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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Jun 06. 2024

상그리아!

 “스페인 둘째 날, 일정을 브리핑하겠습니다. 브런치로 ‘Mas Al Sur’에서 식사하겠습니다. 한국인들이 마드리드에서 제일 많이 가는 브런치 식당입니다. 상그리아가 유명하기도 합니다. 간단한 식사 후 아빠가 좋아하는 피카소 그림이 있는 소피아 미술관으로 갑니다. 무료입장 예약했습니다. 칭찬해 주십시오.”

“칭찬합니다. 유료 입장은 얼마야?”

“15유로면 2만 3천 원 정도입니다.”

“무료입장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제도 같다. 소피아만 있는 거니? 아니면 모든 미술관이 무료입장이 있어?

“무료입장은 다 있습니다. 다만 미술관이나 박물관 사정에 따라 일요일, 월요일 또는 저녁 시간 등 무료입장 시간이나 요일이 다릅니다. 그래서 시간만 있다면 모든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학생이나 여행객에게는 개꿀입니다. 하지만 무료입장에는 안타깝게도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보통 2시간입니다. 그보다 긴 시간을 보고 싶으면 유료 입장을 해야 합니다.”

“가이드님께서는 스페인 여행 시 미술관 관람을 하셨습니까?”

“당연히 안 했습니다. 저는 그림보다 쇼핑을 좋아합니다. 더 이상 질문은 안 받습니다. 빠르게 일정을 공유하겠습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솔 광장과 마요르 광장을 지나, 산 미겔 시장으로 갑니다. 거기서 한 잔 간단히 드시고, 왕궁을 구경합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하러 마드리드에서 손꼽는 근사한 맛집으로 갑니다. 물론 그곳도 예약했습니다. 마드리드 시내 곳곳에 볼거리가 많아 모든 일정은 도보로 진행됩니다. 예약 시간에 맞추려면 때로는 뛰다시피 걸어야 합니다. 중간중간 체력 안배 부탁드립니다.”

“스페인에 오려고 매일 만 보 이상 걸으며 체력을 길렀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드리드 거리를 걷다 보면 유난히 그래피티가 많았다. 마드리드뿐만이 아니라 유럽 곳곳에 그래피트는 유명하다.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때 지하철에 낙서 같은, 정신없이 그려진 그래피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예술보다 낙서에 가까운 그래피트를 지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경복궁 담벼락에 웹주소를  락커로 쓴 바람에 난리가 났다. 그럼, 예술과 낙서의 경계는 누가 판단 하는 것일까?  한때는 전국에 천사 날개가 안 그려진 동네가 없을 정도였다. 우리 동네 역시 담장 그림이 있다. 시에서 대학교에 용역을 줘서, 학생들이 그린 그림이었다. 아이들 미술 숙제처럼, 또는 멋진 동네 풍경을 담은 그림까지 다양했다. 그림이 그려진 골목은 그전보다 활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그림을 평하고, 웃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의 담장 그림들은 훼손됐다. 성적인 그림, 욕을 쓴 글씨가 그림 위를 덮어버렸다. 사람들의 볼맨소리가 계속되자 또다시 그 위로 그림이 덧칠해졌다. 그렇게 몇 번의 반복을 거친 후 아예 담장 그림들은 처음처럼 깨끗이 사라졌다. 그림이 사라진 거리는 (골목은) 옛날처럼 인적 없는 삭막한 장소가 되었다. 벽에 그려진 그래피트는 낙서인가? 예술인가? 벽 그림을 허용했다면, 단순 낙서도 허용돼야 하지 않을까? 그래피티가 거리 예술이라면, 거리라는 곳과 예술이 공존한다면, 조금 더 넓은 예술적 포용력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 거리예술이 아닐까? 이곳 역시 그림과 낙서가 공존했다. 아쉬운 마음에 벽에 그려진, 가게 셔터에 그려진 그래피트를 한 없이 바라봤다.

"딸, 그래피트는 예술일까? 낙서일까?"

"낙서."

"좀 더 예술적으로 볼 수 없니?"

"그러면, 예쁜 낙서."

 한국에서는 그래피트가 예술보다는 낙서 개념이 큰 것 같다. 우리나라 예술이 경직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브런치 식당인 ‘Mas Al Sur’에 10시에 도착했다. 혹시 일요일이라 문을 열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영업하고 있었다. 영업 시작 시각이 10시이기에 우리가 첫 손님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역시 한국 사람들은 부지런했다. 홀에는 몇 팀의 한국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여기서 외국 여행 시 팁을 알려 준다면 구글 지도의 식당 별점은 전 세계인이 투표한다. 그래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아무리 별이 5개라도 입에 맞지 않는 곳이 있다. 식당 검색과 메뉴 검색은 한국 블로거들에게 맡기고, 믿어야 한다. 단점은 모든 한국인들이 같은 식당에서 같은 요리를 먹고 있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민망함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향신료나 소금 간이 너무 심한 식당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한국인 블로거가 꼭 먹어야 한다는 요리와 상그리아를 시켰다. 이 집은 요리보다 상그리아 맛집이었다. 스페인어의 'sangre(피)'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름답게 짙은 붉은색이 특징이다. 주로 여름에 잘 어울리며, 펀치류의 음료라 할 수 있다. 주 재료는 이름에 어울리는 적포도주이며, 여기에 다양한 과일들과 탄산수, 설탕 등을 넣어서 하루 정도 숙성시킨 후 얼음을 넣어 마신다. 스페인은 식당마다 자기만의 상그리아 제조 비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상그리아만 마시러 투어도 한다고 한다. 이 집은 스페인 여행 중 마셨던 상그리아 중 제일이었다. 맛도, 멋도 있는 상그리아였다. 보기에 너무 좋아 아껴먹어야지 했지만 맛이 좋아  홀짝 다 마셔버렸다. 주인에게 엄지 척을 보여주며 상그리아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주인은 흡족한 모습으로 아니 자부심 뿜뿜 하는 모습으로 다른 종류의 상그리아를 추천했다. 첫 잔보다 알코올 도수가 더 높은 상그리아였다. 나는 두말없이 '그라시아스'를 외쳤다. 첫 잔과 다른 두 번째 상그리아가 나왔다. 와, 이곳은 상그리아에 진심이구나. 레드와인의 맛이 더욱 깊고, 과일 펀치는 달콤했다. 한 잔 더를 외치고 싶었지만, 술 취한 모습으로 피카소를 만 날 수는 없었다.

“브런치는 흡족하셨습니까?”

“상그리아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이 기분 그대로 간직하며 이제 피카소 보러 가시지요.”

“아직 한 시간 반 정도 여유가 있는데 어쩌지?”

“그럼 산책 하자. 커피를 마셔도 좋고.”

“가까운 곳에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죠.”



그들의 목소리가 약해지면 우리는 멸망할 것이다.(폴 엘뤼아르) 1977년 1월 4일 노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4명과 조합원 1명이 살해당했고, 변호사 4명이 중상을 입었다.
건물이나 벽에 공간만 있다면 어김없이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아빠, 배!
가릴게.
Mas Al Sur 브런치 식당
샹그리아 첫 잔
상그리아 두 번째 잔
이베리코와 고추 구이
버섯이 올려진 크림 리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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