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일정 중 바르셀로나 누드 비치 해변을 간다고 잔뜩 기대하게끔 만들어 놓고, 사실은 누드 비치가 아니라는 말을 아침에 컵라면을 먹다 들었다.
“누드 비치는 아니고, 그냥 해변이야.”
“그럼, 난 안 가. 수영도 못 하는데 그늘도 없는 곳에 굳이? 난 싫어.”
“수영은 내가 하고, 아빠는 짐 지켜.”
“해변이면 얼마나 뜨거울지 상상이 된다. 싫어.”
“우산 들고 가서 파라솔처럼 들고 있어. 아빠는 짐 지켜야 한다고,”
짐꾼의 역할을 부여받고,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해변으로 갔다. 마트에서 맥주와 음료, 소시지, 초콜릿 등 간식도 샀다. 해변에 가까워지니 모래사장을 뛰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다를 바라보며 헬스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상의 탈의한 상태였다.
“야외 헬스장이네. 와우, 남자들 몸이 장난 아니다. 너, 좋겠다.”
“감사할 뿐이지. 영화에서 나오는 해변 헬스장이네. 아빠, 저 사람은 돌을 들고 해.”
“돌이 아니라 바위다. 다들 운동을 진심으로하네.”
해변은 아직 오전이라 뜨겁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자리를 잡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피고 앉았다. 수온 체크를 한다며 딸은 바다로 들어갔다.
“아빠, 물이 차.”
“들어가지 마. 괜히 감기 걸려.”
“그래도 수영복까지 입고 왔는데, 물에는 들어가 봐야지.”
“그럼, 한 시간만 기다렸다가 날이 더 뜨거워지면 들어가.”
돗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사람 구경을 했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해변으로 와 옷을 벗고 눕는다. 수영보다는 태닝이 목적인듯싶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 상의 탈의한 상태다. 간혹 수영하는 사람들도 모두 상의 탈의한 상태였다. 위, 아래로 모두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옷 입고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모두 상의 탈의했어. 우리도 벗어야 하는 것 아니야?”
“아빠, 벗고 싶으면 벗어.”
“이 똥배를 누구에게 보여주니?”
그때였다. 우리 앞으로 가족들이 자리를 펴고 앉았다. 남편, 부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상의 탈의했다. 남편은 나보다 똥배가 더 나왔다. 부인이 나에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눈치를 보니 짐을 지켜달라는 뜻 같았다. 나는 ‘오케이’했다. 가족들은 거침없이 바다로 들어가 수영을 즐겼다.
“여기는 상의 탈의가 기본인가 보다. 선글라스 끼기 잘했다. 구경거리가 많아.”
“한 곳을 너무 오래 쳐다보지 마. 괜히 시비 붙으면 어쩌려고?”
“너 여기 있어. 나는 한 바퀴 돌다 올게.”
해변을 따라 걸었다. 모두 상의 탈의 한 채 태닝을 즐기고 있었다. 간혹 하의도 탈의한 채 뒤로 누운 상태로 태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양인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 또한 그들의 문화이니 보고 즐길 뿐이다. 혹여나 옷을 입고 있는 나를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딸에게 물어봐야지.
“나도 모르지.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집 마당에서도 벗고 있으니까 신경 안 쓴다는 뜻 아닐까?”
“그런가? 그럼, 너도 상의 탈의하고 수영해.”
“나는 동양인이야. 어쩔 수 없어.”
“수영복까지 입고 왔잖아. 수영해야지.”
“용기가 안 난다. 그냥 가자.”
“재미있는 구경 했다. 그래, 가자.”
다들 벗고 있는데, 우리만 옷을 입고 해변에 앉아 있으려니 민망했다.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 해변은 볼 것이 많다. 용기 있는 자여,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