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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걱정과 산책.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by 아스파라거스


이 바닥 바이블bible 중 하나인 Ben Horowitz가 쓴 책, '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라는 책에 보면, 대충 다음과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The most important thing, as an entrepreneur, is to focus on what I need to get right and stop worrying about all the things I did wrong or might do wrong.
기업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잘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것이고, 잘못했거나 잘못할 것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에 대한 걱정을 후회라고 하고, 현재에 대한 걱정을 근심이라 하며, 미래에 대한 걱정을 불안이라고 한다.


특히나 창업자들은 후회, 근심, 불안에 많이 시달리는 것 같다. 그러니 저 유명한 책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말하는 것일 테다. 실제로, 한 통계에 따르면 72%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정신건강문제mental health challenges를 겪는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그들 중 37%가 불안장애anxiety, 비슷한 수치로 번아웃burnout(36%) 그리고 공황장애panic(10%)를 겪는다고 한다. 열에 일곱, 어마무시한 숫자다.

그래서인지, 기업가를 위한 정신관리mental care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들도 있다.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돈이 될 정도로 큰 문제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벤 호로위츠의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쓸데없는 걱정 말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은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한 지극히 주류경제학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그게 되나? 사람인데? 그러니 열에 일곱의 문제가 아닐까?


행동경제학이건 주류경제학이건, 어쨌든 둘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은 명확한 것 같다.




담배와 술

2012년 첫 창업 이후 현재의 보틀리스까지, 나도 10년 넘는 기간을 스타트업 창업자로 지내고 있으니 이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나는 문제가 있는(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72%에 해당한다. 단, 아직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지, 이렇다 할 족적 자체가 없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후회로 인해 고통받지는 않는 편이다. 대신에 현재의 근심과, 미래의 불안함에 사시나무 떨 듯이 격렬히 반응하는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나름대로 근심과 불안함, 각각에 대하여 적합한 처방을 가지고는 있었다. 담배와 술이다.

담배는 근심을 해결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그렇다. 특히나 바둑과 담배. 담배는 놀라울 정도로 현재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학교 다닐 때만큼은 아니며, 더 이상 연초를 피우지도 않지만, 나는 여전히 하루 한 갑 이상을 소모한다.

술, 이보다 더 불안의 소거에 적합한 묘약이 있을까 싶다. 영감을 주고, 희망을 주고, 안정감을 주는... 유일한 단점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깬다는 것뿐. 특히나 대유행의 시대covid-19 동안에는 미처 술이 깰 틈도 없이 거의 절어서 눈에 술이 찰랑거릴 정도였다. 그 시절, 불안감에 휩싸여서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근심과 다르게 불안함은 거의 모든 기능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담배와 술이 있었기에 행복한 오늘을 또 맞이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감사하다.




산책과 삶의 주도권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깨달았다. 근심과 불안함이 나를 잠식해 갈 때에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운동도, 글 쓰기도, 하다 못해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 일도 힘든 때에, 산책만은 가능했다(담배와 술은 번외로 두고).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사이의 산책은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나에게도 큰 무리가 없었다. 반면에 그 효과는 대단했다. 운동 같지도 않은 것이 걷는 동안에, 코르티솔cortisol 감소, 세로토닌serotonin 증가, 뇌는 알파파alpha wave 상태라는 놀라운 효과를 주었다. 그래서인지 잡스도 걸었고, 니체도 걸었고, 칸트도 걸었다. 나도 따라 걸었다.


빈센트 반 고흐 - The Road Menders


동이 트기 직전에 나가 뜨는 해를 보며 돌아왔다. 그동안 나는 창업을 했다는 이유로 굉장히 주도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 여겨 왔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삶을 위한 모든 기능을 마비시킬 정도로 심각했던 나의 근심과 불안은 정반대로 주도권을 잃은 데서 기인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것을 걸음으로써 알게 되었다.

주도적이지 못한 삶은 다른 사람의 페이스pace에 끌려 다니기에 급급해진다.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근심해야 하고, 내 손으로 그리지 못한 미래에 불안해야만 한다. 반면에 주도적인 삶은 현실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의사결정을 한다, 그리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계산하고 리스크를 관리risk management 한다. 근심할 이유도 불안할 이유도 없다.


과장 없이, 삶의 주도권을 갖는 시작이, 적어도 내게는 산책이었다. 특별한 요령도 도구도 필요 없는 그 단순한,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날이 풀리면 또 걸어야겠다. 지금은 추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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