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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an 22. 2016

악명 높은 타이틀의 단초

#21. 리틀 봉순


리틀 봉순.


뭐랄까, 굳이 유전자의 범주를 나눠본다면 그녀의 유전자는 필시 봉순과 같은 종류일 것이다. 출몰하는 시간대와 동행인으로 봐서 미성년자는 아닐 터, 그럼에도 학생 시절의 온기가 남아있는, 소녀라면 소녀다. 소녀 같은 그녀에게 '리틀 봉순'이라는 악명 높은 타이틀이 붙게 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 입을 열어 ‘말’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나마 들었던 게 있다면 ‘네’가 전부이다. 역할 놀이 당시 봉순이 일관적으로 답하던 그 ‘네’였다. ‘네’인지 ‘에’인지 혹은 ‘어’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 애매한 성대의 울림.


게다가 리틀 봉순은 그 음량마저 소박하다. 늦은 밤 집에 침입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좇을 때만큼이나 신경 곤두세우지 않는 이상, 그녀의 목소리를 캐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옆에서 고장 난 선풍기라도 돌아가고 있다면 그 소리는 모조리 회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이다. 그녀가 메모해 놓고 간 내용이 유일하게 얻어낸 표현. 그 짧은 문장조차 구구절절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사실 이미 몇 번의 대화를 시도해보았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 못 들은 채 하기가 일쑤, 혹 대답해야 할 상황이라도 마주치면 고개를 위아래 또는 좌우로 흔들어 의사표시를 할 뿐이었다. 자신만의 세계, 외부와의 정서 공유 일절 차단, 그야말로 봉순스럽다. 심지어 목선에서 끝나는 짧고 볼륨감 있는 헤어스타일은 정말이지 학창 시절 봉순의 그것과 똑같다. 그 시절 봉순에게 찾아가 “그 ‘머리 모자’ 좀 빌려 주세요.”라고 한 뒤 얻어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다만 헤어스타일을 제외한 그녀의 외모는 봉순과 다른 점이 많다. 일단 봉순처럼 집시 패션을 즐기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색을 딱 알 수 있을 정도로 일관적이다. 메모지 속에 있었던 꽃처럼 파스텔 톤의 옷들이 대부분. 그리고 마른 체형의 봉순과 달리 그녀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아이의 느낌이다. 손으로 누르면 꾸욱 한없이 들어갈 것처럼 말랑해 보인다. 그녀가 어떤 옷을 입고 오든 간에, 좀 전까지 교복차림이었을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손이 참 인상 깊다. 동글동글한 그 손의 손가락은 또 어찌나 짧은지, 성인의 손을 보면서는 처음으로 불가사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짧은 손가락만큼이나 자그마한 키, 혹시 업는다면 다리가 팔에 잘 걸리지 않을 것만 같다. 그만큼 그녀는 작다, 아니 그런 느낌의 소녀이다. 그 작은 공간 속에 팔다리와 손가락 발가락 20개와 얼굴까지 모두 다 있다.


혈관이 보일 정도의 허연 얼굴 위로는, 쭉 찢어진 큰 눈과 그에 상반되는 작은 코, 작은 입이 올라서 있다. 커다란 눈 속엔 그만큼 큰 눈동자가 있다. 검푸른 색의 그 큰 눈동자를 움직이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할 것만 같다. 고양이를 잘 설득해서 유색 옷을 입히고 가발을 씌운 뒤 걸어 다니게 하면 저런 모습일까, 잠시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리틀 봉순은 때때로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날은 홀로 봉다방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전자이던 후자이던 그녀의 표정과 분위기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친구들과 함께일 때는, 그녀의 옆에 무언가를 열심히 얘기하는 ‘사람 배경’이 하나 이상 배치되어 있고, 그녀의 표정이 조금 더, 원래의 표정과 직접 대조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희미하게 더 미소에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참 자세히도 봤네.”


혀 차는 봉순, 질투인가.


“봉다방 식구가 될 사람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다른 뜻은 없다는 듯 사무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사실 ‘다른 뜻’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봉순이 생각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새 직원이 나이 사십을 바라보는 연장자이던 새록새록 여동생이던, 미인이던 그렇지 않던,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가?) 그보다 더 중요한 계략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누군가이다. 최근 봉다방은 미란다 봉순의 끝없는 독재가 이어지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지적과 나날이 견고 해지는 까다로움. 나로서는 감당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직원은 ‘균형’을 의미한다. 권력의 분산, 더 이상의 독재는 없다! 그 무지막지한 요구에 나처럼 군말 없이 응하는 사람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리라. 새 직원이 이 불합리한 업무환경에 불만을 토로하면, 나는 슬슬 달래는 척하며 현 체제의 문제점을 꼬집을 것이다. 리틀 봉순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맘에 안 드는 건 걷어차며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것만 같다.


게다가 삼각관계. 로맨스의 필수 요소라 하였던가. 제아무리 리틀 봉순이라 해도, 전에 없던 훈훈하고 명석한 남자와 함께 일하다 보면 필시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음, 그러니까 아주 조금이라도,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봉순도  초조해지겠지. 봉팔의 존재 가치도 부각하면서 독재에도 제동을 걸 수 있는 최고의 열쇠인 것이다. 실소가 멈추지 않는다.


“뭐야 기분 나쁘게” 그녀가 질겁하며 물었다. “근데 왜 여자야?”


음?


“새로운 식구 말이야. 왜 여자냐고.”


벌써부터 입질이 오는 건가.


“봉순이 뭐야? 그 무심한 표정 뒤에 남자에 대한 욕망이 들끓고 있었던 거야?”


“머저리.” 그녀는 깔끔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난 그냥, 여자랑은 친하게 지내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서.”


넌 그냥 ‘사람’과 친하기가 어려웠던 거야!

꾹 삼킨다. 강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니 모근만 쭈뼛 선다. 하지만 참을 수 있다. 이런 반응에 대비하여 준비한 말이 있다.


“남직원은 이미 둘이나 있으니까, 성비를 맞추려고 그랬지.”

“남직원이?”


걸려들었다. 그 눈에 가시 같은 놈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너에겐 나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그 존재. 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그 남자가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캔디 말이야. 캔디가 있잖아?”

“뭐?”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원망하긴 늦었고 달리 변명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봉순이 그 녀석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많이 봐왔다. 그런데 승리의 쾌재를 불러야 할 시점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 귓속으로 때려 박힌다.


“캔디는 봉다방 직원이 아니잖아.” 그녀는 어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듯, 한 번 더 되새긴다. “캔디는 직원이 아니야.”


순간 귀가 먹먹해지며 짧은 이명이 울린다. 그렇다면 어째서 하루도 안 빼놓고 봉다방의 노란색 문간에 서서, 마치 문을 열고 들어갈 것 같은 포즈로 서있는 거야! 매일 밤낮으로 옮기는 게 얼마나 힘든데.


“직원이 아냐. 그는 우리의 손님이야.”


그녀는 캔디를 너무 미워만 하지 말고 잘 지내라고 덧붙여 말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봉팔의 완패이다. 확실한 논리보다, 냉철한 이성보다 무서운 것은 다른 차원의 존재. 난 한동안 입만 뻐끔거리며 있다가, 이내 정신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휘말리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아무튼! 리틀 봉순이 적임자에는 변함이 없어.”


재개발 앞둔 노른자위 땅에 들어앉아 ‘NO! NO!’만을 외치는 땅주인처럼, 완강한 제스처를 취해본다. 검지를 좌우로 흔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아니 뭐, 딱히 싫다는 것은 아니었어.”


학창 시절에 즐겨 사용했던 ‘뭐 하자는 플레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내가 참아야지, 못 이기면 참아야지, 격분한 가슴 다스리며 결국 ‘리틀 봉순’의 스카우트 계획에 착수한다. 내 예상이 맞다면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봉다방에 대한 애착이 상당 부분 생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그녀의 내적 동기를 일으키는 요소는, 그녀의 유화로 채워 넣고 싶은 ‘안쪽 벽면’이다. 이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며칠 뒤 리틀 봉순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행인 없이 혼자였다. 난 그녀가 주문한 생 레모네이드 외에 새로 개발한 치즈 토스트를 함께 건네며, 정리해 두었던 말들을 슬쩍 꺼냈다.


“저기…”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는 않지만 내 음성이 흘러들어가는 눈치다.


“참 자주 오시네요. 혹시 봉다방이 마음에 드세요?”


“에.”


역시나 짧은 대답.


“저…” 난 그녀가 끼적이고 있는 메모지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림 그리는 걸 참 좋아하시나 봐요.”


대답은 없다. 불가사리가 움키고 있는 색연필 끝만 유려히 움직일 뿐이다.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번에 흘리고 가신 메모를 봤어요.”


또 침묵, 벌써부터 짧은 대답이 그립다.


“그, 메모 내용에 보면 봉다방 안쪽 벽에 대한 얘기를 적어 놓으셨던데… 기억나세요?”


그녀가 고개를 돌리더니 그 큰 눈으로 나를 보고는 다시 빠르게 메모지로 돌아간다. 마치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것만 같다.


“그 그림, 그리고 싶으시면 그리셔도 돼요.” 땀이 삐질삐질 나온다. “그러니까 제 말은 원하시면 그렇게 해도 된다는 뜻이에요.”


“아.”


아? 라니, 그리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아, 그걸 몰랐네?’인가.


“사실 저희 봉다방에서 새로운 식구를 모집하고 있는데요.”


속내를 꺼내며 그녀의 반응을 살핀다. 여전히 고요하다.


“저희가 단골 분들 중에서 적절한…” 아, ‘적절한’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급하게 고쳐 말한다. “그, 가장 어울리는 분을 정해서 인연을 만들고자 하는데….”


다시금 침묵이 이어진다. 보통, 사람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그녀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괜찮으시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상의를 해볼까 하는데.” 가장 하기 힘든 얘기, 동시에 아직은 꺼낼 필요 없는 얘기. 맘 급해서인지 혀를 타고 나와버린다. “저희가 아직 시급이 참 적어요. 예, 그렇죠. 저도 참 배가 고픈데… 그, 한 마디로 이쪽 일을 좋아하면 참 재밌어서… 그리고 사실, 인생에 돈이 전부도 아니고….”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녀라고 알 수 있을까 모르겠다. 듣고는 있는 건지. 그녀는 그저 침묵으로 응수할 뿐이었다. 지금의 광경을 그림자로 본다면, 피도 눈물도 없는 회사 상사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모양새일 것이다. 주방에서 지켜보던 봉순이 다가온다. 성큼 또는 썽큼, 그리고 나의 사족을 무색하게 만드는 압축 문장.


“봉다방에서 일해 볼래요.”


‘너를 좋아한단 말이야!’ 외침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상대 배우는 눈과 입을 멍하게 벌리고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외침과 상반되는 기나긴 정적이 흐른다. 먼지 떠다니는 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은 긴장감. 드라마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봉순의 한 마디 이후 이어진 침묵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 어떤 음향효과도 없지만 모두의 머릿속에 울리고 있을 메아리, 그 메아리가 이해되는 시간, 그 시간만큼의 침묵.


“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조마조마하게 서있는 봉팔도, 무심한 듯 비스듬히 내려 보는 봉순도 아닌— 리틀 봉순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뒤를 돌았고, 큰 눈동자를 움직여 봉순과 나를 번갈아 스친 뒤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그녀가 벙어리가 아님을 알게 해 준 말, 그녀가 뱉었던 그 모든 단어들보다도 기나긴 말, 엉뚱한 말,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그 말.


“고양이 키워도 돼요?”


하지만 의사가 전해지는 말.


식구가 생기는 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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