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쯤, 친구들과 2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에는 세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학교 앞 횡단보도는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도움을 주지만 그 밖의 횡단보도는 아이들 스스로 건너야 했다.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등, 하교였다. 동네 어머니들이 순번을 정해 같이 등교를 했다. 문제는 하교였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 학교에 남아 놀다 오는 아이, 어쩔 수 없이 하교만큼은 아이들 스스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빠르게 다니는 차들 사이로 무단횡단을 하는 아이를 보는 순간, 사고는 걱정이 아니라 무서운 현실이 됐다. 도로를 횡단해서 뛰어오는 아들과 친구를 잡았다. 아들은 뜻밖에 만난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랐다. 나는 아들과 친구를 차에 태워 근처에 있는 파출소로 갔다.
수고하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 아들이 친구와 함께 무단횡단을 했습니다. 잡아가주세요.
아들은 경찰을 본 순간 당황해하며 내 뒤에 숨어버렸다. 나름 눈치가 빠른 경찰이 아이들 앞에 섰다.
너희들, 무단횡단했구나. 아주 나쁘고 위험한 행동을 했네. 어쩔 수 없이 잡아가야겠다. 이제는 엄마, 아빠도 못 보고, 학교도 못 다니고 어쩌냐?
아이들은 잡아가야겠다는 말에, 엄마, 아빠도 못 본다는 말에, 아니면 진짜 경찰관이 앞에 서있다는 사실에 놀랬는지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울면 진짜 잡아간다. 이번이 처음이야?
아니요. 열 번 정도 했어요.
어휴, 열 번이면 죄가 더 큰데. 큰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무단횡단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하면 용서해 줄 수 도 있는데 어떻게 경찰아저씨하고 약속할 수 있어?
아이들은 경찰아저씨와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다시 한번 무단횡단을 하면 안 된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받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들의 꿈은 경찰이 되었다. 경찰이 돼서, 아빠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려도 신고하고, 운전하다 신호를 위반해도 신고할 거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들의 꿈이었던 경찰이 오늘 현실이 되었다.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체력시험과 면접까지 통과한 아들은 5월에 경찰학교에 들어갔다. 오늘은 8개월간 교육을 마치고 순경계급장을 다는 경찰학교 수료식이었다. 아들에게 멋진 말을 해주고 싶어 며칠을 고민했다. 수료식을 마친 아들과 축하를 해주러 온 동생들과 학교 근처 중국집에 앉았다. 음식을 기다리며 웃고 떠드는 중에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컵을 두드리며 집중을 요구했다.
수료를 축하하며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덕담 한마디 하려고 합니다. 경청해 주십시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수하에 군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여지고 있는 그때 화살이 날아와 그 군인에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 군인은 생각했죠. 누가 쌌을까? 어디서 날아왔을까? 수많은 군인들 중에 왜 하필 내가 맞아야 하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고민을 하다 그만 두 번째 화살에 또 맞았죠. 군인은 또 생각을 했죠. 누가 쌌을까? 어디서 날아왔을까? 수많은 군인들 중에 왜 하필 내가 두 번이나 맞아야 하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고민을 하다 그만 세 번째 화살에 맞고 그 군인은 전사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동생이 한마디 했습니다.
형은 말이 참 많아.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 밥 좀 먹자.
어느새 식사가 들어와 테이블 위에서 좋은 냄새를 풍기며 식어가고 있었다.
그럼 결론만 빠르게 말할게. 그 군인이 화살에 처음 맞았을 때 고민하지 않고 화살을 뽑았으면 살 수 있었는데 쓸데없이 고민만 하다가 두 번, 세 번 화살을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화살을 맞을 거야. 그때마다 고민하지 말고 맞으면 뽑아 버리고, 그깟 화살 잊어 비리고 생활하라는 이야기지. 아들, 아빠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했지?
아빠, 요즘 화살 안 쏘고 총 싸. 그냥 총 한 발 맞으면 죽어.
내 말이 그런 게 아니잖아.
형, 21세기에 화살이 어딨어? 어서 밥이나 먹자. 다 식었어.
며칠을 고민해서 만든 이야기였는데 젠장, 씨알도 안 먹혔다. 분위기만 어수선하게 만든 죄로 식사 중에 한 마디도 못하고 홀짝홀짝 술만 마셨다. 식사자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취기가 올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들, 진심으로 경찰이 된 거 축하하고, 초심 잃지 말고 짭새가 아닌 민중의 지팡이, 훌륭한 경찰이 되어라.
얼마나 큰 소리로 말을 했는지 식당에서 밥을 먹던 경찰학교 졸업생들까지 나를 쳐다봤다.
여러분들도 짭새가 아닌 훌륭한 경찰이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아들은 벌떡 일어나 나를 끌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나는 경찰이 된 아들에게 체포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