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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Son Jun 06. 2024

하이브에게 민희진 대표는 도전인가, 기회인가?

하이브의 숨은 선택지인 '문화 통합'

1998년,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은 "천국에서 맺어진 평등의 합병(Merger of Equals Made in Heaven)"이라 불리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다임러-벤츠의 최고 경영자 요르겐 슈렘프는 1996년 초에 회사의 자동차 사업부가 점점 더 글로벌화되는 시장에서 함께할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크라이슬러의 이튼도 수요 감소의 원인인 아시아 경제 위기와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생산 능력이 과잉되어 업계 통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21세기 초 전 세계적으로 연간 1,820만 대의 자동차 생산 과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는 계속해서 단독으로 사업 운영 시 지역 업체로만 남을 거라는 불안 속에서 합병을 통해 3년 내 세계 1위 자동차 제조업체가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주식 가치가 360억 달러에 달했던, 국경을 넘나드는 당시의 거래는 가장 큰 규모의 합병이었습니다. 로버트 이튼과 요르겐 슈렘프는 이 거래가 "최고의 전략적 합병, 최고의 준비 합병일뿐만 아니라 최고의 실행 합병"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에 이르러 다임러크라이슬러는 1998년 합병이 약속했던 모습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2003년에 기록한 6억 3,700만 달러의 손실로 인해 회사의 재무 기록은 부진했고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세계 3위 자동차 제조업체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실패의 배경에는 두 회사 간 ‘조직 문화 및 경영 철학의 차이’가 영향을 끼쳤습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2021년, K-pop 업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헤드라인이 등장했습니다. BTS로 K-pop을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하이브와, 소녀시대 등 수많은 톱 아이돌을 성공시킨 SM 출신의 스타 프로듀서 민희진의 조합은 또 다른 전설의 탄생을 예고하는 듯했습니다. 하이브는 현 민희진 대표를 영입하면서 그녀의 창의성과 비전을 높이 평가해 하이브가 투자한 회사인 어도어의 대표직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최근 하이브와 어도어(ADOR) 간의 법적 공방은 다임러-크라이슬러 합병 이후의 상황처럼 양측의 다른 입장과 문화적 충돌을 보여줍니다.


하이브는 어도어의 설립과 뉴진스의 성공을 위해 유, 무형의 투자를 했으며, 그 과정에서 민 대표와 긴밀하게 협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민 대표의 독립 추구 과정에서 드러난 메시지 상의 부적절한 발언과 의도는 하이브 경영진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두고 하이브가 ‘배신’이라 표현한 배임 혐의에 대해 최근 민희진 대표는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기자회견 무대에 선 민대표는 하이브와의 화해와 협력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현 상황은 한 달 넘게 지속되어 온 갈등 관계의 해소가 아닌 새로운 긴장 관계의 시작으로 보입니다.


이번 갈등은 단순히 두 주체 간의 다툼으로만 한정 지을 수 없는 본질적 배경, 멀티 레이블 체제의 성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멀티 레이블'인가?

현재 K-pop 엔터 산업은 코어 팬층에 의존한 과도한 앨범 판매 관행과 아티스트의 활동에 지나치게 의존한 단편적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아티스트가 건강 이상 또는 음주운전, 열애 등의 사적 이슈로 활동에 제동이 걸리면 즉각적으로 관련 투자 기업의 수익 악화로 직결될 위험이 큽니다.


또한 BTS로 대표되는 현 K-pop 시장의 글로벌 성공에는 한국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의 성장 한계를 머금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수년 전부터 k-pop의 성장 지표가 줄어들고 있음을 공공연히 밝혀왔고, 이 같은 흐름을 눈치챈 듯 SM과 JYP, YG와 같은 국내 대형 기획사들도 멀티 레이블 체제의 도입을 이미 시작하거나 도입 중에 있습니다.


멀티 레이블 체제는 다양한 아티스트와 시장을 타깃으로 하여 수익원을 다각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개성 있는 아티스트를 키워내는 레이블 만의 독창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 적응력을 높인 팀을 키워내 다양한 문화권을 타깃으로 안정적인 수익 구조화를 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미 대형 엔터 기업들 중에는 한국인 멤버가 존재하지 않는 타깃 국가의 문화적 배경을 보유한 멤버들로 채워진 아티스트 육성에 투자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국내에서 시작한 특정 아티스트나 제한된 시장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하이브가 선택하고 현재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멀티 레이블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하이브 어도어 간 분쟁 사태에서 드러났듯 멀티 레이블 체제의 완성에는 두 기업 간 외부적 협력 구조의 형태를 넘어선 내부 문화적 통합과 가치 결정 구조 차이에 대한 집중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인센티브 평가 구조의 적합성, 아티스트 육성 노하우의 독립성과 이에 대한 존중 등 민희진 대표가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거버넌스라는 표현과 함께 언급한 두 조직 간 내부 갈등의 요소들은 분명 무엇이 중요한가, 어떤 결정이 가치 있게 평가되는가 와 같은 두 조직 간 문화적 비정렬의 현실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와 경영 철학의 충돌

네덜란드의 사회 심리학자인 홉스테드는 사회 각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모든 사회가 공통적으로 대면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은 문화마다 차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문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각 조직 별로 권력 불평등을 어떻게 다루는지, 불확실한 상황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확인하는 시도가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이해와 상호작용을 더욱 원활하게 하는 방법임을 이야기합니다.


앞서 예시를 든 다임러 크라이슬러 합병 사례에서는 독일식 경영 문화의 다임러의 경영 문화와 크라이슬러의 미국식 경영 문화의 차이가 이 같은 홉스테드의 문화 차원 이론의 관점에서는 합병 실패의 결과를 납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임러는 높은 권력 거리와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성향의 계층적이고 구조화된 의사 결정을 중시했으나, 크라이슬러는 낮은 권력 거리의 유연하고 창의적인 의사 결정을 중시했기에 합병 초기 유지된 공동 CEO 체제 하에서 충돌을 일으킨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크라이슬러의 대표가 회사를 떠나며 다임러 측의 관리자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구조로 변화하면서 조직 내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내부 갈등은 결국 예상했던 시너지 효과를 실현시키지 못하게 만들어 합병 비용과 문화적 충돌로 큰 재정적 손실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이와 유사한 충돌의 현상을 하이브-어도어 간 협력 관계에서 보고 있습니다.


-단기간 내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문화적 괴리 존재

하이브와 어도어는 뉴진스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다임러-크라이슬러 합병의 초기 기대와 실패 사례와 유사합니다


-파트너에 대한 불신과 독립 추구로 인한 갈등 표면화

하이브와 어도어 간의 갈등은 민희진 대표의 독립 추구와 하이브 경영진의 불신으로 인해 표면화되었습니다. 이는 다임러-크라이슬러 합병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문화적 충돌과 유사합니다


무엇보다 하이브의 중앙 집중적 관리와 어도어의 유연한 의사 결정 방식 간의 충돌은 중요한 경영 전략인 ‘멀티 레이블 체제’의 안정화에 어려움을 초래했습니다.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 체제의 도입을 통해 기업 수익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지만, 어도어는 빠른 변화와 혁신을 추구합니다. 하이브는 철저한 분석과 계획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하지만, 민희진 대표가 이끄는 어도어는 새로운 시장 기회를 탐색하려는 경향이 큽니다. 이러한 경영 철학 및 의사 결정 과정의 차이는 두 조직 간의 전략적 일관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이브와 어도어 간 숨은 선택지, 문화 통합

현재 하이브와 어도어 간의 갈등의 완전한 해결은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하이브가 장기적 전략으로 선택하고 이미 투자를 한 멀티 레이블 체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번 어도어와의 갈등을 새로운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민희진 대표에 대한 배신감, 그로 인한 이후의 퇴출 관련 조치는 여전히 유력해 보이는 선택지입니다. 그러나 타 산하 레이블과의 안정적 관계 생성 및 운영 전략 구체화를 위해 상징적인 멀티 레이블 체제 내 성공 사례로 만들 또 하나의 선택지가 주어져 있음도 상기할 필요는 있는 듯합니다.


만약 이처럼 장기적 비전을 공유하는 선택을 고려한다면 다음의 질문을 통해 양 측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 두 조직 내 암묵적이고 무형적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무엇인가?

- ‘우리’와 ‘그들’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구체화 및 실행 그리고 평가에 이르기까지 의사 결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 두 조직 내 업무 중 언급되는 이상과 성공은 무엇이며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가


하이브는 앞으로 BTS의 복귀가 예정된 상황에서, 다시 한번 글로벌 K-pop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질 가능성이 큽니다. BTS의 활동 재개는 하이브의 수익 구조를 안정화시키고, 다른 레이블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다른 레이블 간 갈등이 지속된다면, 하이브 전체의 이미지와 경영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민 대표와의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전략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으며, 이는 투자자와 팬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 통합’이라는 선택지의 고려를 통해 하이브와 어도어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K-pop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협력을 통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1998년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은 "천국에서 맺어진 평등의 합병”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5년 만에 처음의 기대와 다른 결과로 이해관계자들의 후회로 남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역할이 무엇인가? 주주가 바라는 게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는 민희진 대표의 자신의 성과 앞 당당함은 얄미울 수는 있어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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