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선물이에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인데 정말 10분의 1도 읽지 않았어요. 몇장 넘겼는데도 너무 좋은거 있죠. 굉장히 깨끗해요. 이 책을 가지고 있던 요즘에 당신을 만난거니까. 이건 계시야. 선물이에요. 꼭 읽어봐요."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만났던 친구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나를 초대했다.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며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자고 한다. 한사코 거부해도 그녀는 단호했다.
그런 그녀에게 줄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싶었고 바로 가방에서 책을 꺼냈던 것이다.
책 표지가 인스타그래머블하게 보여져왔던 책이었다. 또한 흥미로운 주제를 말하고 있었다. '일' 그리고 '텍스트'를 좋아한다면 관심가는 직업 '에디터'. 구입 당시 나는 패션디렉터로 직을 바꾼 상태에서 혼란기를 겪고 있었고, 좋은 환기가 되어줄 것 같아 구입했다.
브랜드를 말하던 매거진에서 가지로 뻗어진 잡지스러운 책이다. 이건 꽤 중요하다. 잡지는 시간을 대변한다. 일전에 도쿄의 다이칸야마의 츠타야에 위치한 ' #안진#anjin ' 카페에서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몇십년은 더 된 잡지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해 두었다. 전면의 책장에 꽂혀진 잡지들은 작품이었다. 또한 시간을 전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꽤 트렌드의 접점에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에디터라는 직업이 어떤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정의했다. <좋아하는 것으로 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박수를 쳤다. 인스타그램 속 수많은 셀러시장 또한 이렇다. 좋아하는 것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 보여주며 이거 정말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수많은 추천들은 '자신이 좋아하는것'인지, '정말 좋은 것' 인지는 알 수 없다.
좋아하는 것 중에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진다.
모든 사람들이 에디터가 되는(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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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발판이 되어 나도 작은 꿈을 꺼냈다.
33살이 되기 전엔 세계여행을 하며 여행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꿈.
퇴사를 하고 난 바로 다음날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손에 잡았다.
“2011.8.22 세번째 책핌. 제천가는 내일로 여행중”
맨 앞장에 언제 이 책을 읽었는지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덕분에 2011년도의 여름을 만났다. 소름이 돋았다.
이유는 엊그제 퇴사 송별회의 일화가 떠올라서다. 동료들은 몇년간 기록한 나의 SNS글들을 출력해 선물해주었다. 그 중에 나도 잊고 있었던 버킷리스트가 발견되었다. <대학 졸업 전 내일로가기> <35살 전 세계여행가기> "와 버킷리스트 이루러 가네!" 라고 말해주는 동료들의 말에 괜히 더 뭉클했던 순간.버킷리스트를 체크하는 시간에 이 책이 들려있다. 8년전엔 기차 안, 지금은 비행기, 그리고 얼굴은 좀더 성숙해진 나로 존재하며.
이 책을 잠시 소개하자면, 나에겐 '여행에세이의 첫 경험'으로 정리한다. 좋아했던 사람이 추천해줘서 단숨에 읽었던 책이었다. 작곡가였던 그가 좋아할 수 밖에 없었을 테다. 작가님이 작사가로도 활동하신 분이었고 음악을 매우 사랑했다. 서른을 맞이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을 홀로 횡단했던 여정, 그때 들었던 노래들을 정리해둔 책이다.
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시작된 꿈.
나도 홀로 떠나 내가 궁금한것들을 만나자.
좋아하는 것을 더 깊게 채우고, 홀로 고독하게,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고 친구가 되는거야.
그 끝에는 내가 나를 만나게 되는 거지. 과연 어떤 기분일까? 그 땐, 꼭 이런 글을 써야지.
라는 꿈을 꾸게 만든 책이다. 온몸이 저릿해지는 기분이 다시 느껴진다. 바로 아래 적어내려갔다.
“2019.10.17 몇번째인지 모르겠지만 바르셀로나로 가는 여행, 비행기안에서”
이제 책 속엔 그의 서른, 나의 스물다섯, 지금의 서른 셋의 내가 함께 머물고 있다.
서른셋, 늦었다고 해도 반박할 수 없는 나이.
낭만 속에는 탄탄한 현실도 챙길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한 오늘의 나.
그래서 더 나를 위한 기준으로 살고자 한다.
무작정 성공한 사람들을 쫓는거 말고, 결이 같은 사람들의 멋짐에 접촉되는 것에 대한 흥미를 알 것.
감정의 풍성함으로 순간을 채울 것. 나라서 만들 수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발견할 것.
모두 쌓여 내 삶이 예술이 된다고 믿을 것.
자신과의 여행중인 나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완벽하지 않지만, 온기와 기억이 담긴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자.
폭격기 같이 어지럽혀졌던 내 방에서 나와,
어딘지 어떤 곳일지 알 수 없는 새로운 방으로 향하는 중이다.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