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열면 나는 검은 밤 속에 놓인다.
누워서 잠이 오지 않을 때 밖의 소리를 들으며 곤히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이 불면의 밤인 나에게 머리만 대면 잠이 들어버리는 것은 축복에 가깝다. 사위가 조용할 때 내 머리는 오만가지 생각을 지껄인다. 대부분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살아가는 데에 방해가 되는 생각들이다. 어떤 가상의 인물이 등장해서 그가 처한 특정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읊조리기도 하는데, 나는 그 생각을 내가 하고 있음에도, 실제로 누군가 두서없이 읊어대는 말은 내가 제삼자로써 듣기라도 하는 느낌이다. 그 말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내용이 많아서 신기하고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낮에 접했던 것들과 무관하게 갑자기 튀어나온 것들이 많기 때문에, 뇌가 작용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 경외감을 갖게 되기도 하는데, 이러다 보면 결국 시간이 한 삼십 분은 훌쩍 지나가있다.
조금은 다급해진 나는 가상의 존재의 말을 애써 외면하면서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사실 어두운 밤에도 그렇게 조용하지는 않다. 저 멀리서부터 구급차 소리와 빠르게 달리는 오토바이의 소음이 연달아 들린다. 생명을 잡으려는 소리와 잠깐은 놓쳐보고 싶은 소리가 얽힌다. 대학병원 근처에서는 야밤중에 구급차 소리를 듣는 일은 꽤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대부분 누군가는 사경을 헤매고 있지 않을까 하며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흘러가기 때문에, 여기에 사는 것은 숙면에는 정말 좋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밖에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아 굉장히 조용해지는 순간, 냉장고가 윙 소리를 내며 밤이 시끄러워진다. 그럼 그렇지. 다른 집의 누군가가 문을 세게 닫는 소리는 잘 들리고, 깊은 밤의 적막 속에서는 심지어 조심스럽게 닫는 문도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냉장고의 소음은 이 공간에서만 공유되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기계적이고, 변칙적이며, 그 어떤 철학적 주제와도 연결되지 않는 소음일 뿐이다.
하지만 냉장고 소음은 그 기능을 다하고 나서는 잦아든다. 내외부의 소음이 모두 잦아들면, 나는 누워서 고개 넘어 보이는 까만 창문을 의식한다. 그 넓은 창문의 까만 밤과 밤에서 풍기는 두려움은 때로는 커튼으로도 가릴 수가 없다. 그 밤에는 비록 서울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수많은 별이 박히고, 때로는 달이 떠있고, 둘 중에 무엇이라도 있다. 구름이 들어차 뿌연 밤하늘은 적막하기 때문에 그나마 별이라도 좀 보이면 덜 무섭다. 달이 크게 떠서 창문까지 달빛이 넘어 들어오는 밤은 밝아서 무섭지 않다. 잠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창문 너머 밤을 건너다볼 때는 마치 이 모든 것이 꿈인 것 같은 오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새벽에 이루어지는 의식의 흐름은 수면에 더욱 방해가 되며, 나는 빛까지 차단하기 위해 굳이 일어나 창문의 커튼을 친다. 커튼을 닫으면 나는 작은 방 침대에 갇히고, 커튼을 열면 나는 검은 밤 속에 놓인다. 그 무엇이라도 선택을 해야 하지만, 그 어떤 선택에도 나는 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도 잠에 들기가 참 어렵다.
이 글은 대학병원 근처의 작은 자취방에서 살 때 불면의 밤에 쓴 일기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잘 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