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밤과 레몬그라스

아와모리와 막걸리, 자마미에서의 추억 한 줌

by 윤해

자마미에서는 언제나 랜덤 메뉴를 먹었다. 섬이 작아 식당이 적고, 손님은 언제나 좌석보다 많았기에 원하는 식당을 선택할 수 없었던 탓이다. 자리가 있는 집을 찾는 순간 오늘의 메뉴가 정해진다. 자마미에서의 마지막 밤에도 자리 전쟁에 예외는 없었다. 나에게는 마지막 밤이었지만, 모두에게는 토요일 밤이었으므로.


그러나 나는 애주가. 밥 집에 자리가 없다면, 바에 먼저 가면 되지 않을까? 구글 맵에 핀을 해둔 바가 떠올랐다. 다소 밝은 시간에 도착한 Bar St. Maire Zamami - バーサンメール座間味. 아직 손님이 없는 바에서 사장님은 밝지만 조용한 미소로 맞아주셨다. 사실 사교성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닌데, 이 조용한 바의 첫 손님이라는 점에서 조금 뻣뻣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은 곧 풀렸다. 진열된 다채로운 술, 한편에 상영되고 있는 다이빙 영상이 금세 마음을 말랑하게 했다. 첫 잔은 로컬 술 추천을 부탁드렸다. 사장님은 오키나와 아와모리, 위스키, 럼 그리고 미야코지마 진을 꺼내어 하나하나 꼼꼼히 소개해주셨다. 나는 첫 잔으로 아와모리 자스민 와리를 마셨다. 마시다가 진열된 위스키 하나를 궁금해하니 곧장 한 잔을 따라주셨다.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여기 굉장히 좋은 바구나!



술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와모리를 경험한 한국인과 막걸리를 경험한 일본인. 서로의 술을 비교하며 칭찬했다. 사장님은 일본어로 전해지지 않는 진심은 번역기를 사용해 영어로 바꾸어 다시 전하곤 했다. 조용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이런저런 술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아와모리의 기원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더운 기후와 바닷가 생활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증류주가 필요했다는 것, 그래서 본토와 다른 아와모리가 발달했다고. 탈수를 막기 위해 물을 타서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까지. 나는 어촌의 아와모리 풍경을, 농촌의 막걸리 풍경을 동시에 그려보았다.


질 수 없지. 미야코 진은 소다와리로 마시고 이곳만의 시그니쳐 레몬 사와도 마셨다. 레몬 사와는 바에서 숙성하는 특제 리큐르를 타서 만든다고 했다. 얇은 거품층 아래 자잘한 탄산감, 약한 단맛과 상큼함의 밸런스가 좋았다. 이어 추천받은 오키나와 위스키 3잔을 모두 주문했다. 8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다.



마지막에 사장님은 차를 준비해 주셨다. 남은 위스키를 홀짝이며 기다리던 순간, 사장님이 갑자기 바 밖으로 나가셨다. 영문도 모른 채 기다렸는데 한 손에 풀을 꺾어 돌아오셨다. 밭에서 직접 키운 레몬그라스라며, 손에 비비면 향이 난다며 한 움큼 쥐여 주셨다. 레몬그라스 향을 더한 자스민 차를 마시고 바에서 나오니,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머리맡에 레몬그라스를 두었다. 편안하고 따뜻했던, 무엇보다 오키나와 술을 제대로 만날 수 있었던 오늘 밤. 자마미의 마지막 밤은 레몬그라스의 향으로 기억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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