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스페인에서 한국 작가의 책을 샀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아빠, 뿌듯해?”
“당연히.”
“그럼, 뿌듯한 마음을 안고, 저녁 먹으러 갑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아빠가 좋아하는 해산물 레스토랑입니다. 더욱 뿌듯해지지 않습니까?”
“가슴이 설렙니다. 어서 가시지요.”
해산물 식당은 가이드가 알려준 현지인 숨은 맛집이었다. 가게 문 앞에서 딸은 주춤거렸다.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안 들어가?”
“분위기가 노량진 수산시장 같아. 해산물을 직접 고르고, 저울에 올려서 가격 흥정하고, 요리 방법을 말하는 식당이야. 스페인어를 못하면 아주 큰 낭패를 볼 듯한데, 여기 직원은 영어가 가능할까?”
“일단 들어가 보자. 해산물을 보니까, 마음이 급해진다.”
역시, 직원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 서로 주문하기에 바쁜 스페인 사람들 속에 동양인 여자는 손만 번쩍 들고, ‘Excuse me’만 외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직원과 영어로 소통하려고 하면 옆에서 끼어드는 스페인 사람에게 우선권을 뺏기기 일쑤였다. 보다 못한 내가 나섰다.
“아빠가 할게. 빠져 봐.”
스페인 사람들이 무례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눈이 마주친 직원에게 일단 인사를 했다.
“올라, (홍합을 가리키며) 원키로. 오케이?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플러스 원키로. 투키로. 오케이.”
“아빠, 요리 방법을 묻는데?”
“홍합은 탕이 좋은데 (직원에게) 수프. 오케이?”
(직원이 알아들었다) 그 외에도 먹고 싶었던 오징어와 새우, 그리고 가자미를 닮은 생선은 원키로, 프라이를 외치며 주문을 마쳤다. 계산대로 가서 맥주와 와인을 포함해 계산하고 자리에 앉았다.
“한국 아저씨의 독불장군, 막무가내 스타일이 먹히네”
“모르긴 몰라도 스페인에 나 같은 아저씨들이 많을걸.”
“하긴 중국에 가면 의자에 앉아서 배 내밀고 있는 아저씨들 많잖아. 볼 때마다 아빠 생각 나. 왜, 아저씨들은 남의 시선을 느끼지 못할까? 아저씨들만의 특권인가, 아니면 내재된 남성우월주의일까?”
“여기서 남성우월주의가 왜 나오니? 그냥 더워서 그래. 이해해 줘.”
“이해 못 해. 싫어.”
“네 남자 친구는 어때?”
“배는 안 까. 하지만 가끔 이런 문제로 다퉈.”
“홍합 나왔다. 나는 맑은 홍합탕을 기대했는데 조림 비슷하게 나왔다.”
“그럼 설마, 한국 홍합탕처럼 나오리라 기대했어?”
“응,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는데. 청양고추 넣으면 칼칼 시원해지지. 술안주로 딱이잖아. 스페인 사람들도 한번 먹으면 홀딱 반할 것 같은데.”
“하긴, 홍합탕이 시원하기는 하지.”
“엄마가 있으면 생선은 먹기 좋게 발라 줄 텐데, 아쉽네.”
“아빠가 엄마보다 더 잘 발라.”
“정말, 잘하는데 어디서 배웠어?”
“뭐든지 많이 먹어 본 사람이, 많이 해본 사람이 잘하는 거야. 너도 많이 먹으러 다녀 봐. 잘하게 될 거야.”
소래포구, 오이도 수산시장에서 다져진 흥정 실력과 안줏값이 없어서 뼈까지 쪽쪽 빨아먹던 실력이 딸에게 칭찬받은 저녁이었다. 그래서 뭐든지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