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방에 자매가 같이 산다는 것은
회사에서 피가 말린 후 집에 가는 길이었다. 늦은 시간이었다. 울음이 나오는 걸 꾹 참고 집으로 걸어갔다. 집 문을 여니 언니가 있었다. 언니를 보자마자 바닥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런 나를 보며 언니는 사진을 찍었다. 오열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운데 귀여웠다고 했다. 언니는 지금도 그 사진을 가지고 놀린다. 자매란 이렇다. 심각할 순간에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만든다.
머리가 크며 개인 공간을 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같은 방을 쓰던 형제, 자매도 어느 정도 자라면 각자의 방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런데 우리는 20살이 훌쩍 넘어서도 개인 공간이랄 게 없는 공간에서 계속 붙어살고 있다. 뭘 하든 다 노출되는 방 한 칸에서 지지고 볶고 싸운다. 그럼에도 계속 붙어산다. 처음에는 월세 나가는 게 아까워 붙어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이제 없으면 괜히 아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붙어있으면 서로 계속 나가라고 싸운다. 그러면서 계속 붙어 있는다. 세상은 원래 아이러니다.
내가 돈을 버는 동안 언니는 수험생이었다. 언니가 공부하는 동안 내가 돈을 벌어 언니를 먹여 살렸다. 지금 나는 일을 그만뒀다. 언니가 돈을 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언니가 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 돈을 벌어오는 언니가 문득 멋있어 보여 청혼했다. 내가 집안 살림할 테니 언니는 계속 돈을 벌어와 주겠니? 대차게 거절당했다. 집안일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무슨 집안일을 하겠느냐고 했다. 빨리 일이나 시작하라고 했다. 그래야 자기가 일을 그만둔다고. (뭐?)
엄마는 우리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언니에게 동생의 근황을, 동생에게 언니의 근황을 물어보실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의 대답은 한결같다. 언니는(동생은) 잘 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쩜 그렇게 둘이 똑같이 대답을 하느냐고 하셨다. 사실 진담이다. 내 걱정은 되는데 언니 걱정은 안 된다. 언니도 그렇단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제발 내 걱정 좀 해줄래. 도대체 뭘 믿고 잘 될 거래. 아. 언니가 나 먹여 살리려고? (찡긋) 그러자 언니가 대답한다. 아니, 네가 잘 돼서 나 먹여 살릴 거잖아 (찡긋). 그렇게 또 싸운다. 그냥 언니가 계속 돈 벌라고! 아 싫다고! 너 빨리 돈 벌라고!
자매는 최고의 친구라고 한다. 한 살 터울로 자라온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매일 싸워도 가장 편한 여행메이트, 술메이트, 먹부림메이트, 기타 등등의 메이트는 언니이다. 뷔페에 같이 가서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메이트가 바로 언니이다. 언니가 아무리 배부르다고, 그만 먹고 가자고 노래를 불러도, 먼저 숟가락을 놓은 지 오래되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존재. 그게 자매다.
자주 화나지만 자주 행복하다. 하지만 너무 오래 같이 붙어살아서 떨어져 산다는 상상을 하면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나는 언니 없이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는 법. 그래서 붙어사는 동안은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심지어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나와서까지 이렇게 같이 붙어사는 형제, 자매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희귀템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다 넓은 마음을 가진 동생 덕분인 거지. 이 메이트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도 싸우지 않고 넘어가길 바라며. 언니가 퇴근 후 사 올 야식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