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기회. 번역가에게 찾아온 두 번째 기회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by 봄비

나는 재능이 없는 걸까, 기회가 없는 걸까.


회사에선 그 기회라는 녀석을 그다지 기다리진 않았다. 적당한 시기가 오면 승진하고, 또 적당히 일 처리하는 것. 칭찬도 좋지만 그보단 욕먹지 않고 지나가는 게 목표였다. 튀지 않는 것. 무채색의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재능과 기회를 찾기보단 경쟁에 앞서 가지 않는 것 그리고 뒤처지지도 않는 것. 그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를 나오니 또 이번엔 재능 타령이요. 기회 타령이다. 회사 안에선 경쟁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내 동기, 내 옆 부서, 혹은 경쟁업체. 하지만 프리랜서에겐 이 경쟁자라는 것이 모호할 때가 많다. 그래서 쟁자의 수가 몇 배는 늘어난다. 나에게 이 일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나에게 "또" 일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모든 게 나의 역량에 달려있지만, 그 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해보아라. 그렇지 않다는 건 나에게도 보이지 않는 경쟁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독점할 수 없는 게 회사 밖 정글이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재능도 없고 기회도 없는 게 얼마나 서글픈지. 대체 그 기회라는 녀석은 언제 오는 걸까. 내가 재능이 있는 건 맞는 건지. 의심이 들고 자꾸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 싶어 진다. 고 나가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자신이 없다. 반대로 재능이 없는데도 기회가 수시로 주어는 사람들이 있다. 상은 불공평하다. 언젠간 그 한계가 드러날 거라고 못된 질투를 부려보지만, 한계가 드러남에도 계속 승승장구한다. 매력이라는 무기 하나로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 억울하다. 운이라는 녀석과 기회라는 녀석에게 화가 난다. 왜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거지?


노력과 결과가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다. 물 위의 떠 있는 오리가 그 물 위에 떠있기 위해 얼마나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저 평온해 보이는 겉모습에 속아 배가 아파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기회가 아예 오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어찌 되었든 대학교에 갔고, 회사에 입사했고, 퇴사 후에 번역책을 출간한 번역가가 되었, 그리고 현재 여행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것도 잘 생각해보면 기회가 왔고, 적절한 타이밍에 온 기회들을 내가 잡은 거다. 나의 배아픔은 그 기회를 더 크게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일 뿐이었다.


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 그래서 더 좋은 회사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 그리고 회사를 나온 것에 대한 한탄. 번역가가 된 후 더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 더더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 또는 덜덜덜 한 것에 대한 한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게 아니다. 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노력이 부족했거나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 아니면 방향이 틀렸거나 달랐던 것뿐이었다.


첫 번역을 제대로 끝내지 못해서 자책하던 중 두 번째 의뢰가 들어왔다. 볼 필요도 없었다. 거절할 생각이었으니깐.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 그런데 쪽지를 읽고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전공했던 생명공학과 관련된 번역이었 때문다. 문서를 열었다. 술술 읽혔다. 전공과 전혀 상관도 없고 전문 용어가 난무해 혼돈의 도가니였던 첫 번째 번역과는 달랐다. 대충 훑어봐도 그랬다.


눈물을 닦았다. 또 무작정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덥석 일을 받아버렸다. 그 번역이 지금까지 5년간 내가 번역을 할 수 있게 해 준 기회였다. 나는 그걸 운명이 아니라 기회라고 말하고 싶다. 포기하려는 찰나에 전공과 관련된 번역일이 들어오다니. 그 번역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마 다신 번역 쪽에 고개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기회, 나에게도 왔었다. 그 기회를 키워 더 유명한 번역가가 되지 못한 건 슬픈 일이지만 그건 내 잘못도 크다. 그걸 인정해야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법. 하지만 번역일을 하면서 늘 긍정적인 결과만 창출된 건 아니다. 물론 번역에게도 고난이 있다.


다음 화에는 번역 사기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두둥.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 어떤 게 기회였는지. 내가 그 기회를 어떻게 대했고,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어떤 일이,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줄 윤활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후회 없이 행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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