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이 불어 독서 하기에 좋은 가을이다. 책을 읽지 않는 민족은 희망이 없는 민족이다. 서점이 많은 나라에 문화가 빈약할 리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면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세계에서 연평균 독서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이다. 1년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는 비율이 80%가 넘는다. 그럼 우리는 일 년에 책을 몇 권 읽을까? 종이책 독서량은 1.7 권이었다. 종이책 구매량은 1인당 평균 1.0 권이었고, 전자책은 1.2권으로 조사됐다. 나이별로는 20대가 종합독서율 74.5%로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였지만, 지난 조사에 비해선 3.6%포인트 감소했다. 30대와 40대의 종합독서율은 각각 68.0%, 47.9%였고, 60세 이상은 지난 조사 대비 8.1%포인트 줄어든 15.5%였다. 2014년 조사이므로 지금은 더 줄었을 것이다.
한국인의 하루 독서 시간 단 6분, 일 년에 책 1권 읽는 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감개무량하다. 우리나라는 문학의 자산이 많다. 백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식민지를 경험하고, 해방을 맞고, 전쟁을 겪었다. 치열한 이념대립이 있었으며, 양민 학살도 있었다. 군사독재를 겪었고, 민주화를 시민들의 손으로 만들어냈다.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많은 역사가 백년에 다 있었다. 이것이 문학의 자산이다. 쓸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작가가 소설로, 시로, 희곡으로 썼다. 그런데도 그동안 노벨 문학상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내가 생각하는 노벨 문학상이 늦은 이유는 번역이었다. 스페인 여행 중 서점을 열 군데 이상 들어간 것 같다. 스페인에 서점이 많은 이유도 있었고, 서점마다 각기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내가 서점을 열 군데 이상 다닌 이유는 오직 하나 한국인 작가의 책을 찾고 싶어서였다. 스페인어로 번역된 한국인 작가의 책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서점에는 아시아 코너가 있었다. 아시아 작가 코너에는 중국과 일본 작가의 책만이 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점원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sorry’였을 뿐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은은하게 불빛이 흘러나오는 예쁜 서점을 발견했다. 나는 그 서점 앞에 잠시 섰다.
“왜?”
“서점이 너무 예쁘다.”
“들어가 볼까?”
직원에게 한국인 작가의 책이 있냐고 물었다. ‘sorry’라는 대답을 예상했는데, 직원은 당당하게‘yes’라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책을 한 권 건넸다. 김금숙 작가의 ‘풀’이었다. 스페인어로 출판된 한국인 작가의 책이었다. 김금숙 작가의 책은 ‘지슬’을 읽은 적이 있었다. 제주 4.3사건을 만화로 그렸다. 지금 내 손에 있는‘풀’은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다. 가디언 선정 ‘2019 최고의 그래픽 노블’, 미국 뉴욕타임스 선정 ‘2019 최고의 만화’ 등을 수상한 ‘풀’은 현재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국 ‘아이스너 어워드’(Eisner Comic Industry Awards) 최우수 리얼리티 작품상, 2020년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뉴욕 코믹콘에서 하비상 최우수 국제 도서를 수상했다.
“아빠, 드디어 찾았네.”
“소설이었으면... 그래도 한국인 작가의 책이 번역되어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하다.”
“김금숙 작가 알아?”
“예전에 강의 한 번 들었지.”
“어떤 작가야?”
“만화를 그리지. 역사 만화 소설이라고 하면 쉬울까?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2013),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풀’(2017), 발달장애 뮤지션 이야기를 담은 ‘준이 오빠’(2018), 박완서 소설 원작의 ‘나목’(2019),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를 다룬 ‘시베리아의 딸 김 알렉산드라’(원작 정철훈)까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이야기를 소재로 만화를 그리고 상도 많이 받았지. 아마 김금숙 작가의 작품은 만화라 번역하기는 조금 쉬웠을 거야. 하지만 소설은 번역하기가 쉽지 않지. 우리말의 의미와 깊이는 너도 알잖아. 한국인의 감정을 외국어로 번역할 만한 사람은 손에 꼽지. 그래서 우리나라에 노벨 문학상이 안 나오는 거지. 아무리 좋은 소설이라도 외국인이 한글로 된 책을 읽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번역된 소설은 없고, 그러니 노벨 문학상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는 거지.”
“그럼, 일본이나 중국은 외국어로 번역된 책이 많은 이유는?”
“일본이나 중국은 국가에 번역원이 따로 있어. 수많은 언어로 번역도 하고, 그 나라에서 출판도 하지. 우리나라도 번역원이 있지만 각국 언어는 고사하고, 영어로만 번역하는 정도지. 사실 번역은 작가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거든. 번역, 출판, 배급, 홍보까지 해외 비즈니스나 다름없어.”
“그럼 우리나라는 노벨 문학상은 못 받겠네.”
“고은 시인이 가끔 후보로 올라가는데 소설보다는 짧은 시어서 번역은 가능한데, 또 시는 소설보다 숨겨진 의미가 많잖아. 정확한 번역이 되었을까?아마 작가도 모른다의 한표. 그래도 언젠가는 받을 날이 오겠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