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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Dec 15. 2023

아이가 혼자 잔다

시작은 아이 몸에 맞는 좀 더 큰 책상을 사자-였다.

그러는 김에 어수선한 아이방을, 집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많은 물건들로 가득찬 그 방을

대대적으로 정리해보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불현듯 남편이

이제 아이도 혼자 잘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품에 끼고 잘 거냐며 침대도 같이 사자 했다.


집먼지진드기 알러지 지수가 어마한

아토피, 비염, 천식이라는 알레르기 기차를 칙칙폭폭 타고 있는 아이에게

없던 침대를 굳이 사주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곁에 자며 아이 냄새를 맡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자는 아이를 한 밤 중 이불 위로 끌어 올리거나

잠결에 엄마 찾아 굴러와 내 베개를 고 자는 아이로 인해 나는 모로 누워 자는,

이제서야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을 좀 더 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침대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후부터

매사 동요가 크지 않은 아이의 마음이

이리저리 뜬구름마냥 두둥실거리는게 눈에 훤히 보였다.


재활용 박스로 아이방 가구들을 10대 1 비율로 축소해 만들어

무엇을 어디에 배치할까 함께 이야기할 땐

연필을 귀 뒤에 꽂고 긴 줄자를 이리저리 갖고 다니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아이.

과자상자를 오려 만든 평면도

수 날 동안 어떤 프레임을, 어떤 매트리스를 살지 검색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잠 못들다가

예시에 등장도 안했던 것들로 얼떨결에 계약하고

먼저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의 조언에 책상과 의자도 정하

새 이불은 두 번의 시장조사 후 수월하게 구매완료하며

근 두어 달간의 아이방 재배치 프로젝트는 일단락이 났다.

이 김에 때 지난 장난감 정리도 하고 어마한 양의 종이, 플라스틱류를 재활용장에 갖다 버리니

조금은 꼴이 나는 아이 방.


아이는 하교 후 새 책상에 앉아 시키지도 않은 워크북을 하고 (그러는 와중에 수십 번 책상 옆 침대로 가 눕는 걸 보며, 역시 침대 있는 방에서는 공부할 것이 못되는군, 조금씩 다시 거실로 불러와야겠어-라고 다짐했다.)

침대에서 혼자 자겠다 은근 자신감을 비추기에

새 이불 빨아 뽀송하게 마른 오늘이 날인가 싶어

그래, 혼자 잘 수 있을거야, 독려했다.


호기롭게 누웠지만 처음 몇 분간은 뒤척이길래

곁에서 토닥이고 다리도 주물러 주니

곧 곤히 잠이 드는 아이.

심지어 애착이불도 없이!!!


남편은 온몸으로 서운함을 뿜어내는데

오히려 나는 생각보다 담담하네?


기저귀 떼는 것도

숫자 아는 것도

한글 읽는 것도

어쩌다가 어영부영 하더니

잠자리 독립도 그리 되는 건가.

또 한 번, 기다려주면 나는 자라요-를

열어 둔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듯

그렇게 보여주는 아이.


그래도 오늘 밤 거실의 작은 등은 켜 두어야지.

한밤중 잠에서 깨어 익숙한 안방 바닥 요 위로 파고들 수 있는

아이를 위해.

내심 그걸 기대하는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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