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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Jul 25. 2023

(68) '아이폰6 습격', 전세계 최초 韓 동시 출시

15부. 스마트폰 시장 재편

팬택의 몰락과 함께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각축전이 발발했다. 삼성전자의 확장, 또는 LG전자의 반격도 있었겠으나 그 중에서도 한 자릿수 점유율로 하락한 애플이 날을 세우고 있었다.


앞서 2009년 11월 28일 KT를 통해 국내 정식으로 첫 선을 보인 애플 아이폰(아이폰3GS)는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적으로 대항마로 불린 휴대폰들이 줄줄이 시련을 겪으면서 반사효과를 얻기도 했다. 2010년 9월 10일 KT가 두번째 아이폰(아이폰4)를 내놓자 당시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고민도 더 커졌다.

장동현 SK텔레콤 사장(중앙)과 아이폰4 SK텔레콤 1호 가입자 모습 [사진=SK텔레콤]

결국 SK텔레콤은 KT보다는 늦었지만 2011년 3월 16일 아이폰4를 도입했다. KT와 SK텔레콤이 동시에 아이폰을 판매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의 한 단면 정도 수준이었으나 전세계 시장에서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애플 정책은 한 국가당 복수 이통사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 정책이 처음으로 깨진 사례가 바로 한국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의 3강 구도와 쏟아지는 외산폰 속에서도 아이폰을 점차 힘을 키워 두 자릿수 점유율을 유지했다. SK텔레콤과 KT 역시 대대적인 이벤트와 마케팅을 쏟아부었다. 아이폰이 나올때마다 가입자 뺏기에 혈안이었다.


아이폰 도입 경쟁의 절정은 2011년 11월 11일. '11'이라는 숫자가 3번이나 겹치는 날이었다. KT와 SK텔레콤이 동시에 아이폰4S를 내놓게 된 것. 비가 내리는 악천우 속에서도 아이폰4S를 구매하기 위해 긴 행렬이 들어섰다.

KT T&C부문장 표현명 사장(왼쪽)과 아이폰 5 1호 개통고객 박슬기 씨(오른쪽)가 아이폰 5 출시를 축하했다 [사진=KT]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속 타는 곳은 3위 사업자 LG유플러스였다. LG유플러스는 당시 통신규격과 주파수 대역으로 인해 외산폰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애플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는 유럽식 GSM 방식으로 ‘아이폰’을 설계했기에 2G CDMA를 채택한 LG유플러스는 그림의 떡이었다.


애플이 GSM 방식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미국 이통사 AT&T와 함께 버라이즌에서도 아이폰을 공급하기로 결정, 버라이즌에 맞는 CDMA망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폰’을 별도로 내놨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파수 대역에 발목이 잡혔다. 애플이 설계한 2G용 아이폰은 800MHz와 1.9GHz 주파수 대역의 리비전.A 통신규격을 지원했는데 당시 LG유플러스는 1.8GHz 에서만 리비전.A를 운용하고 있어 맞지 않았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아이폰은 그 이후 벼랑 끝에 섰다 .외형상 큰 변화가 없는 아이폰4S, 3.5인치에서 크기를 4인치로 키웠으나 여전히 대화면 트렌드에서 벗어난 아이폰5, 비슷한 디자인의 아이폰5S까지 이어졌으나 시장 반응은 냉랭했다. 그 사이 아이폰의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하지만 2014년 애플에게 반등의 기회가 왔다. 국내 이통시장의 불안감이 오히려 상승 요인이 된 것. 불법보조금을 잡기 위한 단통법의 시행, 팬택의 몰락과 해외 제조사의 시장 철수, 대화면으로 전환한 애플의 아이폰 정책 등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우선, 순차 영업정지 및 단말기 유통법 도입으로 인해 불법보조금 기반의 마케팅 경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든게 주효했다. 통상적인 보조금은 이통사의 지원금과 제조사 장려금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애플에게는 장려금 개념이 없다. 당대 아이폰이 비싼 이유였다. 불법보조금이 줄어들면서 단말 가격차가 줄어들고, 대신 요금을 할인받는 선택약정할인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안드로이드폰뿐만 아니라 아이폰에게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여기에 국내 제조사 중 팬택이 회생에 어려움을 겪은데 이어, 대다수 해외 제조사가 외산폰의 무덤인 우리나라 시장을 철수하면서 빈틈이 생겼다.


결정적으로 애플은 팀 쿡 CEO 체제로 전환하면서 아이폰6 시리즈에 승부를 띄웠다. 팀 쿡 CEO는 2014년 9월 9일 미국 쿠퍼티노에 위치한 디 앤자 칼리지 내 공연시설인 플린트센터에서 이벤트를 개최하고 전작과는 다른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를 공개했다. 두 개 모델 동시 출시도 이례적이었으나, 한 손 그립감을 핵심으로 작은 크기의 화면을 고수하던 애플이 각각 4.7인치, 5.5인치로 확 늘렸다. 대화면에 목마른 국내 아이폰 사용자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사진은 1호 가입자 원경훈 씨 (좌)와 최주식 SC본부장(우)이 아이폰6 1호 개통 후 인기 걸그룹 ‘태티서’와 함께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LGU+]

게다가 LG유플러스의 아이폰 도입도 영향을 미쳤다. 통신규격과 주파수 대역 부족으로 인해 상당한 골치를 앓았던 LG유플러스는 LTE를 통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LTE에 대한 공격적인 운영으로 그간의 발목을 잡았던 규격에 대한 제한이 풀렸다.


이 역시도 전세계적으로 이례적 사례였다. 한 국가의 모든 이통사가 아이폰을 도입한 곳 역시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LG유플러스의 기세는 대단했다. 그간의 설움을 한번에 설욕하고자 했다. LG유플러스의 아이폰6는 국내서 출시된 아이폰 중 가장 저렴한 78만9800원에 책정됐다. 이전 '아이폰5C'가 가장 저렴한 제품이기는 했으나 파생형 보급폰임을 감안했을 때 역대 가장 저렴한 아이폰이기도 했다.


애플의 기세는 등등했다.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점유율은 곧장 두자릿수로 올려섰다. 당시 2위 자리에 어렵게 오른 LG전자를 압박했다. 연말에는 역전에 성공해 삼성전자에 이은 2위 자리를 차지했다.


다만, 2014년말 애플과 삼성전자는 나란히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애플은 아이폰6 플러스가 악력에 의해 휠 수 있는 일명 ‘밴드게이트'로 고초를 겪었다. 청바지 뒷 주머니에 넣어놓은 아이폰6가 기역자로 꺾이는 이상 현상이 보고되기도 했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4는 명함이 꽂히는 '유격 논란’이 부상했다. 실제 명함을 꽂는 사진들이 각종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애플은 차기 모델부터 아이폰의 외형 재질을 변경했다. 삼성전자는 수리 편의성을 위한 제조방식일뿐이라며 정면돌파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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