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파병군인의 코로나 이전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기
피사의 사탑을 보러 가는 날. 엄마와 나는 근처 마트에 들러서 기차에서 먹을 걸 사기로 했다. 고민하다가 와인과 치즈를 사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한국에서 치즈를 가끔 먹었다.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주 먹지도 않았다.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와인에 곁들어 먹는 제대로 된 치즈를 사려면 최소 3만원 정도는 쓸 생각을 해야 했다.
그런데 웬걸. 치즈가 3천 원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먹은 치즈보다 크기도 컸다. 한국에서 김치를 아무렇지 않게 먹듯이, 이곳에서는 치즈가 흔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 와인 몇 잔을 마셨다. 기차가 흔들려서 잔에 있던 와인이 쏟아졌다. 그래도 즐거웠다. 당시에는 한동안 술을 마시지 못한 상태였다. 얼마 못 가 곯아떨어졌다.
여행지에 오기 전에는 언어를 공부한다. 여행이 여행지를 생각하는 순간 시작되듯, 내 이야기도 언어를 배우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깊이 있게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표현들을 익히는 것으로도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Vado a pisa" "피사를 향해"라는 뜻이다. 8.7유로 정도 하는 피사행 기차표를 샀다. 우리 돈으로 약 1만2천 원 정도 하는 돈이다.
피사의 사탑을 봤다. 예상대로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흐려서 멋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워낙 유명한 여행지니까 사진을 찍어본다. 주위에는 다양한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날씨 좋았다면 어땠을까. 조금 아쉬웠다.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려면 돈을 내야 했다. 줄도 서야 하고 올라가는 시간이 아까워 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했다.
날씨가 다 한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같은 곳도 날씨가 좋은 날에는 다르게 보였다. 내 기억 속에 남는 모습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이탈리아는 겨울에 흐렸다. 여름에는 날씨가 좋지만, 더운 지중해성 기후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훗날 다시 유럽에 오게 된다면, 여름을 지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다시 여기 오면 다르게 보이려나.
노후를 이탈리아에서 보내는 상상을 했다. 3천 원 짜리 치즈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삶. 이탈리아에 머무는 한국인들을 위한 사진관을 여는 거다. 그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나 또한 새로운 추억을 간직하는 것. 그걸 할 수 있다면 참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다르게 조금은 느리고 여유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