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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Jun 03. 2024

울라!

 지치지도 않고 밤새 떠드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침대 옆 테이블에 귀마개가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집주인의 작은 배려였다. 새벽 6시에 울려 퍼지는 생일 축하 노래에 밖이 궁금해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었다. 발코니로 나가 거리를 바라봤다. 큰 꽃다발을 안고 있는 여성에게 남녀 친구들이 맥주를 뿌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생일축하 노래와 놀이는 전세계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젊은 친구들이 재미있게 노는군. 신나게 노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을 때,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친구 한 명이 나를 올려봤다. 나는 그를 향해 손뼉을 쳐줬다. 그러자 친구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나는 극성스러운 팬을 위해 베란다에 나온 영화배우처럼 우아하게 손을 흔들었다. 물론 손 키스를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잠옷 차림이었다.


  간단한 세수를 하고, 마드리드의 새벽을 느끼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마드리드의 술집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을 돌아 sol 광장으로 나갔다. 걸어가는 길에 목격한 신기한 장면이 있었다. 청소차가 거리를 청소하는데, 신기하게도 물로 청소한다. 커다란 호스로 물을 뿌려 거리의 쓰레기를 모아 청소차에 실었다. 관광의 도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 곳곳에 찌든 맥주 냄새와 소변 냄새가 물청소로 그나마 사라졌다. 새벽에 문을 닫는 가게와 새벽에 문을 여는 가게, 캐리어를 끌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광장에는 새벽부터 사람이 많았다. 오후에 다시 지나간 sol 광장은 사람들에 치여 지나다니기도 힘들었다. 새벽에 그나마 한산한 sol 광장을 둘러본 것은 행운인 셈이었다. 푸에르타 델 솔은 태양의 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16세기까지 태양의 모습이 새겨진 중세 시대 성문이 있었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광장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작다’였다. 마드리드의 모든 길, 스페인의 모든 길의 시작인 sol광장의 킬로미터 제로가 있는 곳인데 의외였다. 광장의 명물인 산딸기를 먹는 곰 동상(발뒤꿈치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의 뒤꿈치를 살짝 만졌다. 뒤꿈치처럼 사람들이 꼬리도 많이 만졌는지 반들반들했다. 아마 키가 작은 동양인은 뒤꿈치, 키가 큰 서양인들은 꼬리를 만졌을 것이다. 카를로스 3세 동상과 정부 청사 건물, 킬로미터 제로도 사진 한 장씩. 광장을 둘러보다 발견한 꽃을 파는 노점상. 스페인 곳곳을 돌아다녀 보면 의외로 꽃 노점과 꽃집들이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구나. 그렇다면 살짝 거리를 찍는 척하며 멀리서 사진 한 장. 광장에서 큰길로 올라갔다. 길옆에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오후에 알았다. 이 거리가 마드리드의 명동 같은, 유명 브랜드가 모여 있는 거리였다. 아침에는 한적해서 그렇게 유명한 거리인 줄은 몰랐다. 건물 옥상에 동상들이 많았다. 올려보느라 목이 아플 정도였다. 여기가 마드리드구나 싶었다.


 거리를 두리번 거리며 지나가는 길이었다. 호텔 앞에 관광버스가 서 있었다. 버스 곁을 지나치는데 한국어가 들렸다. 타지에서 들리는 한국어가 반가웠다.

“아침은 먹었어?”

“그럼 먹었지. 잠은 잘 잤어?”

버스 앞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단체관광객들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출발하느라 바쁘겠네. 자유 여행의 맛은 이 맛이지. 여유 있게 아침 산책도 할 수 있고, 우리 딸처럼 깨울 때까지 잠도 잘 수 있는 여행. 이런 여행이 진짜 여행이지.

“올라, 좋은 여행 되세요.”

“어머, 한국분이시네. 언제 오셨어요?”

“어제 왔어요.”

“우리도 어제 왔는데, 어디 가세요?”

“아침 산책 중이에요.”

“자유 여행 오셨구나. 나도 선생님처럼 젊으면 자유 여행할 텐데.”

“저, 내일모레 칠십인데요.”

“정말이세요?”

“거짓말이요. 좋은 여행 되세요.”     

 모두 한바탕 웃고 그들은 버스에, 나는 한산한 아침의 마드리드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아침은 뭘 먹을까?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먹을까? 아니야. 몇 개 없으니까 아껴 먹어야지. 그럼 뭘 먹을까? 일단 커피 한 잔 마시고 시작하자. 문을 연 카페를 찾으며 길을 걸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거리를 걷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울라’하고 인사를 나눈다. 울라 소리를 들으면 나에게 한 인사가 아니어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울라'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거리를 청소하는 아저씨 곁을 지나며 스페인 사람처럼 인사했다.

"울라!"

아저씨는 허리를 펴 나를 바라보며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울라!"

아침부터 행복해졌다. 이 맛에 인사를 하는구나. 숙소까지 걸어 가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울라하며 인사를 했다. 우리도 그들처럼 행복한 아침을 맞았으면 좋겠다. 문을 연 카페가 보였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산한 거리를 바라본다. 여행의 시작이었다.



산딸기를 먹는 곰동상 (뒤꿈치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
카를로스3세 동상 (얼굴이 작다, 셀카 찍기 좋은 얼굴이다. )
정부 종합 청사
킬로미터 제로 (이곳을 밟고 사진을 찍으면 다시온다는 전설)
꽃 노점상
건물 옥상에 설치된 동상 (크다 싶은 건물은 동상이 다 있는 것 같다.)
마드리드 명동같은 거리
누구의 궁전일까? 누구의 궁전이라 써있었는데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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