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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y Today Nov 07. 2019

내 소원은 혼자

스스로 만드는 혼자

그러니까 나도 안다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꼬물꼬물 한 지금 이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육아 휴직은 육아를 위한 휴직이라고 그냥 휴직이 아니라고. 입으로 든 글로 든 눈으로 든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그런데 그게 그렇게 엄청난 바람인가? 


디자이너 옷과 반짝이는 보석을 갖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다들 줄임말로 부르는 유명한 아파트를 갖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십 개월 배불러서 열여섯 시간 진통해서 아이를 낳고 24 시간 아이와 붙어 있는 지금, 그냥 하루에 몇 시간 일주일에 하루만 내 시간을 달란 말이야! 


알아. 누가 말렸나? 


아무도 뭐라고 안 하지. 그런데 왜 이렇게 옴짝달싹하는 게 힘든 걸까 생각해 본다. 누가 나를 등 떠밀어서 좀 나가라고, 여기 가보라고 티켓도 사주고, 아기는 내가 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기를 기다리는 건가. 그래서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설거지하고 아기 목욕시키고 우유 먹이면서 소파에서 쓰러져 잠드는 남편한테도 울컥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가. 일주일에 하루씩 시간을 내서 아기 봐주시러 오시는 양가 부모님께도 '나 여행 좀 가라고 해주지' 같은 말도 안 되는 투정이 생기는 건가. 


너 이런 애 아니잖아.


하고 싶은 건 스스로 찾아서 하고, 갖고 싶은 건 스스로 벌어서 사고, 먹고 싶은 건 스스로 만들어 먹는 내가 왜 혼자 몇 시간 보내는 거에는 이렇게 소심 해지는 거지. 


아기 기저귀를 갈고 가재 수건에 물 묻혀서 아기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아기띠를 맨다. 햇살은 좋아도 기온은 낮으니까 아기띠 위로 남편 점퍼를 입는다. 아가 목까지 지퍼를 올리니 아가가 지퍼 밖으로 머리를 살포시 내민다. 


우리 가는 거야!


집 앞에 문화센터에 간다. 다음 달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저녁 요가를 신청한다. 저녁 7시부터 7시 50분까지 50분간. 결제를 하고 위층으로 올라가서 육아 지원 센터에 간다. 아기 돌봐주는 프로그램은 6개월 이후부터 가능하단다. 우선 회원 가입을 하고 아기 장난감만 빌려 나왔다. 올해 말에는 아기 맡기고 낮에 운동하고 도서관도 갈 수 있겠다. 한 팔에 아기 장난감을 걸고 빵집으로 향했다. 주말에 먹을 깜빠뉴랑 이따가 아기 재워놓고 홍차랑 먹을 마들렌이랑 포카치아를 샀다. 


외출이 좋아요.


집에서는 장군 같던 아기가 밖에 나오니 얌전하게 내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세상을 살핀다. 아가야. 나뭇잎 색이 변했지? 울긋불긋 너무 예쁘다. 무슨 소리야? 자동차가 빵빵하는 소리네. 문을 나서니 20평 아파트 안에서 느낄 수 없는 세상이 우리에게 온다. 집에 가서 딸랑이로 재밌게 놀고 코 자자 우리 아가. 엄마도 오랜만에 티타임 좀 갖고 싶네. 


혼자 잠들었어!


남편한테 카톡을 한다. 외출하고 와서 침대에 내려놓고 짐 정리했는데 혼자 잠들었어! 감동의 눈물. 안고 어르고 달래고 짐볼 위에서 한 시간씩 뛰지 않아도 우리 가기가 혼자서 잠들었다. 대견하다. 이렇게 큰 아가도 이때까지 잘 기른 나도. 


남편, 나 다음 주부터 월, 수, 금 저녁에 한 시간씩 요가 갈 거야.


호기롭게 부탁이 아닌 통보를 날린다. 그리고 역시 예상한 대로 '그래, 운동해.' 심플한 대답. 아기가 있던 없던 내 시간은 내가 설계하는 거지. 


기다리고 기다린 요가 시간. 


십분 먼저 도착해서 강의실 문을 연다. 군데군데 먼저 도착해서 몸을 푸는 회원들이 있다. 가운데 앞줄에 자리를 잡는다. 전면 거울로 레깅스 차림의 나를 바라본다. 임신 전보다 전체적으로 커지고 하얘지고 말랑해진 내가 보인다. 원래도 없는 유연성이 저 멀리 도망간 팔다리 여기저기를 구부렸다가 피면서 깨닫는다. 



지금 너무 평화롭다. 


아기 울음소리도 우유 냄새도 가습기에서 퐁퐁 나오는 수증기도 없다. 대신 나지막한 선생님의 목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회원들의 몸 움직이는 소리와 옅은 땀 냄새. 동작이 격해질수록 집 생각이 옅어지고 선생님 목소리와 내 몸에 집중한다. 그리고 드디어 가장 좋아하는 사바사나. 불이 꺼지고 매트 위에 편한 자세로 누워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오랜만의 운동으로 긴장한 몸이 한순간에 이완되면서 밀려오는 행복한 피로감. 이거였어. 지친 하루를 곱게 접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펴주는 시간. 


하고 싶은 만큼만 할 수 있는 형태로. 


출산 이후 팔목이 시려서 견상 자세처럼 팔로 버텨야 하는 동작을 잘하지 못했다. 수업 후에 매트를 정리하는데 선생님이 말을 거셨다. 

팔목이 안 좋으신가 봐요. 

네. 매일 아기 안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팔목 아프시면 팔꿈치로 하세요.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 하고 싶은 만큼만 할 수 있는 형태로 하시면 돼요. 


휴직기간 동안 자격증을 딴 사람, 자기 사업을 일군 사람, 정성스럽게 이유식을 만들고 아기 옷을 손수 지어 입히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형태의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면 되는 거지. 나는 혼자를 잃지 않는 건강하고 즐거운 엄마가 되고 싶다. 


#내 소원은 #혼자 #잠깐의_혼자를_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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