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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바로우어즈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작은 사람들'을 생각하다

by p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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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지쳐서 안 되겠다 싶은 깨달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힐링을 찾는데요.. 동화책도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기에는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 책도 그런 날에 읽었는데요..

현실을 잊게 할 즐거운 환상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이 책은 오히려 한동안 몇 가지 의문으로

저를 지배했습니다.

"마루 밑 바로우어즈", 빨리 이 책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마음과는 달리 생각은 한참이나 뭉그적거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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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어떤 동화책은 어린 시절에 읽지 않으면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읽어야만 하는 책, 어른이 되어 읽어야 더 좋은 책.

어른 입장에서는 '놀이'로 구분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떠들썩한 소동이 벌어지는 이야기.

그 상상력이 인간 무의식에 뿌리가 닿아 있는 이야기.

이런 것들이 어린시절에 읽어야 좋은 동화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적이거나, 철학적인 이야기는

어른이 되어 읽으면 울림이 더 크구요.

<마루 밑 바로우어즈>는 어린시절 읽었어야 할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 없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큰 줄거리를 빼면 기억에 남지도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 책이 이렇게 오래동안 사랑을 받고 있을까?

의아할 지경이었습니다.

'내 지우개는 누가 가져갔을까?'

어린 시절 누구나 해보는 상상, 즉 무의식에 닿아있는 그 상상력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아마도 시간을 견디지 못하지 않았을까?

이런 냉정한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왠일인지...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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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시 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 건 1940년 전쟁 직전이었지요.

온 세계에 변화의 바람이 휘몰아친 바로 그때요."


작가, 메리 노튼의 서문을 읽었을 때

저는 그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까닭을 알아서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싫었습니다.

어릴 적 상상했던 그 "작은 사람들"이 전쟁 직전에 떠올랐다는 말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에 어른으로 살면서 불길한 바람을 느끼며 사는 사람으로서는 말입니다.

메리 노튼의 서문을 다시 읽으면서

왜 이 동화책이 재미 없었는지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없어질 때마다 채워두었던 그 많던 옷핀과 연필과 지우개들이 어디에 갔느냐며,

그걸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상상했을 때 썼다면,

이 이야기는 요정 이야기와 비슷했겠지요.

하지만 전쟁의 광풍 속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던 작가는 인간이라는 "거대 종족"의 눈을 피하며

그들의 물건을 빌려쓰는 종족의 삶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니 모험도 없고, 마법도 없고, '동화 같은 결말'도 없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자신 보다 월등한 종족의 감시를 피해 연명해 가는 삶은 불안의 연속이겠지요.

동화 속 아리에티 가족의 일상이 바로 그랬습니다.

아리에티의 아버지 팟은 아리에티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될까봐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그러면서도 물질적 욕심에 불만이 많은 아내를 만족시켜주기에 최선을 다합니다.

마루 밑에서 숨은 삶은, 전혀 즐겁지 않지요.

훨씬 즐겁게 쓸 수도 있었겠지만, 메리 노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안네의 일기'를 미리 읽기라도 한 듯,

그 시대에 "작은 사람들"처럼 살아야 했던 이들을 걱정했지요.

아리에티 가족은 함께 살았던 여러 이웃의 실종과

사촌 이글티나 가족의 비극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안과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삶,

그것이 "작은 사람들"의 일상이었습니다.


"누구나, 언제라도 리치 윌리엄 씨를 불러들인 드라이버 부인 같은 사람이 생겨날 수도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 작은 사람들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도요."


메리 노튼이 살았던 시대를 떠올리며,

저는 이 책이 어른이 되어 읽는 것이 더 좋은 책이라고 생각을 달리 하였습니다.


"난 요정이 아니야!"


아리에티처럼 이 책도 힘주어 이렇게 말하고 있었는데,

제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작은 사람들"이란 워낙 매혹적인 존재들이라,

여전히 동심을 통해 다가옵니다.

그래서 메리 노튼의 동화책은 이야기로서는 실패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리에티와 소년은 작은 사람들이 멸종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합니다.

소년은 나중에 전쟁에서 죽고요.

작은 이야기 속에 거대담론.

매혹적인 밝음과 작가의 불안과 우울이 혼합되면서 이 작품은 우울하고 불균형해졌지요.


그래서인지 그 후, 이 이야기를 "빌려온" 다른 작품들은 훨씬 아기자기한 주제를 담으려 합니다.

가령, BBC에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만든 " THE BORROWERS"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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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요정 이야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엄마를 잃고, 실직한 아버지와 알콜 중독자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소년은 어둡기만 하고,

그를 만나는 아리에티는 불안을 이기기 위한 굳센 심장을 가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동화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전쟁이나 멸종, 학대와 불안 같은 내용은 없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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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우울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에는 모든 것이 좋아지는

위안의 계절이 다가온다는 믿음을 주는 예쁜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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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노튼처럼 전쟁의 광풍 속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작은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한 다스나 되는 연필이 한 자루도 없을 때,

자신의 기억을 탓하기 보다 누군가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니까요.

누가 자신이 늙었다고 순순히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사소하고 소중한 것이 연필 뿐은 아니겠죠.

실은 더욱 소중한 것들이 있습니다.

너무 사소해서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

가족, 친구, 인생에 대한 철학적 질문 등...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너무 천천히 사라져서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작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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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람들"에 대한 가장 "동화적"인 이야기.

저는 일본 드라마 <고잉마이홈>이라고 생각합니다.

1년에 몇 번 보러 가지 않은 아버지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딸은 '쿠나'라는 작은 사람들이 보인다고 하는 황당한 상황...

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해 놓쳤던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어이없다는 생각에 아는 척은 하지 않지만

꿈 속에서 자기가 아끼는 쇼파 밑에서 쿠나 가족을 만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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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나족은 메리 노튼의 "바로워스"들과 비슷합니다.

인간들과 비슷하게 살 뿐 아니라, 인간들에게 당당합니다.

크다고 잘난 척 하지 말라고 큰소리도 칩니다.

그들도 요정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골치 아픈 세상에 손톱만한 조언도 해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은 사람들은 그 존재로 우리를 치유합니다.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작은 그들을 찾아내려 조사하고...

어쩌면 작은 것을 들여다보는 그 행위가 바로 치유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큰 세계에 광풍이 불고

작은 나의 세계는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문득 침대 밑이나

마루 밑을 들여다볼 생각을 해봅니다.

그곳에서 뭔가 힌트를 얻어볼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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