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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Feb 05. 2024

새로운 소통의 시대가 도래했다!

원격 대화의 시대로부터


해가 지는 게 싫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우리가 뛰놀던 골목길 어귀에도 어둠이 찾아오고, 친구 시현이의 얼굴과 옷과 팔과 다리에도 그늘이 퍼진다. 이는 곧 작별 인사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가야 하는 걸 뜻했다. 우리가 가기 전에 엄마들이 나왔을 때의 끔찍한 사태를 여러 번 겪었던 지라,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는 미량의 자재력을 발휘하여 작별을 고한다. 떨어지는 발걸음엔 아쉬움의 추들이 잔뜩 달려 있지만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왜냐하면 각자의 집에서도 우린 언제든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격 대화의 시대


1980년대 중반쯤부터 대한민국 대부분의 가정집에서는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소통 대부분은 직접 만나거나 편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전화기의 도입으로 대화를 위한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사라졌다. 다른 사람의 집에 직접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도 버튼 몇 번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화기는 박수와 같아서 어느 한쪽에만 있어선 짝 소리를 낼 수 없다. 다행히도 내가 친구라는 존재에 최초의 관심이 생긴, 그러니까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었을 때쯤엔 이미 그것이 대중화된 후였다. 나의 집에도, 그리고 시현이의 집에도 전화기가 있다는 의미다. 나는 '원격 대화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


이 신통한 전화기 덕에 나는 집에 와서도 시현이에게 곧잘 연락을 하곤 했다. "안녕하세요. 시현이 친구 고래인데요. 시현이 좀 바꿔주세요." 잠시 후 친구가 전화를 받는다. 나는 목소리를 괴상하게 바꾼 후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떼여 저는 똥입니다. 당신은 설사입니까?" 그러면 시현이가 설사보다 못한 그 어떤 것으로 나를 칭하며 화답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푸흐으으’ 하면서 거품과 기침과 신음 사이의 어떤 것을 뿜곤 했다. 양쪽 집의 어머니들이 '쟤네가 왜 저럴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신다. "내일 제일슈퍼 언덕에서 봐!" 낄낄 웃으며 끊는다. 아, 어찌나 재밌던지.


단지 12개의 자판이 붙어 있는 플라스틱 기계가 어찌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종이컵으로 만들었을 때는 선이 끊어질 듯 팽팽해야 겨우겨우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전화기에서 벽으로 들어가는 선은 딱히 팽팽하지도 않으면서 또렷하게 잘 들리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뿐인가. 도대체 누가 어떻게 이 많은 집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했냐는 말이다! 초능력자가 분명했다. 어느 날 전화선이 너무 많아져서 꼬여버리고, 그렇게 전화기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세상이 오진 않을지 걱정도 됐더랬다.



돌아보았을 때, 전화기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선 사회적 가치를 만들었다. 그 덕에 가족과 친구, 이웃 간의 연결이 더 강해졌고, 먼 거리에 사는 이들과도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게 얼마냐 대단한 일이냐면, 설령 이웃사촌이 내가 살던 동네를 떠나 몇 시간 거리의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치자. 전화기가 없었다면 그 사람과 대화를 하기 위해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참고로 당시는 지하철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이어서 버스를 타고 버스를 탄 후에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정이기에 기별을 전하기 어려워지고, 그렇게 서서히 멀어진다.


하지만 이 전. 화. 기. 덕에, 그 멀리 있는 사람이 마치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대화를 할 수 있다. 수화기와 내 귀의 거리만큼이면 되는 것이다! ―물론 시외요금의 부담을 고려했을 때는 이전의 방식인 편지로 대화하는 게 가성비 측면에서 낫겠지만...― 멀리 있는 사람과 원하는 시점에 바로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은, 그것을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겐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토록 좋은 원격 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감사는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저녁 무렵 시현이에게 거는 전화한 통으로, 코딱지나 비듬 그 어디쯤에서 즐거워했을지 모른다. 수화기를 들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일상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며 지냈을 것이다.


무선전화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신문물은 어느 날 기별도 없이 인류를 찾아왔다. 전화기인데... 전화기인데 선이 없다. 팽팽하지 않아도 잘 들리는 것만으로 신기했던 그것이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나는 그간 유선전화기에 갖고 있던 감사가 무색하다 못해 무안할 정도로 짧은 선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후 선이 없어진 전화기는 나의 삶에서, 특히나 이성과의 소통에 있어서 큰 변화를 이끌었다. 바야흐로 새로운 소통의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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