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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Sep 09. 2024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이 궁전을 떠나는 게 슬프구나.’ 그라나다의 나스르 왕조 마지막 에미르 무함마드 12세 보압딜은 이 말을 남기고 아프리카로 떠나야 했다. 패자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보고 그의 어머니는 한심하다는 듯이 ‘남자처럼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여자처럼 울기라도 해야지.’라며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결국 보압딜은 북아프리카에 알람브라보단 못해도 대충 비슷한 궁궐을 만들어 살다가 죽었다. 그의 마지막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었다. 나에게도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을 했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했다. 고등학교 2학년, 선배의 구타로 그는 야구를 그만뒀다. 선배에게 맞는 것보다 1학년의 군기를 잡고, 구타하고 있는 자기 모습이 싫었다. 그는 야구 방망이 대신 클래식 기타를 잡았다. 덩치에 안 어울리는 작은 기타를 품에 안고 그는 자유공원에서, 월미도 카페에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개인택시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그는 유학을 떠났다. 그는 나에게 반드시 성공하겠다며 울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 후로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기타 선율로만 들던 알람브라 궁전에 내가 서 있다. 무어인 최고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알람브라 궁전은 '안달 루스'의 황혼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워졌다. 그 후 궁전은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베리아 반도 전쟁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말미인 1812년에 프랑스의 세바스티앵에 의해서 탑들이 철거되어 피해를 보고, 1821년에는 지진 피해까지 보았다. 이후에는 지역 총독마저 알람브라 맞은편의 헤네랄리페에서 거주하면서 궁전을 완전히 방치하는 바람에 집시와 강도들의 무단 거주지로까지 퇴락했다. 훼손된 궁전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인이었던 작가이자 외교관인 워싱턴 어빙에 의해 1829년 알람브라의 이야기(Tales of the Alhambra)가 출판되면서부터 다시 영광을 찾기 시작했다. 1828년부터 호세 콘트레라스에 의해 원형을 찾기 위한 공사 및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다. 1830년에 페르난도 7세의 기부로 지속해서 공사를 할 수 있었으며 1847년 호세가 사망했으나 그 아들이 물려받아 계속 공사하였다. 1870년에는 국보로 지정하였고 1984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나무위키 참조)     

 알람브라 궁전은 크게 4개 공간으로 구성되는데 처음 지어진 건축물이자 가장 전망 좋은 요새인 알 카사바, 아라베스크 양식의 꽃인 나사리 궁전,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의 헤네랄리페, 스페인 르네상스 시기의 건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과 산타 마리아 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다. 우리는 정원과 분수가 있는 곳을 지나 나사리 궁전을 구경했다. 고개를 돌려가며, 다물지 못하는 입으로 날 파리가 날아들어도 행복했다. 내가 걷는 것인지, 사람들에 밀리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들 속에서도 행복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표정이었다.

“여기가 그곳이다. 세주를 만나기 위해 퀘스트를 진행했던 바로 이곳 지하감옥.”

“무슨 소리야?”

“좀비들과 싸우러 현빈이 들어간 입구가 여기였어. 생각 없이 걷고 있었는데, 이런 행운이 올 줄이야.”

“드라마 좀 그만 보지?”

“드라마라는 용어는 행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나는 한다’에서 파생되었어. 알아?”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사랑.”     


 워싱턴 어빙의 방을 기웃거렸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그는 소설을 썼다. 그가 소설을 썼을 무렵 궁전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낮에 궁전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저녁에 퇴근하고, 그만이 궁전 안을 달빛을 벗 삼아 밤새 거닐었을 것이다. 어빙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알람브라 궁전에 서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감사하며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의 손길을 느껴졌다. ‘워싱턴 어빙 님, 대작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좋은 글 한 번 쓰게 해 주세요.’ 나는 속으로 제발, 좋은 글 한 번 쓰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아버님, 손잡이를 잡고, 주무십니까?”

“좋은 글 좀 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빠, 어떤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매일 기도했어.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하나님이 감동할 정도였지. 그는 매일 기도 했지만, 로또 1등에 당첨되지 않았어. 지친 그는 하나님에게 욕을 했어.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대답했어. 뭐라고 했을 것 같아?”

“글쎄, 로또는 사행성 있으니까 안 된다. 노력해서 돈을 벌어라.”

“하나님이 말했지. 로또를 사야지 당첨을 시켜주던지, 말든지 하지. 먼저 로또를 사.”

“굉장히 충격적인데.”

“아빠, 드라마 좀 그만 보고,  글을 써.”      


 알람브라 궁전을 한 바퀴 도는데, 3시간쯤 걸렸다. 우리는 길거리 카페에서 착즙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궁전을 올려다봤다. 궁전 담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궁전 담장이 나에게 말하네.”

딸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스페인어로 하면 못 알아들을 텐데, 한국어로 했나 보지. 담장이 뭐래?”

“딸, 고맙다. 아빠는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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