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아침, 세상은 아직 겨울 끝자락 같은 공기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햇살은 얼어붙은 땅을 뚫고, 미세한 떨림으로 모든 것을 깨우고 있었다. 그날, 병상에서 일어난 교황은 성도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남겼다. 온 세상이 주목한 그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렸다. 곁에 있던 측근이 대신 읽은 그 부활절 메시지는, 오히려 더욱 깊은 울림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살아갑니다. 희망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눈에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합니다."
어머니 뱃속의 작은 심장도, 주름진 손을 가진 노인도, 긴 여정을 떠난 이주민의 부서진 발자국도, 모두 하느님의 눈물 속에 잠겨 있었다. 죽음이 문 앞에 다가와도 그는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더 부드럽게, 세상의 부스러기들을 끌어안았다. 전쟁터의 먼지를 털어내기를, 굶주린 이들의 텅 빈 그릇 채우기를, 인질의 무거운 사슬 끊어내기를 그는 빌었다. 마지막 설교는 종소리처럼, 멀리멀리 퍼져갔다.
2014년 여름, 교황은 서울 땅을 밟았다. 크고 화려한 것들을 뒤로하고, 가장 슬픈 사람들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다. 손을 내밀어 한 명 한 명, 고개 숙여 인사하고, 그 눈물을 마주했다. 아직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이름이, 그의 기도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의 얼굴은, 깊은 저녁 호수처럼 조용하고 슬펐다. 그는 손을 흔들고, 눈을 맞추고, 이름 없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미소는 상처 난 땅 위에 핀 작은 꽃처럼 부서질 듯 연약했지만, 그 연약함 안에 묵묵한 사랑이 심겨 있었다.
타로카드 13번은 죽음을 상징한다. 검은 말을 탄 해골이 들판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그 뒤편, 부서지는 어둠 속에서 새벽빛이 아스라이 퍼진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가야 할, 견뎌야 할, 통과해야 할 길목이다. 교황은 그 보이지 않는 강을 조용히 건넜다. 생명의 끝에서조차, 그는 새 시작을 믿었다. 죽음은 우리를 파괴하려 오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된 아픔을 털어내고,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등을 떠민다.
삶은 시들고 다시 피어나는 꽃이다. 벚꽃이 지고 썩어가는 그 자리에서 가을의 열매가 여물 듯이.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작고 단단한 것들을 남긴다. 우리는 비록 슬픔을 품고 있지만, 조심스레 다시 숨을 쉰다. 잃어버린 이름들을 마음에 품고, 흔들리는 불빛을 움켜쥐고, 더듬더듬, 다시 한 발을 내디딘다.
죽음이 지나간 들판 위로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오리라. 교황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기도처럼, 모든 고통 위에, 모든 절망 너머에,
그래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타로카드 13번은 일반적으로 "죽음(Death)" 카드입니다. 이 카드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실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끝맺음, 새로운 시작, 변혁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