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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르마이 Oct 04. 2023

8. (존중) 강요하지 않는다

사춘기, 편도체, 투사, 기생효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_데미안(헤르만 헤세)



부모는 왜 자녀가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는 걸까요? 대개 아이가 좀 더 행복하살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이도 부모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나 고하는 정에 동의할까요? 


우리나라는 명문대 혹은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학생의 성취도를 평가합니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과정과 결과에 만족하 행복한 학생은 얼마나 될까요?


아이에게 공부하는 하루하루가 버겁고 때론 지옥과 같다면, 부모가 "고지가 저기 보인다. 조금만 참고 견디자"라고 독려하더라도, 아이는 부모의 진심 이고 받아 줄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아이에게 기대하고 독촉하는 누군가보다는 마음 기댈 곳이 필요합니다. 부모 마음 기댈 곳은 못되더라도 더 힘들게 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저희 가정 혹은 제가 좋은 환경이 되어주었다는 을 말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이번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아빠는 적어도 아이에게 부담과 불편함을 주는 존재가 되지 말자입니다. 


공부하는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이가 원하지 않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인정하고 수용하는 노력입니다.


ㅣ 아이가 불편해하면 대화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는 사춘기에 감수성이 예민해집니다. 청소년기에는 감정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변연계가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이에 비해 이성의 중추인 전전두엽피질은 완만한 속도로 발달합니다. 이런 뇌의 발달 불균형 때문에 사춘기에는 이성보다 감정이 훨씬 앞섭니다.


청소년 특히 중학교 2, 3학년 전후에는 감정이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시기가 청소년기 중에서도 사춘기이고, 사춘기에는 감정의 영향을 받아 쉽게 흥분하거나 좌절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대화하려는 부모를 불편해합니다. 물론 모든 아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부모와의 대화를 불편해한다면 어느 정도 인정해 주어야 할까요?


저는 쌍둥이가 원하는 만큼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이 대화를 원하지 않을 때 침묵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이니 오해 없길 바랍니다.


가족 간에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도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족 간 대화의 부재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아이가 원하지 않는 대화는 억지로 시도하기보다는 자녀의 의사를 존중해서 인정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쌍둥이는 중학교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는 입시 준비를 위해 집에서 먼 곳에 있는 지역으로도 학원을 오가야 했습니다.


저는 이 시기에 쌍둥이를 학교나 학원에 차로 데려다주거나 데려오곤 했습니다. 차 안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이 원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혹은 한 달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냅니다.


쌍둥이가 아빠인 저와 대화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건 고통스러운 기억이고 꺼내놓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저는 쌍둥이가 저와 대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의사를 존중합니다.


 때론 부모의 선의의 표현도 잔소리로 들린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동등한 인격체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할 때 아이가 불편해하는 상황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나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려면, 부모인 내가 겪은 실패나 시행착오를 최대한 겪지 않게 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려면 부모는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아이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해줘야 합니다. 대개 부모와 자식 간 대화는 이런 목적으로 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을 걱정하기 때문에 보호하려는 의도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화의 대부분이 아이들에게는 듣기 싫은 잔소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부모가 걱정해서 하는 말들은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투사'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부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귀하고 소중한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내가 경험했거나 지금 겪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표출합니다.


이런 대화 습관이 계속되어 문제가 심각해진 상황을 조금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아이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됩니다.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아이를 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아이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 세대와 다른 차원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사회·문화·교육 환경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손끝 하나로 실시간 얻을 수 있는 수평적인 세상입니다.


부모 세대인 우리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세상에서 살아왔습니다. 과거의 세계관으로 지금 아이들 세상과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부모나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중심이 너무 큰 차이가 있다면 서로의 중심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중심을 내게 끌어당기거나, 내가 그 중심으로 가려는 시도는 노력한 만큼 얻기는 어렵습니다.

아이가 불편하지 않게 한다는 건 아이의 세계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서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이 정도의 간섭이나 조언도 못 한다는 건가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좋은 의도의 조언이 어떤 시기에 또는 어떤 이에게는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간섭이나 조언을 전혀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최소한으로 하고 부모로서 '나의 삶'에 더 집중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말입니다.


아이를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것도 부모로서 분명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무게 중심이 아이에게 치우쳐 있다면, 자신의 인생을 충실히 살 기회를 그만큼 희생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이를 걱정하고 간섭해서 잔소리하기보다 부모로서 자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가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낫습니다.


 감정의 기생효과를 주의하자


심리학 용어 중에 '기생 효과'가 있다. 기생 효과는 바이러스가 숙주에 기생하듯 나의 감정이 누군가에게 기생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일부러 자각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항상 하던 습성대로 지속합니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내나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풀기도 합니다. 이런 화풀이가 습관이 된다면, 가장은 가족에게 자신의 감정을 기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어느 순간 감정의 숙주가 되어 버립니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쌓입니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무의식에 잠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에는 표출됩니다. 때론 수시로 잔소리하는 것으로, 때론 참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행태로 표출됩니다.


가정에서는 그 대상이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감정의 기생 효과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 출발은 아이들을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아이들보다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가족 간에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경계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감정에 있어서는 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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