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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an 29. 2024

80년생이 간다

머리말


이상한 일들을 겪었어요. 최근 몇 년 간이요. 의도와 주변의 반응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게, 마치 제가 사는 지구에만 거대한 단층이 생긴 것 같았죠.


그게 어떤 일이며 이유는 무엇인지 찾아내는 데 긴 시간이 걸렸어요. 어쩌면 이미 존재하던 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끝에서 찾은 결론은 ‘나는 더 이상 그 시절의 내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어요.


내가 그 시절의 내가 아니라니 이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일까요. ‘늙었다'라는 간단한 말을 굳이 어렵게 돌려 말한 이유는, 늙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에요.


나는 여전히 '예전의 수많은 나'와 닿아 있거든요. 무해하게 웃으며 뛰어놀던 유년 시절과, 상상력이 풍부했던 청소년기,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었던 청년기와 말이죠. 당시의 나로부터 연속적으로 존재해 왔기 때문에 그것들은 본연의 모습 그대로 나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신을 젊은이로 바라보려 하고, 시대의 주역으로 존재하길 원해요.


그런데 '세상에서 바라보는 나'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나이를 꽤 먹은 중년으로 바라보죠. 마치 영혼은 그대로인데 그 기능은 낮아진 육체처럼, 이 차이는 미묘하고 낯선 경험들을 선사해요. 이를테면 가볍게 던진 농담이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어요. (예전엔 분명 통했었는데...) 뚝심과 열정은 나를 까다롭고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여기게 해요. 매력이었던 면모는 결점으로 그 모습을 바꿨고, 애착을 담아 입던 옷들은 집착을 넘어 주책이 돼버렸죠.


이런 차이는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새로운 역할을 요구해요. 단단하게 뭉친 윗 세대의 가치관과 애환을 헤아려야 하고, 각각의 고유성을 갖고 다가오는 아랫세대에겐 멋진 선배로 존재해야 합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사고가 유연한, 난제가 생겼을 땐 답변을 줄 수 있는 선배 말이죠. 그렇다고 답변에 진심을 너무 많이 담으면 안 돼요. 어느덧 그 모든 글자들이 TMI로 재탄생하면서 후배의 입은 묵직해지죠. 서먹한 정적이 찾아옵니다.


모든 상황이 이렇다는 것 아니에요. 단지 그 경험의 빈도가 늘어나면서 부인할 수 없게 된달까요. 어느덧 나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젊은이에서 늙은이로, 주역에서 보조자로, 신세대에서 구세대로 옮겨져 있다는 것을 말이죠. 이 두 쌍의 단어들은 숫자의 나열처럼 서로 연결되지 않기에 옮겨진 제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궁금해하는 이도 말할 기회도 줄어들었죠.



이런 생각은 임홍택 작가님의 <2000년생이 온다>를 접하면서 더 커진 것 같아요. 저렇게 정밀하게 세대를 조명하고 대변해 주다니 그 세대는 얼마나 좋을까. 80년생을 다룬 책도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요.


그래서 스스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80년대생의 이야기. 비록 저에겐 그 세대를 아우를 만큼의 지식이나 통찰력은 없지만, 1980년대에 태어나 현재까지 겪은 이야기들 속에 나름의 재미와 의미를 담아보려고 해요. 그 시대에 겪을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들, 그 순간들로부터 이어진 일상의 변화, 그리고 성장과 생존 사이의 균형 같은 것들을 말이죠. '예전의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야 할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적어요. 뇌에도 단층이 생긴 건지 기록해두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따금 사람이 붐비는 거리에서도 멈춰있곤 합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본다면 멍하니 기능이 고장 난 사람처럼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실은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리는 생각들을 허겁지겁 잡아채고 있는 건데 말이죠. 마치 잠결에 조상님이 불러준 로또번호를 적는 것처럼….. 근데 이 얘긴 TMI였던 것 같아요. 그쵸? ㅎ


어느덧 TMI를 조심해야 하는 나이가 돼서 적는 이 로또번호, 아니 이야기들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한낯 개인적인 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이 모여 조금의 의미가 생기길 기대해 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추억과 위로를, 다른 세대에겐 80년대생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멈추지 않고 계속 쓰는 게 중요한테 말이죠...!)


자 그래서, 80년생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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