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채로 피렌체 거닐기

남수단 파병군인의 코로나 이전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기

by 헌낫현
거리공연의 엄격한 검증, 신인(newcomer)은 진입이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피렌체는 귀가 즐거운 곳이다. 길을 걷다 보면 반드시 음악이 들린다. 거리공연은 피렌체 풍경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미켈란젤로 언덕, 우피치 미술관, 대성당 앞에서 모두 그랬다. 알아보니 거리공연은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한다. 검증된 예술가를 세우는 것이다. 여행의 OST를 깔아주는 느낌이랄까. 어디를 걷든 흥겨움에 취할 수 있는 곳이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는 피렌체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엄마는 나 먼저 가라며 천천히 뒤따라오시겠다고 했다. 언덕에 가까워지자 한국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행은 그랬다. 나는 해외에 와있었지만, 유명한 곳에서는 항상 한국어가 들렸다. 그래서 보는 것은 외국이지만, 듣는 것은 한국과 같은 오묘한 상태에 놓이곤 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음악과 경치에 취해있을 때였다. 가방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누군가 내 가방에 손을 대고 있었다. 소매치기였다. 가방에 손대지 말라고 그 사람에게 소리치자 근처에 숨어있던 일행이 나타났다. 하마터면 여권과 지갑이 들어있던 가방을 도난당할 뻔했다. 여행 다닐 때는 언제나-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소지품이 잘 있는지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퀸 앨범 살 걸 그랬나?
여행지에서 만나는 물건은
그곳에서만 본연의 가치를 가진다

오래된 레코드판을 모아 판매하는 가게가 보였다. 엄마는 퀸(Queen)의 열성적인 팬이다. 특히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좋아하셨다. 가게에서 퀸 앨범을 발견하자 엄마와 나의 고민이 시작됐다. 살까 말까. 이걸 한국에서 소중히 여길까. 결국, 사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물건은 그곳에서만 본연의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해서다.

이때만 해도 마스크 쓴 사람들을 찾기 어려웠다.

물론 눈도 즐거웠다. 대성당을 괜히 한 번 더 올려다본다. 고개가 꺾인 채 한참을 바라본다. 볼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다. 아무 곳에나 들어가 본다. 공부하지 않아 보이는 건 많지 않다. 유럽에 관해 공부를 열심히 한 뒤에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이 많은 상태에서 이곳을 다시 본다면 아름다움을 넘어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풍경에는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있을텐데 나는 그걸 몰랐다.

무지한 상태에서의 여행은 아쉬움을 남긴다. 자유롭게 여행지를 거닐면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지만, 역사, 문화, 종교와 같은 사회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그곳을 형성하게 됐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대학 시절 왜 배우는지 잘 알지 못했던 유럽문화에 대한 지식은 이 여행의 아쉬움을 없애기 위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



참고자료
Chris Otian, Firenze – City of Art and Culture, But Not of Bus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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