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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포 Sep 25. 2021

영화를 보다가 일 생각하는 바보

직업이 있는 시청자, 관객, 관람객들은 자신과 비슷한 일에 종사하는 경험과 장면을 보게 될 때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을 연상한다.


나에게는 최근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10년의 사건을 상기시켰다. (2010년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를 찾아보니, 2009년이었다.)


영화 속 바로 그 장면은 그린란드에서 월터가 화산재를 피해 도망치는 모습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그린란드 주민과 월터가 화산재를 맞으며, 화산 폭발 직전 탈출하는 장면은 영화라 몹시 재밌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2009 그린란드에서 화산 폭발이 있어 항공 대란이 일어났던 사건이 기억이 났다.


사실 화산이라는 곳은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그렇게 와닿는 부분은 없다. 잠재적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 백두산 폭발 시뮬레이션도 가끔 기사화되고는 한다. 당시 나도 딱히 해외의 화산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컸던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일이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된 상황처럼 내가 겪지 않았다면 말이다.


화산 폭발이 있고, 유럽의 국가들이 난리가 났다. 화산재로 인해서 비행기가 결항이 되며, 공항이 폐쇄되는 일들이 발생했다. 독일의 메인 공항들이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지 않는 상황들이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지자, 한국에 있는 고객들이 들썩였다.


자동차 부품, 의료 부품과 완제품 등 공장 라인이 멈추는 상황을 앞두자,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항공료로 물건을 수입해야 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높은 시장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 원리에 따라)

물류비용은 한없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여기서 수요라는 것이 재화에 대한 수요라기보다는 (수입/물류) 서비스에 대한 수요였기 때문이다. 재화, 물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물건을 운반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가격을 포워딩에서는 ‘스폿 레이트(spot rate)’, ‘애드혹 레이트(ad hoc rate)’라 하며, 해상에서는 ‘에프에이 케이 레이(FAK rate)’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모든 가격들이 뜻하는 곳은 한 가지다.

계약된(연간 비딩 또는 채결한 계약 요율) 금액으로는 현 시장 가격(market rate)을 돌파할 수 없기에, 현재 통용 가능한 시장 가격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간단히 말하자면, ‘비싼 돈 주고 싣을래? 아님 가격 내리기를 기다릴래?’가 된다. 만약 충분한 재고가 있다면 고객은 기다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산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또한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자연재해와 사건들은 해당 시점 이후에도 길게 이어진다. 한 번 올라갔던 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으며, 한 번 막혔던 물류 지연은 연쇄적으로 지연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객의 입장에서 슬픈 상황은 이후 매출이 좋아지지 않을 때마다 당시 팀장의 레퍼토리가 되었다, ‘화산이 한 번 더 터져야 하는 건데……’.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팀장이 당시 비인간적으로 느껴졌지만(‘돈 벌자고 사고를 바라나…?’라는 생각에), 해당 시기에 폭발적인 매출 수치를 기록했던 시간이 지나, 수치적 압박을 받다 보니 그런 생각도 했나 보다 라고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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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를 보면서 일을 떠올리지 않고 순수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복이다. 그 좋은 영화의 한 부분이 돋보기로 확대되어 보이는 것은 직업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고, 세상의 모든 일을 어느 정도는 직업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습관 때문인 것 같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장면이 눈에 띄웠을까 궁금해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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