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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Jun 10. 2024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여주시죠.

 우리는 소피아 미술관, 길건너에 있는 마드리드 왕립 식물원으로 산책하러 갔다. 십 분 정도 걸었을까? 우리주위로 혼자서 때로는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곳곳에서 달리는 사람과 나무 둥치 밑에서 책을 읽는 사람, 삼삼오오 수다를 떠는 사람. 잔디에 앉아 요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원 입구에서 얼마나 걸었을까? 중고 서적을 파는 상점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가게 앞에는 작은 좌판도 열렸다. 만화책, 동화책, 잡지, 영화 등 가게마다 특징을 갖고 있었다. 나름 브런치 작가인데,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은가? 좌판 위에 올려진 책들을 하나씩 살폈다. 보통 한 권에 2유로, 세 권에 5유로 정도였다. 두꺼운 책이나,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책들은 가격이 좀 있었다. 책 표지를 열어보면 연필로 가격을 아주 작게 적어놨다. 돈키호테 동화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찾을 수는 없었다. 청계천 중고 서점 거리가 연상되는 곳이었다. 서점이 끝나는 곳에는 피오 바로하의 동상이 서 있었다. 19세기 스페인의 대표 작가로 스페인의 현대소설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다. 66편의 장편소설을 썼을 정도로 다작했다. 나는 그의 소설 중 ‘과학의 나무’한 편만 읽어봤다. 자전적 소설이며, 젊은 작가는 염세적이고 비관적이었다. 읽기 힘든 소설 중 하나였다. 아마 그래서 더 이상 찾아 읽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 슬쩍 다가가 손을 어루만졌다. 다작의 기운과 유명 작가의 영광을 받고 싶었다.      


 소피아 미술관 앞으로 갔다. 입장 30분 전임에도 불구하고, 입장을 기다리는 줄은 꽤 길었다.

“표를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줄을 설까, 도대체 무슨 줄이 이렇게 길어?”

“미술관이라서 시간당 입장 인원을 조정하는 것 같아.”
 “그럼, 못 볼 수도 있다는 거야?”

“그렇지. 못 볼 가능성이 있지.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료 입장을 유도하는 거야.”

“유료 입장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무료입장은 인원수를 조정한다면 약간 사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줄만 열심히 서다 입장 못하면 어쩌냐?”

“그래서 제가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했습니다. 다 같은 무료입장이라도 인터넷 예매가 현장 예매보다 우선입니다. 오늘 상황을 보니 예매 없이 온 사람들은 무료입장이 힘들 것 같네.”

“너는 어떻게 알았어?”

“여행 블로거들이 다 알려 줬습니다.”

“그런데 가이드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공원에 화장실이 없어서 오래 참았습니다. 입장까지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다 보니 스타벅스가 있던데 그곳으로 가시죠. 스타벅스는 세계 어디를 가도 개방 화장실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아이스 아메리카라도 사 올까요?”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칭찬합니다.”     


 입장 시간이 되니 줄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입구에서는 퇴장 인원에 맞추어 입장 인원을 조정하고 있었다. 입구 쪽으로 다가서니 미리 예매한 줄과 현장 예매하는 줄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는 예매한 줄로 옮겨 섰다. 역시 예매한 줄이 눈에 띄게 빠르게 줄었다. 줄을 선지 1시간 만에 우리는 소피아 미술관에 입장을 했다. 소피아 미술관은 스페인의 대표 미술관으로 소장 작품 중 약 2%만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으로 유명하며 특히, 여러 번의 예비 드로잉과 함께 보존된 ‘게르니카’는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몇십 년 동안 뉴욕 현대 미술관이 보관하고 있었으며, 1981년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시간 관계상 피카소와 달리, 미로의 그림만 구경하기로 했다. 미술관에서 나눠준 지도를 들고 우리는 최적의 동선을 짰다.

“아빠 2층부터 가야 해.”
 “엘리베이터 타고 4층부터 내려오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아빠가 보고 싶은 것은 2층에 다 모여있어.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이라는 것을 잊지마.”     

 관람객들은 작품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더 잘 찍은 사진이 많은데 굳이 나중에 보지도 않을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다. 감동을 눈에, 심장에 담고 싶었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대작이었다. 왼쪽에서, 중앙에서, 오른쪽에서 나눠서 봐야 할 만큼 대작이었다. 벅찬 감동에 숨쉬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꿈과 환상의 작가, 호안 미로의 아이가 그린듯한 작품들과 조각들은 그는 혹시 우주에서 내려온 작가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피카소 작품 다음으로 나를 사로 잡은 그림은 살바도르 달리였다. 그중 압권은 달리의 창가의 소녀였다. 빛바랜 청회색 톤이 가득한 그림. 창밖을 바라보는 달리의 여동생, 그 뒷모습을 그리는 20살의 달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창가의 소녀를 한 없이 바라만 봤다. 내가 달리를 부분만 알고 있었구나. 미술관에서의 두 시간을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으로 보냈다.


“어떻게 소피아 미술관투어는 만족스럽습니까?”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피카소 특집을 봤습니다. 문학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미술에는 피카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방송을 보면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진짜 내 눈으로 볼 줄 몰랐습니다. 종이의집의 달리가면으로 달리는 그림보다 얼굴이 더 유명한 작가라 생각했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림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호안 미로 역시 그렇게 많은 작품들이 있는줄도 몰랐으며, 그의 상상력은 사람이 아니라 우주에서 온 작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벅찬감동으로 지금도 기슴이 뜁니다. 진정 만족스럽습니다.”

“그럼, 만족스러운 표정 한번 보여 주시죠. 사진 한 장 찍겠습니다.”

 


1권에 2유로, 3권에 5유로
글이 아닌 사진, 그림 위주로 책을 보고 있는 중
길게 늘어선 중고 서적 상점들
피오 바로하 동상, 나처럼 손을 만진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손등이 노랗게 벗겨졌다.
공원에서 요가하는 사람들
공원 풍경 1
공원 풍경 2
길게 줄을 선 소피아 미술관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르니카(스페인 내전 당시 폭격당한 도시)
게르니카의 우는 여인(펌)
21살의 달리가 그린 창가의 소녀는 오랫동안 나를 사로 잡았다.(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호안 미로의 그림(펌)
벅찬 감동으로 만족스러운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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