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겨 카페로 향한다. 햇살은 쨍하니 맑은 날이다. 카페 문을 여니 낯익은 목소리가 인사를 건넨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늘 드시는 커피로 준비하면 되죠?"
고개를 끄덕이고 늘 앉던 창가 자리로 향한다. 통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햇살보다 더 찰랑인다.
회사를 그만두고 바다가 있는 포항, 고향으로 내려갔으니 실현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단골 카페 하나쯤은 생길 줄 알았는데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면서 그런 날은 손에 꼽혔다. 일이 많은 날은 시간이 없어 집에서 작업했고 일 없는 날은 카페 갈 돈이 아까워 꾹 참게 되었다.
가끔 기분 전환 겸 노트북 들고 카페에서 일하는 날은 사실 번역 작업보다는 카카오톡으로 친구들과 소통하는 일에 더 열중했다. 부르면 10분 내로 달려올 수 있는 친구들과의 카카오톡 소통을 위해 굳이 카페로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날도 어김없이 내 방 작은 공간에서 작업을 끝내고 녹초가 되어 침대에 발라당 누웠다. 피곤해서 까무룩 잠이 들려는데 누가 흔들며 깨운다. 눈을 떠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엄마는 모임을 나갔고 아빠는회사에서 일할 시간이었다.
'그래,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무시하기로 하고 리모컨으로 TV를 켠다. 마침 뉴스가 나왔고 '속보 포항 지진'이라는 글귀가 운명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 번 더 흔들.
곧바로 옷을 주섬주섬 챙겨 밖으로 나왔다. 20층 높이의 건물을 단숨에 빠져나와 집 앞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앞에는 주차난이 일어났다. 포항에서 제일 큰 공원이 집 앞에 있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진이 나니 공원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정현 게릴라 콘서트가 열렸던 그날 이후 이 공원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건 처음이랄까.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들 가족 단위였는데 나만 혼자였다. 게다가 밤바람이 제법 거셌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너무 얇게 입고 나왔다. 바들바들 떨렸다.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한 번에 통화를 하는 바람에 전화도 먹통.
그날 밤의 두려움이란.
나는 그날 이후 지진 트라우마를 꽤 오래 앓았었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침대가 꿀렁꿀렁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지금 지진 난 거 같지 않아?'
몇 번이고 물었다.
지진 때문에 섬까지 이사 간 친구의 친구도 있을 정도였다. (실화다. 물론 남편은 섬, 아이와 부인은 포항에 있었는데 지진 불안으로 아이를 데리고 섬으로 들어갔단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포항이 아닌, 천안에 놀러 갔을 때도 그리고 서울에 놀러 갔을 때도 지진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땅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그런 사람이 늘어나 포항 시청에서는 지진 트라우마 심리 치료까지 해주는 무료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였다.
그럼 어떻게 이 트라우마를 극복했을까.
첫째는 줄어든 지진이었다.
'방금 지진 났지?'
아니.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아, 지진이 아닌데 그저 기분 탓임을 깨닫는 과정을 거쳤다.
둘째는 이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근 지열 발전소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면서다. 그러니깐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려운 천재지변 자연재해가 아니라 원인이 분명한 재해였음을 깨달았기 때문.
우린 그렇게 극복해 갔다.
그런데 이젠 지진이 아니라 바이러스다. 접촉자 한 명 없었다고 하더라도
바깥에만 다녀오면 머리가 질끈 아파오고
마음이 불안했다.
바깥 방문을 자제하면 된다고 하지만
먹고살려면 그것도 완벽한 해결방안은 아닌 듯 보인다. 많은 분들이 나와 같은 트라우마에 시달릴 거라 생각한다.
사람은 과거를 통해 배운다는데 나는 그 과거를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아직도 종식되지 않은 이 상황에서 나는 이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확실한 해결 방안이 언젠가 나올 거라 믿으며 지침을 잘 따를 수밖에. 잘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도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