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초보 번역가가 하기 쉬운 실수. 나의 첫 의뢰

본인의 역량 파악이 우선이다.

by 봄비


시작 전에 늘 장비부터 완비하는 친구가 있었다. 장비를 잔뜩 사놓고는 괜스레 어깨가 으쓱, 자랑만 하더니 먼지가 소복이 쌓일 때까지 시작하지 않는다. 그렇게 쌓여가는 장비만 몇 개째인지.

그래도 언제든 시작만 하면 되니 오히려 그게 맞는 건가. 나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뭐든 덥석 시작해버리는 무대책자. 무작정이라는 말을 좋아했고, 무대포였다. (어렸을 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시작도 쉽고, 포기도 더 쉬웠다. 어느 게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다. 각자 스타일이 다른 거니깐. 하지만 분명한 건 시작했다면 후회는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포기를 하든 현재 진행형이든.


첫 번역 의뢰가 들어왔다.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의뢰인에게 견적서를 보내고 번역을 시작했다. 번역은 내가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분야였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렇게 돈을 받아도 될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시작해버린 일이다. 의뢰를 받았으니 어떻게든 해봐야지.


밤을 새웠다. 이틀 밤을 새웠지만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몇만 원을 벌자고 이틀 밤을 새우다니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 너무 어려웠다. 이러다가는 의뢰인에게 폐만 끼칠 것만 같았다. 니, 더 직해지자. 그냥 내가 너무 힘들었다. 포기를 선언해야만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첫 의뢰에 포기라니! 눈물이 났지만, 질질 끌 수 없는 노릇.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 쪽지를 보냈다.


"처음부터 말씀드렸듯이 이번이 처음으로 받은 의뢰라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하지만 제 역량 부족으로 완성하진 못할 것 같아요. 전문 용어를 찾고 공부하는데만 이틀 밤을 새웠는데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조사했던 내용과 번역문은 전송할게요. 의뢰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음이 착잡했다. 퇴사 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한 나의 진로인데 이렇게 무너지다니.

답장이 왔다. 떨렸다. 욕이 적혀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서웠다. 포기가 무서웠고, 결정에 따른 책임감도 무거웠다.


"번역문을 읽어보니 너무 잘하셔서 계속 의뢰를 맡기고 싶습니다. 추가 요금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전문 용어가 많다 보니 어려운 거 이해합니다. 다른 번역사분들은 어렵다고 의뢰조차 받아주지 않습니다. 부탁합니다."


모니터에 시선이 꽂힌 채 한참을 고민했다. 내 역량을 넘는 일인데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야. 배테랑 번역사도 어렵다고 거절한 의뢰를 첫 의뢰로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야. 그래. 포기하자.


사실 5년 차가 된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의 문서는 원어민도 해당 전문가가 아니라면 해석하기 어려운 문서였다. 초보자가 하는 가장 큰 실수. 본인의 역량을 모른다는 거다. 무리해서 받고 무리해서 진행한다. 자신의 역량을 터득하기 전까지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친다.


의뢰인과는 훈훈하게 마무리를 하였다. 의뢰인도 울고, 나도 펑펑 울었지만, 서로의 건승을 빌며. 그래도 착한 분을 만난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제 다시는 번역의 '번'자도 꺼내지 않으리라. 번역계엔 발도 디디지 않았을 거. "


퇴사는 나에게 또 다른 시작이 아니라, 쥐고 있던 모든 것들의 포기였다. 시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도망치기 위한 포기였다. 그런데 또 힘들다고 시작과 동시에 포기라니. 내 자신이 미웠다. 그런데, 그 순간 쪽지 하나가 도착했다.

나의 운명을 바꿔준 쪽지...


과연 그 쪽지엔 뭐라고 적혀있었을까?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 무리하지 말자. 인생은 장거리 달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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