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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빈 Aug 21. 2020

어떤 대화


가끔은 어떤 종류의 대화가 그리울 때가 있다.
 

가령 처음 사랑에 빠질 때 나눴던 대화 같은 것들. 그 사람과의 관계가 안정 궤도에 들기 전, 나눴던 모든 대화들은 상대에 대한 가득한 호기심과 일정정도의 호감, 깊어지는 대화에 대한 행복, 내가 낯선 사람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져가는 과정, 그러나 마음 한 켠 커져가는 내 마음에 대한 두려움, 상대방의 애매모호함에 대한 불안이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며 황홀과 마음졸임을 동반하게 된다.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해가는 시기, '다름'을 인정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한 때, 미래보다 현재가 중요했던 순간,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설렘의 날들, 일상으로 돌아올 때마다 괴로웠던 중독의 시간들. 이륙의 순간은 이렇듯 언제나 가장 설레고 가장 불안하지만, 결국 대기권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두려움'이 사라지고 우리에겐 다음과 같은 것들이 남는다. 따뜻함, 편안함, 안정, 믿음, 권태, 그리움, (언제나 그렇듯 또 새로운 종류의) 불안.


그런가하면 이런 종류의 대화가 그리울 때가 있다. 돈은 없는데 시간은 많았던 시절, 친구들과 싸구려 술집이나 노천에서 맥주 한 캔을 먹으면서 인생의 모든 회한을 이야기하던 시기. 미래에 대한 끝없는 불안과 여전히 집에 속박되어 있으면서도 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치는 시기. 어떤 영화를 보거나, 어떤 대화를 나누거나, 어떤 책을 읽거나, 어떤 음악을 듣거나 모든 것이 나를 존재하고 규정했던 날들. 우리의 아지트를 가졌던 시기, 사람들과 끝없이 교류하고 만났지만 그 사람들을 판단할 기준이 없었던 시기, 그러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구분지으며 취향을 만들어가던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쌓여 '나'라는 자아를 형성해가던 그 때의 그 때. 나는 이럴 때면, 여지없이 여름밤이 생각나곤 하는데 늦게까지 해가 지지 않고, 1학기 기말고사는 끝나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들을 그렇게 노상 맥주와 바다와 음악과 이야기들, 영화들로 잔뜩 채워갔던 것이다.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여름밤에 대한 기억은, 그래서 더운 여름이 다가오는 시기면 여지없이 내 머리속에 선명하게 떠오르고야 만다.

이런 종류의 시간들은 어쩌면, 어느 순간이 되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어지는 시간들이다. <청춘스케치>에서 에단 호크가 들려줬던 그 대화같이, 그 때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많지 않았다. "담배 몇 개피, 커피 한 잔, 약간의 대화. 너와 나, 5달러."
 

그런 순간들에, 나는 너무 많은 행운이 따랐었다. 청춘스케치의 ost 의 my sharona 가 나오면 우리는 무조건 춤을 추는 거야, 라고 했던 친구, 광안리 내음을 잔뜩 실은 여름밤의 노래를 부르는 친구, 롱티 한 잔과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노래만 있으면 춤을 추고야 말았던 친구, 싸구려 술집에서 김치찌개 하나를 시켜놓고 밤이 깊도록 이야기해도 그 시간이 짧게만 느껴지게 만들던 친구, 영화를 보고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곁을 내어주던 친구, 깨끗하고 잔잔한 파도를 가진 송정 바다 또는 거칠게 몰아치지만 아름답게 부서지는 영도바다의 포말을 보는 심미안을 가졌던 부산 뮤지션들의 노래들까지. 

그런 순간들이 쌓여, 지금 나는 호불호가 확실하고 크게 고민할 것도 없는 청춘의 뒤안길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어느 한 자리에, 이 사람들과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야 라고, 인생에 대한 큰 기대나 욕심을 버리고 행복하게 버티는 삶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두 대화의 시기를 다시 오지 않을 순간처럼 그리워하는 한 편, 그리움과 실현가능성을 동반하는 마지막 종류의 대화가 있다. 글을 쓰며 나누는 나 자신과 대화. 바쁜 일상에 쫓겨 혼자만의 시간이 귀할 때, 받아들이는 마음보다 마음의 벽이 훨씬 높을 때, 기껏 생긴 시간마저 허투루 보내지 못하는 강박을 가질 때, 세상이 아무런 영감을 주지 않는 것만 같고 그래서 글을 쓰지 않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하는 순간을 갈망한다. 내가 대화를 나누고자하는 내 자아는 다층적이어서, 내가 쓴 글은 가끔 아주 괜찮아 보이고, 가끔 아주 유치하게만 느껴진다. 좋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듯이, 괜찮은 나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무척 즐겁기 때문에, 결국은 이런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기도 한다. 위의 대화의 순간들이 아주 귀하거나 다시 찾아올 수 없는 순간인 것과 반대로, 이것은 오히려 나이가 들어도 삶에 익숙해져가도, 언제나 날 찾아와주는 시간이고, 내가 필요로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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