를 맞춘

동료와 일하면서 느낀 다른 점이라면요,

긍정적이면서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해주죠.

또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맞닥뜨릴 때 있잖아요. 그들은 문제점과 개선점을 같이 말해줬어요. '문제가 있다. 그러니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처럼요.



도와준 친구들. 제국은 사진에 없다.



근데 끝,

진짜 끝?


(b) 아아. 그렇구나. 근데

지금 새해를 맞는 시점에서 미술 갤러리를 그만두게 되었죠. 그만두게 된 건, 적자 폭이 컸고요. 사람들을 모으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지인 빼곤 오게 하는 게 어려웠고, 또 작품을 판다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았고요. 제가 지금까지 도전을 해본 거면 이제부턴 정말 실행하고 싶어요..



(b) 전후 생활에서 달라진 면이 있나요?  

많이 달라지겠죠. 건축기사 준비도 하구 있어요. 전처럼 몸이 바쁘진 않고 엉덩이가 무거워야 할 거예요.


(b) 끝나고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없었어요?

제 인생이 끝난 게 아니니, 다음 목표를 향해 가야죠. 방향과 목표가 명확해졌고 준비해야 할 단계 같아요.



그리고 시작,


(b) 이제 뭘 할 건가요?

현재 기준으로는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월 20일까지 경희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세 가지 브랜드가 진행해요.



(b) 여긴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어가는 건가요?

이 유휴 공간을 살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처음엔 팝업스토어 위주가 되겠지만, 책을 읽거나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더 한다는 식으로요.



(b) 자랑해 주시죠. 이 공간을!  

을지로 4가 역에서 2분이면 올 수 있습니다.


저희 들어오고 나서, 이 앞 을지로에 패티스라는 힙한 버거집이 생겼는데, 12시면 줄을 가득 서요.

역세권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안 다니던 거리죠. 그렇지만, 알리고 나면 사람들이 오는 걸 느꼈어요. 결국에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 건데, 저희도 이 공간을 알리기 위해 노력을 하겠습니다. 잠깐 쉬러 들려주세요!









경희대 창업사무실을 쓰던 당시, 저 포함

친구들 고민도 먼저 눈치채고 늘 도와주던 제국.

제국은 '기브 앤 테이크'에 대해 계산적인 것이 아니라, '주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줄 수 있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해주던 친구였는데요. 오랜만에 회기가 아닌 을지로에서 만나, 리모델링 과정부터 여러 이야길을 듣고 왔습니다.



2023년 을지로의 여정은
먼지와 잔해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무더운 여름날 철거 작업을 시작하며, 공간을 새롭게 탄생시키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첫 오픈 날, 옥상에서 모인 40명의 사람들과 함께 축하하는 순간은 단순히 공간의 완성을 넘어, 커뮤니티와 연결되고,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의 탄생을 의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눈 웃음과 땀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꿈을 향한 공동의 노력이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들의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중 겨울철 예상치 못한 동파 사고는 그들을 시험에 들게 했지만, 모든 순간들은 의미를 함께 남긴 듯합니다.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기까지의 과정도 기대가 됩니다.




우린 인생에서 마주치는 도전과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더 나아가는 거겠죠?


여러분에게 인생의 그때는 언제였나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편 부록은 차주 화요일 1시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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