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 등장하고 싶은 나이

등단하는 법은 임신하는 법과 같다!

by LaLa

문창과 생에게 있어서 등단은 원대한 목표와도 같다. 글을 좀 쓴다는 사람들의 목표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 등단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 오르지 못한 산을 오르는 것처럼 우리는 그 너머를 알지 못한다.

등단 (登壇)
1 연단(演壇)이나 교단(敎壇) 같은 곳에 오름.
2 어떤 사회적 분야에 처음으로 등장함. 주로 문단(文壇)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을 이른다.
3 진언종에서, 행자(行者)가 관정(灌頂)을 받는 일.


아이를 갖는 법에 대해서 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 중 하나는 다른 임신을 한 사람을 질투하는 일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태생적으로 시기나 질투가 부족한 나와 엄마는 누군가를 질투하고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일보다 이해하고 축하하는 일명 '착하게 살기'에 더 적합한 평화주의자였다.


우리 학교에는 등단 못이 있었다. 한 발이 빠지면 끝일 것 같은 여느 대학에나 있을법한 연못보다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전설은 실로 거대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연못에 빠지면 그 해에 등단을 한다는 전설이었다.


이야기를 지어내야 하는 과다 보니 과하게 그럴싸 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함께 글을 쓰던 선배가 등단 못에 발을 담그고 그해 신춘문예 등단을 하였다.


연못에 빠져서 등단을 한 것인지 실력이 출중해 등단할 때가 되어 된 것인지 닭과 계란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에 대한 상상이지만, 주변 사람의 일은 전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등단한 선배를 질투한 다른 선배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임신한 임산부를 질투하면 자신도 임신을 하게 된다고 했던가.

등단한 선배를 질투한 다른 선배도 결국 다음 해 등단을 하였다.


문단에 처음 등장하는 등단.

축하만으로는 등단의 대열에 낄 수 없었다. 축하하는 마음보다 질투를 해야 했던 걸까?

다른 과 동기는 1억 고료에 당첨되며 신문사에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질투보다는 이상하게 나온 사진을 놀리느라 여력이 없었다.


함께 글을 쓰던 다른 학교 친구도 등단을 했고, 등단한 선배들과 친구는 책을 내거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들은 프로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등단하는 사람들을 축하하며 나는 등단과 멀어지는 나 자신을 애써 직장인의 삶에 적응하느라 그런 것이라 위로했다.


10대 때는 문창과만 가면 나는 바로 등단을 할 줄 알았다. 치기 어린 나는 나를 과대평가하고 당당히 노벨문학상에 이름을 올리리라 원대한 꿈을 꿨다.


하지만, 등단은 녹녹지 않았다. 누군가 앞에 등장하기도 힘들었다.

문단에 등단하는 일. 내 이름으로 작가 타이틀을 달기는 힘들었다.


졸업반 시절 등단할 것 같다는 교수님의 말에 부풀었다가 실망한 이력을 안고나서는 부족한 채로 응모하고 싶지 않았다. 자꾸 최종심에서 미끄러지는 선배는 "최종심까지 갔던 사람들은 포인트 제도를 해서 몇 번 최종심 가면 등단시켜줬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하고는 했다. 나는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들로 인생 리스트에서 등단에 도전하는 일은 보류되었다. 대학원을 가고 싶었던 마음과 다르게 취업을 해야 하는 현실과 타협하면서 등단은 점점 더 멀어졌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내가 질투의 힘이 부족해서 등단의 꿈을 놓아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등단이 아련해질 무렵.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참 후배들이 등단하기 시작했다. 문단에 2000년대생이 등장했다.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라던데. 이제는 밀레니엄 세대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렇게 점점 등단은 남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을 무렵.

30대가 넘어 35살에 경력단절을 걱정하자 하나둘 주변에서 글을 왜 안 쓰냐고 묻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친구가 다시 연락이 닿아 나에게 "너는 작가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라고 머리를 울리는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도 내가 경력단절을 걱정하자 "너는 글을 쓰면 되잖아"라고 했다.


친구의 오빠가 쓴 글이라며 봐달라고 보내기도 하고,

다른 학교 친구가 자기가 쓴 소설이라면서 봐달라고 100페이지가 넘는 글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의 글을 평가할 만큼의 자신이 없었다.

'내가 등단을 했다면.'이라고 생각을 했다.


주변인들이 나에게 글을 쓰지 않냐고 했을 때 나는 또 다른 정체성이 생긴 것 같아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나는 이제 등단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20대 등단인들이 줄을 이을때 뒤늦게 젊은이의 자리를 뺏는 건 아닌가 늙은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학교 선배가 브런치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sns에 올라왔다. 동기가 예전에 써놓았던 브런치가 다음 메인화면에 떠서 조회수가 폭등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이 참에 블로그와 속성이 다른 브런치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낙방을 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려면 작가 신청을 해서 통과해야 하는데, 낙방을 했다.

나는 분하고 쪽팔렸다. 브런치도 통과 못하는데 무슨 등단이냐.

나를 등장시키는 일조차 하지 못하는데.


학교 동기들은. 혹은 선배들은. 그리고 다른 학교 친구들까지.

왜 죄다 주야장천 잘만 브런치를 하는데 나만 낙방이란 말인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질투였던 걸까. 나는 브런치에 통과되었다.

시샘
시새움의 준말

시새움
자기보다 잘되거나 나은 사람을 공연히 미워하고 싫어함. 또는 그런 마음

시기와 질투가 잘 일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마음의 결핍이 있는 걸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딱히 부러운 사람도 딱히 억울한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구겨진 35살 나에게는 시샘이 있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보면 전염이 되어 생긴다.


오히려 시샘과 질투가 많은 사람일수록 빨리 성공에 이른다.

임신을 하고 싶으면 임신을 한 주변인을 질투하고

브런치가 통과되고 싶으면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등단을 하고 싶으면 등단한 사람들을 질투해야 한다


예술가들에게 '시련'이 더 좋은 작품을 낳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처럼

오늘부터 열심히 질투를 시작해보자.


지금 느껴지는 질투, 시샘 그건 나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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