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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Oct 30. 2022

사람들 사이 그 섬

오래 가는 관계를 위해 바운더리 세우는 법을 배우다

리지는 밤 9시쯤 되면 독서 시간이라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기 전 한 시간 정도 침대에서 책을 읽었다. 평소 장난스럽기 그지없는 그가 신데렐라처럼 자기 방으로 돌아가 차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니, 아무리 봐도 어색해서 우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가끔 그를 놀리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 신데렐라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10시가 되면 애플 워치에 깔린 습관 형성 보조 앱이 알람을 보낸다. ‘곧 [미타임을 위해 내 방으로 돌아온다] 할 시간입니다.’라고. 침대에 눕는 것도 앉는 것도 아닌 자세로 책을 읽다가 자고, 다음날 점심 먹기 전까지는 내 방에서 두문불출한다.


리지가 함께 있을 때만 해도 내가 이렇진 않았다. 집에 있을 땐 자는 시간 빼고 나머지는 무조건 공용 공간에 나와 있었다. 내 방 보다 거실이 훨씬 좋았다. 잘 꾸며놓고 정리도 비교적 잘해놓은 1층 공용 공간들에 비해 내 방은 오래 방치되고 있었다. 직장에 다닐 때 야근을 밥 먹듯이 해 방에서는 잠만 자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 혼자만을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이 낭비로 느껴졌다. 나만을 위한 공간으로 낭비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다른 친구들이 내 방과 그 옆에 달린 테라스를 잘 편하게 이용하게 할 수 있을까를 더 고민했다. 방 안에 게스트 존을 만들고, 내 방문은 언제나 열어 둘 정도로 ‘내 공간’과 ‘프라이버시’에 무심했다. 


“명동 성당 앞에 있는 인도 카레집에 같이 갈 사람?” 


은혜는 미식가였다. 맛있는 음식에서 느끼는 행복이 큰 사람이었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어서였을까, 그의 맛집 탐방 계획이 하나 둘 추가되더니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끝장을 내보자며 공식적으로 서울눅스 미식 주간으로 선포했다. 맛집 네 군데를 한 주 안에 찾아가게 됐다. 때론 다섯 명이 우르르 가기도 하고, 때론 세명이 가기도 했다.


처음엔 분명 즐겁고 신났다. 특히 넷플릭스에도 소개된 광장시장 내 칼국수를 먹고 순희네 빈대떡 집에서 빈대떡을 포장해오는 길은 마음이 두둑했다. 하지만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미식 주간의 마지막 피날레 코스는 안국역 인근에 있는 불고기 한정식 집이었다. 예전에 같이 살다가 이제는 다시 동네 친구가 된 수진과 석영이 함께 하기로 했다. 아직 그 두 사람과 은혜가 잘 알지는 못했기에 내가 같이 가서 그 사이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스트레스와 망설임을 느꼈다. 
토요일이 되기 전날 금요일 아침, 쓰다 말다 하던 일기를 오랜만에 써 내려가면서 이 편하지 않은 마음을 풀어헤쳐 보았다. 그리고 인정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맛있는 걸 먹고 느끼는 낙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 맛난 음식을 연달아 먹으면 감동의 크기가 급속하게 반감된다는 것. 이런 사치를 부를 여유가 있는지 자성하는 목소리가 커져 괴로워진다는 것. 맛있는 것은 간간이 먹어야 그 가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대로 토요일 일정까지 동행하면 나는 더 괴로울 것이 분명했다. 맛을 못 느끼는데 맛있다고 거짓 리액션을 할 것이고, 그 주의 과다지출에 대해 괴로워하면서 주최자가 신경 쓰지 않도록 그 괴로움을 눌러 담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을 하게 될 것이다. 


“미안한데 내일 못 갈 것 같아.” 


하루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고백했다.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제안자의 얼굴을 보며 못 가겠다며 말하는 건 멀미를 일으킬 정도로 불편했다. 그는 역시 매우 아쉬워했다.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에 몸과 마음을 든든이 보양해주었던 곳이라 꼭 데려가고 싶었다는 그에게 고맙다고 다음에 꼭 가자고 기약한 뒤 나는 집에 홀로 남았다. 


나는 나와 타자 사이 구분이 없는 사람이었다. 성장하면서 훈련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한편으론 스스로 자초하기도 했다. 따뜻하고 훌륭한 사람이고 싶었다. 네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낄 줄 아는 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자꾸 너와 나 사이의 희미한 경계마저 계속 지워버렸다.


하지만 진짜 공존을 위해서 우리는 각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되기 위해서 너도 필요하고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한다. 너와 내가 따로따로 존재해야 교집합을 이룰 수도 있고, 그 교집합의 면적이 클 순 있지만 완벽하게 겹칠 순 없다. 만약 그렇게 보인다면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인정하게 됐다. 나는 구분이 없는 게 아니라 구분이 없는 듯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얼마간 내가 주면 그만큼 비워진 내 곳간을 알아서 채워주는 센스를 은밀히
 바라 왔다. 그러지 못하는 상대와는 잘 안 맞는다고 단정지었다. 다 괜찮은 척 거짓말이 피로해지면 상대를 찾지 않거나 회피했다. 커뮤니티가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가능한 방법이었다.


엉성한 거짓말로 채우기에 너무 가까워진, 더 이상 회피할 곳 없는 조건에서 나는 이제 정말 바운더리의 존재를, 필요성을 인정하고 배워야 했다. 회피가 아닌 내 바운더리에 대해 소통하는 훈련을 하게 된 셈이다. 


그렇게 뒤늦은 내 방 꾸미기도 시작됐다.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려면 내 바운더리 내부를 있을 만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다. 당근마켓에서 나눔 받아왔지만 높이가 높아서 화장대로 변질됐던 책상을 결국 10만 원 이상을 들여 교체했고, 수납을 돕기 위한 캐비닛도 하나 들여 잡동사니들을 칸칸이 넣었다. 유사시 친구가 자고 갈 수 있도록 세팅해둔 구조를 오롯이 내 라이프스타일을 원활히 담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바꿨다. 


이후 다양한 상황에서 바운더리를 만들어가는 시도를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이야기꾼 말로의 말을 끊었다. "잠시만, 미안한데 그다음 이야기는 내가 지금 이 이메일 하나 보내고 들어도 될까?" 오늘 내로 끝내야 할 논의가 있는데 다른 주제로 벗어나는 가브리엘을 붙잡는다. "미안한데 우리 이 주제로 먼저 대화를 끝내면 어떨까?" 아침에 안부를 나누고자 지나가면서 말을 거는 은혜를 돌려보낸다. "미안해 ~ 지금 대화할 수 없어. 글 쓰는 중이야!” 


여전히 거절을 하려면 머리에 열이 난다. 평생의 습관이니만큼 생각하기 전에 내 몸이 먼저 상대를 맞춰주기 위해 움직이기도 한다. 그래서 적어도 10시가 되면 반드시 내 방에 회귀해 따로가 되려고 한다. 함께 하면서 올라간 열기나 분위기에 취해 어딘가 엎어져 날 잃어버린 내 마음의 소리를 기다려준다.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일 년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바운더리를 세워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교집합이 어디까지인지를 안다. 알아야 어떤 배려를 해줘야 할지를 파악할 수도 있다. 자신의 바운더리를 알고 이를 지키기 위해 거절도 하고 타협도 하는 것. 홀로 살 수 있는 인간 사회에서 꼭 익혀야 할 라이프 스킬이자 스스로를 위한 예의다. 이를 이제야 학습 중이라니! 그래서 사는 게 힘들었구나! 조금 늦었지만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면서 차근차근 배우고 있으니 희망은 아직 있다. 살아갈 자신을 슬그머니 품어 본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친구는 이 시를 이렇게 해설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려면 ‘그 섬’에 와야만 한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 찾아가거나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각자 있던 곳을 떠나 섬으로 와야 한다는 것이다. 상상해본다. 사람들이 만나기 위해 그 섬을 향해 항해하는 모습을. 다양한 섬 그리고 섬들 사이 바닷길을. 어딘가는 물살이 세고, 어딘가는 상어 떼가 있다. 각 배와 배를 운영하는 스킬도 다르다. 중간에 있는 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어떤 섬인지 몰라 이리저리 헤맨다. 한 섬에 내려서 불러보고, 어떤 한 섬에 내렸더니 저 멀리 다른 섬에 상대가 있는 것이 보인다. 또 배를 타고 간다. 가는 동안 바다는 맑았다가 태풍으로 요동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바다는 우리를 가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잇기 위해 존재한다. 태평양 섬사람들은 바다를 서로를 잇는 길이라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바운더리는 우리를 더 잘 연결하기 위한 바다와 같은 것이다. 바다가 결국 우리를 그 섬에 데려가게 할 것이라고. 따로가 됨으로써 우리는 더 잘 함께 일 수 있다고. 우리가 사는 방식을 표현할 때 ‘같이 살아요’가 아니라 굳이 ‘따로 또 같이 살아요’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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