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단골바에서 생일파티를 하기로 결정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마지노선에 이르러서야 사장에게 생일파티를 여기서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러 갔다. 그와 함께 낮엔 커피를 마시고, 밤엔 맥주를 마셨던 그 바는, 우리의 일상에 언제고 등장했다. 그가 파리를 떠나고, 발길이 뚝 끊겨 가끔 지나가게 되면 민망하게 인사를 주고 받게 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아침 커피라도 마시라며 내가 그의 역할을 대신하주길 바랐지만, 나는 아침에 일어나 모카포트에 커피를 내려마시고 허겁지겁 도서관과 학교를 오가는 일상 속에 쫓겨 느긋하게 집 앞 바에 죽치고 앉아 노가리를 깔 여유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굳이 혼자 2.2 유로의 돈을 내고 커피를 마시거나, 맥주를 시키며 아직도 편하지 않은 카페 사장과 직원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아야하는 불편한 자리를 고수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많은 친구들과 말도 않고 갑자기 들이닥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하교길 밤 느즈막이 카페에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아 맥주 하나를 주문하고, 사장이 다른 무리들과 열띤 토론을 끝내길 기다렸다.
가져온 책도 없고, 야외에서 노트북을 꺼내 손가락 시려가며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맥주를 홀짝거리며 그냥 가만히 멍 때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빨리 사장이 그와 함께 있을 때처럼 다가와서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어 주기를, 그러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얼른 나의 공간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그러나, 도무지 이 사장은 나에게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뻘쭘했고, 몸과 마음이 추워졌다.
그러다 문득, 이 자리에 누구보다 많이 앉아있었을 그가 떠올랐고, 어떤 마음으로 그가 이 자리에서 그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그는 바 테라스에서 게임을 하거나, 웹툰을 보거나 또 사람을 구경하길 좋아했다. 바에서 간간이 보이는 사람들과 항상 격의없이 인사했고, 그는 그에게 단골바가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무엇보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빠르게 관찰했던 그는, 자신을 '보이는 존재'보다 '보는 존재'로 더 많이 포지셔닝을 했다. 술을 마시면서 혼자 게임하는 자신의 모습을 '누가 어떻게 볼 지'보다, 그는 이 구역에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사람이 지나다니며, 누가 자주 바를 찾고, 어떤 가게가 들어서고 망하는 지를 쭉 지켜봤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내부에 쌓아놓은 외로움이나 쓸쓸함 같은 감정적 에너지를 외부의 사람에게 발산했고, 그래서 길거리에 지나는 사람, 자신을 찾아오거나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 그 에너지를 쏟았다.
미어캣처럼 고개를 쳐들고 자신의 눈 앞에 오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는 언제나 직관적으로 어떤 특징들을 발견하여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그는 누군가의 상처나 외로움을 읽어내는데 정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눈에 띄게 잘생긴 사람이 아닌데 어느 파티에서나 마지막에 항상 여자랑 스윽 나가곤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였다. 자신의 외로움은 ‘과장된 자신감’으로 포장하면서, 상대의 외로움을 지나치지 못하고 그걸 기어이 헤집어 놓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바람둥이다.
반면 나는 언제나 나를 ‘보이는 존재’로 인식했고, 손과 발을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사실은 기억이 있고 나서부터 줄곧, 내 몸이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그런 내가 너무 어색해서 모두가 날 쳐다보고 비웃을 거리를 찾는 것만 같은 마음을, 크고 작게 언제나 갖고 살아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면, 상대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더 팍팍해지기 마련이다. 분명 외로움이란 감정은 같았을 텐데, 그로 인해 그는 ‘과장된 자아’를 연기했고 나는 ‘혐오하는 자아’를 형성했다.
이런 생각들을 다이어리에 써내려가며 나는 맥주 한 잔을 비웠고, 사장에게 가서 말했다. 생일파티를 이곳에서 하고 싶다고. 사장은 잘 알겠노라고, 언제든 환영한다고 했다. 그 때의 내가,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였으면 했고, 그런 마음을 생각하며 내가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 자신을 너무 많이 의식하고 산단 걸, 깨달았다. 그 때, 모두의 마블을 하며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벌컥이고 있었을 그의 모습이 묘한 안도감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