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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Jun 13. 2024

내가 다 사줄게.

 “커피 한 잔 마시고, 솔광장과 마요르 광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이곳 DABOV 스페셜 커피 전문점은 한국인들 사이에 커피가 맛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아시겠지만 스페인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없습니다. 그럼, 아버님은 아메리카노?”


 나는 아메리카노, 딸은 라테 그리고 조각파이를 곁들여 잠깐 휴식 시간을 가졌다. 작은 가게 안에는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스페인에는 우리나라처럼 '커피 전문점'이 특별하게 존재하진 않았다. 물론 스타벅스는 있지만 보통은 레스토랑 & 카페 & 바(Bar)가 통합된 형태로 어느 곳에서나 다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커피를 판매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커피가 맛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 전문점 커피는 귀하고, 맛있는 커피였다. 역시 전문점답게 커피는 자체 블렌딩 상표를 갖고 있었다. 로스팅한 원두를 살펴보니 풀시티나 프렌치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벅스와 로스팅 상태가 비슷했다. 로스팅한 원두의 향도 좋았다. 하지만 이곳은 맛있는 커피보다 더 멋있는 주인이 있어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았다. 주인은 고무줄로 아무렇게나 묶은 흐트러진 꽁지머리와 구레나룻 와 연결된 턱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남자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아니 섹시했다. 스페인은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멋있는 것 같다.

“커피 맛있다. 나갈 때, 한 잔은 텀블러에 담아 가자.”
 “아빠, 바리스타 자격증 땄어?”
 “바리스타 1급과 로스팅 자격증까지 땄지. 대단하지?”

“학원 다니면 그냥 다 주는 자격증 아니야?”

“학원 다니면 다 준다니? 섭섭하게 그러지 마. 그래도 공부하고, 실습하고, 할 것은 다 했어.”

“그러니까, 학원만 안 빠지면 다 주는 거잖아.”

“우리도 시험 봐. 합격해야 자격증을 주는 거야.”
 “그럼,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은 있어?”
 “다들 열심히 해서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은 없지.”

“그러니까, 학원만 안 빠지면 다 주는 거 맞잖아.”

“그렇게 아빠를 폄하하고 싶냐? 그래, 학원만 안 빠지면 다 준다. 어쩔래?”

“폄하는 무슨, 그냥 아빠 놀리고 싶어서 그랬어. 이제 출발하자.”     


 아침에 다녀온 솔광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산딸기를 먹는 곰 동상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키가 작은 딸은 까치발을 들고서야 간신히 발뒤꿈치를 만졌다. 나는 곰의 발뒤꿈치를 만지는 딸의 까치발만 집중해서 사진을 찍었다. 바리스타의 복수였다. 오 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마요르 광장은 솔 광장과 가까이 있었다. 마요르 광장 입구인 아치에 들어서기 전까지, 광장이 이렇게 멋이 있는지 예상할 수 없었다. 먼저 지나온 솔광장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을까? 마요르 광장은 ‘우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가로 90미터 세로 110미터 그리고 광장을 둘러싼 건물까지 깜짝 놀랐다. 건물 외벽에는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멋지게 말을 타고 있는 펠리페 3세의 동상이 있었다.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함께 있는 광장은 음악 소리와 여러 나라의 말소리가 뒤섞여 정신없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입을 반쯤 벌리고 광장을 둘러봤다.

“아빠, 정신없다. 산미겔 시장 가자.”

“시장도 정신없지 않을까? 사람들한테 치이니까 진이 다 빠졌다.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자.”
 “시장 가서 맥주 한 잔 안 할 거야?”

“시장에서 맥주 마시려고?”

“아빠가 딱 좋아하는 곳이야. 놀라지나 마.”     


 산미겔 시장은 1906년에 문을 연 100년이 넘는 시장이었다. 어느 순간 스페인에도 대형마트가 들어와 장사가 안되자 2009년 리모델링을 하면서 타파스 전문시장으로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장이었다. 물론 현지인들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99프로 관광객 같았다. 내 옆에는 중국인 부부가 가이드를 대동하며 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시장 안은 적지 않은 공간이지만,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어 서 있을 자리도 없었다.

“야, 대단하다. 나는 시장이라고 해서 전통시장 같은 곳인가 했는데, 대형 푸드코트네.”

“타파스라고 알지? 이곳이 타파스 전문 시장이야.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것 하나씩 사서 중앙 홀에 앉아서 맥주나 와인과 함께 먹는 거지.”

“일단 한 바퀴 돌아보자.”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과 염장된 생선, 하몽, 문어 다리, 올리브, 굴, 치즈, 초밥까지 단품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다 있는 것 같았다.

“아빠, 굴 좋아하잖아. 굴 하나는 먹어 봐야지?”

“그럴까? 그런데 너무 비싸다. 작은 굴은 한 개에 *4유로, 큰 굴은 6유로야.”

“난 굴 싫어해, 아빠만 하나 먹어봐.”

“그럼, 제일 큰 놈으로 하나 먹어보자. 6유로면 굴 한개에 9천원이다. 와우.”

“여기 초장 비슷한 것도 뿌려 준다.”

“아빠가 한국 사람처럼 보였나 보지. 고맙다고 그래.”

“엄지 척, 그라시아스.”

“굴 맛은 어때?”

“통영 굴이 백 번 낫다. 이게 무슨 굴이야. 물컹하고, 맛도 없다. 하나 먹기를 잘했다.”

“그래도 아빠는 이제 스페인 굴을 먹어 본 사람이야. 굴 먹을 때마다 자랑해.”

“당연하지. 아빠 친구들에게 ‘너희들 스페인 굴 먹어봤어? 얼마나 맛있는 줄 알아? 나는 우리 딸이 사줬어.’ 이렇게 자랑할게.”

“아주 멘트가 찰지고 좋네. 또 뭐 먹고 싶어? 내가 다 사줄게.”



DABOV 커피 전문점과 잘생긴 주인.
까치발을 든 키가 작은 딸
마요르 광장
벽에 그려진 그림들.
펠립3세, 결투를 신청한다.
바게트 위에 새우와 날치알 (새우는 실패가 없는 맛이다. 별 ***)
가리비와 치즈 (맛있지만 짰음. 별**)
메추리 봉과 감자튀김 (맥주에는 치킨이 국룰이다. 별***)
9유로 굴과 치즈 그리고 와인(치즈는 정말 짰다. 별*)
올리브 먹지는 않았지만 보기에 예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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