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고 고맙고
4년 전에 엄마는 큰 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온 가족이 충격을 받았고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고 관련 책도 찾아보며 일 년을 보냈다. 그 이후 엄마는 주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이 생겼고 식습관을 모두 바꾸고 매일 같이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전보다 건강해진 엄마 덕분에 우리 가족은 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엄마랑 전화 연결이 안 되거나, 새벽에 혼자 눈을 떠서 잠이 안 올 때면 어김없이 바로 어두운 생각이 든다.
엄마는 발가락 골절로 다리 전체에 깁스를 하고 한 달 후에나 풀 수 있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어서 외출은 당연히 어렵고 집안에서도 밥을 하거나 씻는 데 불편하게 되었다. 내가 휴직이라서 그건 다행이다 엄마. 아기 욕조부터 분유와 기저귀등 아기 짐을 한 아름 챙겨서 엄마 집으로 옮겼다. 결혼 후에 처음으로 엄마와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고 엄마에게 말을 하니, 엄마가 결혼 전에도 너네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느라 바빴으니 이렇게 일주일 내내 하루 종일 같이 있던 건 진짜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깨워주면 일어나서 빨아준 옷을 입고 채려 준 밥을 먹고 준비해준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가고 회사에 다녔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표현하려고 노력했지만, 받아온 사랑에 비해 비할바 없이 부족하다. 특히 결혼 후에는 엄마랑 단둘이 하는 데이트나 여행도 못 다녔으니, 엄마가 다친 건 안타깝지만 우리끼리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평소에 4시 반에 일어나서 새벽예배 다녀오시고 집에 와서 아침 식사하고 집안 청소를 하신다. 그러고 나서 요가를 하고 샤워 후에 출근 준비를 해서 집을 나선다. 출근길에 한의원에 들러서 침을 맞고 사무실로 가서 근무를 한다. 보통 퇴근하고 집에 오면 7시경으로 저녁을 만들어 먹고 성경 필사를 조금 하다가 주무시는 일상이다. 우리 집에서 언제나 제일 부지런하고 바쁜 사람이 엄마다. 그런 엄마가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하고, 집안에서도 목발이 아니면 이동이 어렵게 되었으니 본인 스스로 정말 불편해하셨다.
엄마를 대신해서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다고 했잠만 엄마 성에 차기 어려운 게 분명했다. 제발 움직이지 마시라고 말을 해도 나 안 보이게 걸레질하고 빨래를 널었다. 게다가 아기까지 데려온 상황이라 엄마가 움직이지 않기도 어려웠다. 내가 설거지하고 쓰레기 버리고 하는 동안 아기가 울면 몇 시간이고 안아서 달래고, 배고파서 보채면 우유 먹이고 트림시키는 일이 엄마 몫이 되었다. 밤에는 잠귀 밝은 딸이 아기 때문에 깊이 못 잘까 봐 말리고 말려도 결국 엄마가 데리고 주무셨다. 덕분에 우리 집에 있을 때보다 엄마 집에 와서 컨디션이 좋아졌다. 새벽에 엄마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잠에서 깨서 안방으로 달려갔는데 점차 새벽에도 깊은 잠에 빠져서 좀처럼 일어나는 일이 드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엄마를 돌보는 건지 엄마가 나랑 아기를 돌봐주시는 건지 모르겠는 나날이었다. 아니지. 결국 이번에도 엄마가 나를 돌봐주신 게 맞다.
매주 화요일에는 엄마가 아기를 봐주시러 집에 오신다. 빈손으로 오시는 적 없이 두 손 가득 장을 봐와서 아기 보느라 딸 몸 상할 까 봐 이것저것 반찬이며 요리를 만들어 주신다. 가끔 친구와 약속이 있거나 병원에 갈 일이 생길 때에도 엄마는 본인 일을 조정하시고 바로 집으로 와주신다. 약속 마치고 집에 간다고 문자를 보내면 오는 길에 한의원 들러서 어깨 뭉친 데 침 맞아라,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지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오라고 한다. 아기랑 같이 자느라 잠도 편하게 못 주무시고 다음날 가실 때는 30분씩 기다려서 광역버스를 타고 평균 한 시간 반에 걸려 집으로 돌아가신다. 엄마는 다음날 푹 자고 나면 안 피곤 하다고, 엄마 걱정하지 말고 매일 같이 아기 보면서 몸 축나지 않게 신경 쓰라고 말한다. 진짜 아픈 건 엄마인데 나는 내 걱정, 엄마도 내 걱정. 새벽에 눈이 떠지는 날이면 덮쳐오는 생각이 있다. 엄마가 이대로 떠나면 어떡하지. 나는 엄마가 너무나 필요한데. 이것도 역시나 내 걱정. 엄마가 보고 싶어서 살 수 있을까. 엄마랑 더 많이 여행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녀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겠지.
엄마가 깁스를 풀 날이 다가오고 거동도 조금 편해지셔서 나와 아기는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남편이 아침 일찍 와서 음식물 쓰레기랑 재활용 분리수거를 했다. 나는 아기 용품을 챙기고 엄마는 사위 준다고 주문한 백김치랑 낙지랑 전복을 가방에 차곡차곡 넣으셨다. 길 막히니까 빨리 가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엄마는 보행보조기를 끌고 현관까지 나와서 엘리베이터 타는 우리 가족을 배웅했다. 엘리베이터의 작은 창문으로 손을 흔드는 엄마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연락하고 언제든 다시 보러 올 수 있는데 이상하게 코가 찡했다. 우리가 가고 나면 엄마는 혼자 식사하시고 혼자 주무시겠지. 이런 생각도 잠깐이고 카시트에 아기를 태우고 옆에서 침 닦아 주고 쪽쪽이 물려주면서 엄마 생각은 다시 흩어진다.
잘 가고 있니? 아기 너무 보고 싶다. 도착하면 동영상 좀 보내줘.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잠든 아기를 찍으면서 아가에게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할머니가 벌써 보고 싶으시데. 아우리 아가는 할머니가 얼마나 사랑해줬는지 기억할까? 엄마는 갑자기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네.
동영상을 보내며 엄마에게 카톡을 했다. 엄마 너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