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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y Today Nov 16. 2019

내 아이가 아니어도

조금씩 넓어지는 세계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요새 나한테 임신한 사람, 갓난쟁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보인다. 그전에는 감쪽같이 숨어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옆에서 올라오는 아기띠를 맨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그 찰나에 서로에게 보내는 응원의 눈빛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임신 기간 동안 임부 요가 클래스를 들었다. 원래 요가를 해왔던 터라 별 차이 없겠거니 했는데, 우선 강의장 가득 배가 불룩 나온 임산부만 가득한 것부터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쉬운 동작을 해도 여기저기에서 어이쿠, 아이고 하는 신음이 터져 나왔고 강사는 매번 쉬엄쉬엄 하세요, 무리하시면 안돼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임신 초기 때만 해도 이런 장면들이 재미있었는데 중기를 넘으니 내 신음 소리가 가장 컸고 한번 앉으면 일어나는 게 그렇게 힘들었다. 엄마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모르는 사람이랑도 쉽게 말을 하는 게 늘 신기했는데, 처음 보는 옆자리 사람들이랑 몇 개월인지 어느 병원 다니는지 같은 이야기를 술술 하는 나로 바뀌었다. 


그리고 꼭 서로 물어보는 말이 있었는데 몇 킬로 찌셨어요? 


후후. 좀 많이 찐 사람에게는 애 낳고 나면 다 빠진데요, 덜 찐 사람에게는 관리 잘하셨나 보다. 부러워요 같은 말을 건넸다. 임신 전에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이게 가능한 건 상대방의 몸매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몸이 불어나면서 얼마나 힘든지 아는 서로에게 보내는 격려이기 때문이겠지. 


일요일에 버스를 탔다. 만석이라서 내리는 문 근처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그때 대각선 자리에 앉아 있던 중학생쯤 돼 보이는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양손으로 그 자리를 가리켰다. 임신하고 처음으로 자리를 양보받은 순간이었다. 


정말 고마워요.


정말 고마웠다. 세 정거장만 가면 내리지만 부푼 배를 안고 손잡이에 기대어 이동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눈이 마주친 것도 아닌데 냉큼 자리를 내어주며 말없이 뒤로 가는 담백한 학생의 행동이 너무 멋졌다. 얼굴은 잊어 먹었지만 정말 마음속 깊이 칭찬해 학생! 이때를 제외하고는 출산 전까지 딱 한 번 더 자리를 양보받았는데 그때도 동네에서 버스를 탔을 때였다. 


아이고 새댁. 앉아요 앉아. 


자리에 앉자 좌석에 엉덩이가 흡수되는 느낌. 다리가 붓기 시작하던 시기라 서 있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양보해 주신 아주머니 덕에 살았다. 엄마 뻘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그 이후 몇 개월인지, 아들인지 딸인지 등을 물으시곤 본인 딸도 어서 아이를 가져야 하는 데 같은 이야기보따리를 한참 풀어놓으신 후 나보다 일찍 내리셨다. 아주머니, 따님 임신하시면 제가 꼭 자리 양보할게요. 


양보받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된 것처럼 요새는 세상에 아픈 아이들, 안타까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이브더칠드런부터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까지 예전에도 TV 화면이나 지면을 통해 종종 봐온 스토리인데도 지금은 훨씬 크게 다가온다. 아이가 얼마나 크고 동시에 약한 존재인지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알게 되서일까? 아이는 임신하자마자 가족의 중심이 되어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란다. 여기서 가족 / 관심과 사랑 / 무럭무럭 같은 키워드 하나만 빠져도 비극이 된다. 이렇게 따뜻하고 보드라운 행복이 외줄 타기처럼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지금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함을 문득문득 깨닫는다. 


사랑받는 아기를 볼 때면 그렇지 못한 아기들이 생각나.


내 안위에 가슴 쓸어내리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채감이 마음 한편에 있다. 나만 행복해도, 내 아이만 건강하면 되는 걸까. 엄마의 웃음에 아빠의 손짓에 조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쩌지. 이렇게 마음 아파만 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내가 더 위선적인 건 아닐까. 작게라도 세상을 바꿀 임팩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응원하고 후원 번호로 전화를 거는 것 말고는 없는 건가. 특히 양가 부모님이 다녀가신 날이면 남편과 이런 대화를 자주 했다. 많은 어른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아기를 보면 더 그런 마음이 들어.   


우리 백일이랑 돌 작게 하고 아껴서 아기 이름으로 후원해볼까? 


지난주는 아기 백일이었다. 쿠팡으로 백일잔치 세트를 주문했다. 만 7천 원 세트 안에는 풍선이랑 현수막 그리고 네임 카드 따위가 들어 있었다. 물론 셀프로 풍선 불고, 가위질하고 풀칠해서 꾸며야 했지만 동네 떡집에서 수수팥떡도 사고 냉장고에서 사과랑 배도 꺼내서 나름 귀엽게 백일 상을 꾸몄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이랑 동생 가족들을 모시고 핸드폰 셀카 모드로 사진도 찍었다. 특히 아버님이 사진을 정말 열심히 찍으셨는데, 르포 기자처럼 아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찍으시는 모습에 남편이랑 함께 웃었다. 아마 지금 아버님 폰 속에 그날 찍은 아기 사진만 백장은 충분히 넘게 있을 거다. 


남편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하루 종일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생전에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실 때면 늘 손주가 첫 번째 기도 제목이셨고, 반들 반들 해질 때까지 보신 성경책에는 손주 사진이 여러 장이나 들어있었다고. 시어머니도 종종 남편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잘되면 외할머니 기도 덕분일 거야.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어른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왔는지 아기를 보면서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작게, 받은 사랑보다는 너무 작지만, 세상과 조금씩 나누고 싶다. 우리 아기도 커서 본인이 받은 사랑에 감사하면서 나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보다 큰 사랑을 받고 크게 나누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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