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마미에 살고 싶다.
공항 창밖으로 햇살과 장대비가 동시에 쏟아졌다. 오늘 나를 집으로 돌려보낼 비행기가 그 너머에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모즈쿠가 들어간 삼각 김밥도 먹었고 면세점에서 야무지게 아와모리 시음도 마쳤다. 벌겋게 익은 종아리는 이번 여행을 충분히 즐겼다는 훈장 같았고,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듯했다.
여행의 끝은 아쉽지만,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여행의 마지막엔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돌아가면 열심히 살아야지. 열심히 살아야 또 떠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서운하고도 외로운 기분이 자꾸만 아래 입술을 비죽 나오게 했다. 서운한 건 지나버린 여행 때문일까, 외로운 건 자마미가 곁에 없기 때문일까.
밀려오는 기분을 애써 가라앉히고 나니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자마미에 살 수 있을까? 가장 높은 전망대가 131m이고 툭툭을 타면 한 시간 반 만에 완주할 수 있는 작은 섬. 신호등은 단 하나, 마트도 칵테일 바도 딱 하나뿐인 자마미 빌리지.
'내가 시골 생활 경험은 없지만 생활 반경이 크지 않은 사람이라 괜찮을 거 같기도 해. 그래도 섬이라 심심하려나? 술은 매주 나하에서 수급하면 되겠지. 안주는 모즈쿠만 있어도 좋겠어. 근데 편의점이 없으면 2차 맥주는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닐까? 자마미의 겨울 수온은 어땠더라. 슈트 입으면 다이빙을 할 수 있던가? 자마미에 병원은 있나? 나는 괜찮지만 고양이들이 아프면 어쩌지?'
그렇게 계속 핑계를 찾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나 자마미에 살아보고 싶구나.'
나에게는 간절히 원할수록, 오히려 그 단점을 찾는 나쁜 버릇이 있다. 이 '단점 찾기 게임'은 그 마음이 진짜인지 나 자신을 시험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원하는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나도 모르게 핑계를 찾는 습관이기도 하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처럼, 저 섬에서의 일상도 결국 신맛일 거라고 믿으며 돌아서는 건지도 모른다.
이 신맛의 섬은 어쩌다 내 마음에 들어와, 자꾸 내 마음을 당기게 하고 녹게 하는가.
프리 다이빙을 시작한 이후, 언젠가 섬에 사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자주 떠올랐다. 마음 내킬 때 고요한 바다에 뛰어들 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꽤나 구체적인 조건으로 미래에 살게 될 섬 후보들의 별점을 매겨왔다.
이런 섬은 산호가 없어서 끌리지 않았고, 저런 섬은 한국과 너무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각지의 섬들이 내 마음속 평론가에게 낮은 별점을 받았다. 자마미의 바다에 처음 들어갔던 순간, 투명하고 눈부신 광경에 반해버렸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별점을 매기기도 전에 '단점 찾기 게임'이 시작됐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게임은 끝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섬에 살게 될까? 그리고 그 섬이 자마미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 확실한 건, 자마미가 조용히 내 미래를 섬이라는 방향으로 한 뼘 더 끌어당겼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