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은

남수단 파병군인의 코로나 이전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기

by 헌낫현


엄마는 긴 하늘길을 날아오시느라 피곤해하셨다.

나와 엄마는 에티오피아에서 만났다. 내가 소속된 부대는 남수단 종글레이주 보르시에 주둔지를 두고 있었다. 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유엔이 제공한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유엔은 임무지원국 일원이 문제 없이 휴가를 떠날 수 있도록 교통수단을 제공한다. 보르에서 남수단 수도 주바로 이동한 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경유해 이탈리아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남수단 주바에서 바라본 하늘 풍경.

이런 여정은 처음이었다. 경유지에서 만나서 떠나는 여행. 나는 남수단에서 동쪽으로 날아갔고, 엄마는 한국에서 서쪽으로 날아왔다. 에티오피아에서 만나 이탈리아로 향하는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했다. 여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이 여행의 끝은 어떨까. 여행이 끝나면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이 순간은 행복하게 기억될 수 있을까.

이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스리랑카 항공대가 운용하는 헬기에 탑승했다. 뜨거운 기온에 땀이 줄줄 흘렀다. 군인들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헬기가 공중에 뜨자 창밖으로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이 보였다. 내가 이 멋진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주바에는 보르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아스팔트 도로, 호텔, 그리고 공사 중인 굴착기도 보였다. 현대 로고가 눈에 띄었다.

현대 로고를 아프리카에서 보다니.
가공식품을 7개월만에 처음 보는 기분이란..

지금 먹는다면 그냥 그런 음식들이 그때는 감격스러운 맛이라고 느꼈다. 보르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약 7개월간 가공된 삼각형 모양의 치즈를 본 적이 없었다.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였다. London Dairy 아이스크림은 더운 날씨에 잘 어울렸다. 감각이란 건 참 간사하다. 그때 주바에서는 뭘 먹든 맛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해외파병 부대원들은 모두 관용여권을 지급 받는다.

통신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다. 통신사는 MTN과 ZAIN이라는 두 곳이 있었다. 비가 심하게 올 때 혹은 완전히 무작위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와이파이? 그런 건 없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적응이 됐다. 관용여권을 들고 공항으로 갔다. 이제 진짜 가는구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참 더웠다. 35도를 넘어가는 온도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정도로!
여행은 여행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생각하는 순간 시작된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했다는 것. 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번 여행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떠나는 그 순간부터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기억뿐만 아니라, 그곳에 가는 여정에서 느낀 감정까지 모두 소중하다. 모든 여행이 그렇지 않을까. 여행은 여행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생각하는 순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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